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와 오프로드,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타고 고속도로와 오프로드를 종횡으로 달렸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선 메르세데스-벤츠가 제시하는 자동차의 미래를 목도했다. 이들의 전통에는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었고, 이들의 미래야말로 자동차의 미래 같았다.

호텔 앞에 도열한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앞에서 사람들은 제각각 웅성거렸다. 막 호텔에 도착하는 사람의 발걸음은 G클래스 앞에서 다소 느려졌다가, 다시 회전문을 밀고 로비로 들어갔다. 시선은 G클래스에 더 오래 머물렀다. G클래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게 가능하긴 할까? 어디서나 주인공이 되는 차가 있고, 누구나 선망하는 차도 있다. 존재 자체로 꿈에 가까운 차도 있다. G클래스는 지난 37년 동안 그런 위치에 있었다. 미처 가질 수 없다 해도, 이 차를 염두에 둔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라도, G클래스의 문을 한번 여닫는 동작만으로도 금세 빠져들고 마니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같이 동그래지는 눈, 아주 순수한 목적의식이 생긴 소년의 표정으로.

우리는 2016년형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앞에 서 있었다. 각기 다른 세 가지 모델이 있었다. 메르세데스-AMG G63, 메르세데스-AMG G63 에디션 463, G350d. 그 앞에 서서 알면서도 물었다. “이번엔 어디가 바뀌었나요?” 강세는 ‘어디가’가 아니라 ‘바뀌었나요?’에 있는 질문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최윤선 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앞에 조금? 인테리어 조금? 이 에디션 463은 언더가드가 조금 다르고….” 이거야말로 G클래스를 이해하는 사람들끼리의 애정어린 농담 아닐까?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G클래스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특별히 고급스럽게 만든 G63 에디션 463은 의자에 두 가지 색 가죽을 쓰고, 인테리어에 카본 세부를 더하고, 외관에 약간의 장식을 보태고 언더가드에 스테인리스 스틸을 썼다는 것 정도를 강조할 수 있을까? 에디션 463의 의미도, 그저 개발 코드명을 그대로 쓴 것이었다. 숨은그림찾기에 몰두하는, 역시 소년 같은 호기심으로 G클래스에 접근한 결과는 늘 같았다. 정확함, 순수함과의 새삼스러운 만남.

 

자동차가 연식을 거듭하면서 전혀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적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 같았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 와중에 정말 사랑스러운 어떤 차의 세부가 영영 사라지는 순간을 목도하기도 했다. “우리는 전통을 중시한다”고 과시하듯 말해왔으면서, 어떤 순간에는 새 역사를 강조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장이라는 뜻이다. 그럴 때마다 ‘시장 확장’은 거부할 수 없는 명제 같았다.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는 아주 다른 시장에 있다. 고요하고 진지한 곳, “제발 아무것도 바꾸지 말아주세요” 바라는 고객이 있고 “G클래스가 화성에 가는 날이 온다 해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브랜드가 만나는 시장. G클래스는 지난 37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지만 꾸준히 개선하면서. 시장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그들만의 역사를 스스로 적어가면서. 이건 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치열한 자기 성찰의 결과일 것이다.

“핸들과 헤드램프, 스티어링 휠을 제외하면 모두 직선”이라는 말에도 G클래스를 향한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하다. 솔직하고 단호한 선의 집합으로 이뤄진 차체로부터 G클래스에 대한 호기심은 시작되는 거니까. 그렇게 점점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실내를 보려고, 문을 여닫는 순간의 그 소리에 한 번 더 빠져들고 만다. ‘철컥’ 금속과 금속이 단단하게 결속되는 소리. 요즘 만드는 어떤 차에서도 들을 수 없고, 자연스럽게 자연을 상상하게 만드는 소리다. 숲, 강, 냇물, 바다, 바위산, 결국은 아스팔트가 뒤덮지 않은 모든 길, 오프로드…. 순수와 원형을 그대로 지킨 자동차와 자연은 이런 식으로 만날 수 있는 법이다.

메르세데스-AMG G63을 타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메르세데스-AMG라는 이름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를 그들의 자회사 AMG가 고성능으로 튜닝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메르세데스-AMG G63은 자그마치 5,461cc V8 바이터보 가솔린 엔진을 쓴다. 최고출력은 571마력, 최대토크는 약 77kg.m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4초, 최고속도는 시속 210킬로미터다. 직접 체험해보기 전에는 도무지 믿기 힘든 숫자. 이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언덕을 코너마다 공략할땐 지구의 물리법칙을 내 오른발과 두 손으로 너무 쉽게 거스르는 것 같았다. 중력가속도가 뭐였지? 이런 속도로 달릴 땐 공기역학이 특히 중요한 거 아닌가? 그럼 횡중력은…?

