CULTURE

아저씨의 반대말

2015.11.01장우철

그러니까 이런 생각도 아저씨라서 드는 건 아닌지 계속 돌아볼 것. 그렇게 앞으로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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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을 늦게 접했다.(아저씨라서?) 간편한 검색으로 여러 가지 알 수 있었으니, 2010년 <뉴욕 타임스>가 뽑은 올해의 단어였고, 2014년엔 온라인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올해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관련 이슈가 활기를 띠는 것과 맞물리면서 때마침 몇몇 한국 남자가 그 전형과도 같은 언행을 선보여 한층 널리 퍼졌다는 사실까지. 위키피디아를 인용하면,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을 결합한 단어로,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으로 우스개처럼 다시 말하면 “이 오빠가/아저씨가 설명해줄게” 할 때 바로 그것이었다. 받아들이기에 그저 간결한 얘기였다. 옳지 않음, 돌아볼 것, 절대 금지. 그런데 소음이 계속 들려왔다. 시작점은 거진 아저씨들이었다.

국제적인 여성 페미니스트에게 새삼 페미니즘이란 이런 게 아니겠냐며 공개편지를 쓴 똑똑한 아저씨부터 페미니즘의 ‘페’자만 들려도 곧장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사는 서러움을 하소연하는 아저씨(와 그에 동조하는 꽤 많은 다른 이들)까지. 그때마다 지적이 잇달았다. 방법은 여러 가지. 사실 확인, 비판, 조롱, 분노, 정정 요청, 짜증. 하지만 아저씨는 그 누구도, 그 어느 것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 말없음은 징그러웠다. 기막히게 우스웠지만 힘이 세 보였다.

나이가 얼마든, 그러니까 마흔이 안 됐든 쉰을 넘겼든, 갑자기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는 때가 온다. 그건 곧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뜻하는 바, 글자 그대로 아저씨의 세계가 활짝 열린 때이자, 철저하도록 아저씨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바로 세워야 하는 때다. 아저씨의 세계로 들어갈 것 같으면 이미 풍속으로 단련된 매뉴얼이 설탕처럼 반긴다. 쉽다. 편하기도 할 것이다. 요컨대 아저씨는 거기서 멈춘 자의 이름이자, 포기한 자의 명찰이다. 배운 것, 몸에 익힌 것, 아는 것, 심지어 배우지 않은 것, 몸에 익히지 못한 것, 모르는 것까지 모두 통합해 뱃살처럼 둥그렇게 한 덩어리로 뭉쳐서는 나는 여기까지 왔노라 내려다보기 시작하는 사람, 아저씨다. 그에겐 무엇도 새롭지 않다. 이미 다 아는 것, 옛날에 다 해본 것이라 서다. 아저씨가 되면 몇십 년 막혔던 말문도 트인다. 온 세상이 훈수의 장이 된다. 아저씨는 잘 못하지 않는다. 고로 반성하지 않는다.

반면 아저씨로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세우면, 매사의 접점마다 날을 세우고 눈을 떠야 한다. 또한 돌봐야 한다. 손수건을 건네고, 육중한 문을 잡아주며, 꽃을 사고, 자리에 먼저 앉도록 권해야 한다. 달리면 그만인 청년의 에너지가 아닌 채로도 여전히 어떤 지향으로써 말해야 한다. 경험에 붙박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새롭게 보는 관점을 유지하고 보수해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자신이 젊어서 경험한 수많은 것을 한낱 시시한 농담으로 팔아버리지 않는 책임감을 갖춰야 한다. 끝내 자존심이다.

언제든 선택의 순간은 온다. 이미 결론은 가지런하다. 아저씨의 반대말을 새삼 신사로 상정한다. 남자는 당연히 신사가 되어야 한다.

deskfan

    에디터
    장우철
    일러스트
    문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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