 

오프로드의 G클래스

 

코너에 진입하기 직전,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패들 시프트로 기어를 몇 단 내렸을 때 엔진룸에서는 지금 막 영역싸움에 나선 맹수 같은 소리가 났다. 내는 줄도 모르고 내는 소리, 본능에 가까운 그르렁. 그럴 때 실내에선 “어머”, “아흥” 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역시 그녀도 모르게 내는 소리 같았다. 잘 다듬어진 이두박근이나 허벅지 근육의 단단함을 손으로 처음 느낄 때 내는 소리가 그럴까? 둘 다 아주 다른 세계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게다가 DNA에 각인된 것 같은 G클래스의 남성성을 이토록 부드러운 실내에서 느끼는 순간의 짜릿한 이율 배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안팎으로 느끼면서, 프랑크푸르트 주변의 고속도로와 산길, 몇 개의 마을을 지났다.

메르세데스-AMG G63이 도달한 곳은 라인마인 ADAC(독일운전자클럽) 오프로드장이었다. 도착 즈음의 주차장에서, 차창에 빗방울 몇 개가 맺히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 지기 시작할 때, 모든 G클래스를 총괄하는 군나르 규텐케 박사가 말했다. “비가 오네요! 아주 좋아요. 땅이 더 미끄러워질 거예요. 굉장히 재미있을 겁니다.” 건물 밖으로 메르세데스-AMG G63 크레이지 컬러 에디션이 도열해 있었다. 피망 같은 빨강, 눈이 다 부신 노랑, 지금 막 양지바른 잔디에서 뽑아낸 것 같은 초록…. 지난 5월, 한국에서도 15대 한정으로 출시했다. 그 옆으로 G500 몇 대가 서 있었다. 차체에 진흙이 잔뜩 튀어서 마른 모습 그대로, 차체에서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극단적인 언덕과 내리막, 과연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은 터널, 깊이를 알 수 없는 작은 호수와 차가 뒤집어질 것 같은 비탈을 주파하고 막 돌아와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길을 지날 때, 운전자는 G클래스의 순수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땅으로 내리꽂힐 것 같은 내리막을 주파할 때도 전자장비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는다. 움직임에 개입하는 전자장비의 개입을 설계 단계에서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언덕에선 기어를 저단으로 유지시켜주는 ‘로 레인지Low Range’ 버튼을 누르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기어는 1단에 물린 채, 그 속도 그대로 언덕을 내려가는 식이다. 여기서 운전자가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차를 믿는 것뿐. 조주석에 같이 탄 메르세데스-벤츠의 인스트럭터는 “긴장하지 말고 차를 믿으라”는 말을 반복했다. 비에 젖은 산길,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접지력을 잃을 수 있다. 하릴없이 미끄러진다는 뜻이다. 진흙에서 미끄러지는 건 얼음호수 위에서 미끄러지는 것과 거의 같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다간 앞 범퍼가 땅에 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침착하게 1단에 물려 있는 기어만으로, G클래스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힘을 조율하는 것 같았다.

“G클래스는 전부 기계식인가요? 전자장비는 안 써요?”

“이런 식으로 하면 괜찮아요, 충분해요. G클래스잖아요.”

 

메르세데스-벤츠의 절정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핵심은 메르세데스-벤츠 관에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카브리올레는 그중 백미였다. 디터 제체 회장은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선망하는 차가 될 거라는 확신은 있다”고 말했다. 과연 맞는 말,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은 S클래스 카브리올레 앞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극단적인 아름다움과 평온, 고급함과 안락이 그 안에 다 있었다.

G클래스를 타고 숱한 랠리에서 우승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오프로드에서의 운전법을 강의하는 인스트럭터가 웃으면서 말했다. G클래스가 지켜온 건 특유의 디자인만이 아니다. 2016년형 G클래스도 서스펜션과 ABS 시스템을 개선하는 정도로 그 기계적 원형을 지키고 있다. 이런 건 운전하는 순간 알 수 있다. G클래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고집할 수밖에 없는 감각이다. 더 본능적으로, 무조건 순수에 가까운 감각을 지향할 테니까.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타고 네 바퀴의 접지력을 예민하게 유지하면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을 기민하게 느끼는 것,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험로를 관찰하듯 달리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G클래스는 모든 코스를 다만 듬직하게 주파했고 오프로드장은 그대로 놀이터가 됐다. 이러니 G클래스를 타고 지나갈 수 없는 길이 있을까? 실력과 담력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주차장에는 ‘OTTO’라는 이름의 1988년형 G클래스가 서 있었다. 군터 홀토프라는 이름의 할아버지가 1989년부터 2014년까지 총 89만8천2백80킬로미터를 주행하면서 전 세계를 일주한 그 차였다. 뒤 창문 안으로 보이는 실내에는 밤을 보낼 수 있도록 간이 침구류가 놓여 있었다. 또한 안팎으로 30년에 가까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2백15개국을 누비는 동안 엔진이 한 번도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총괄 군나르 규텐케 박사가 말했다. 군터 홀토프 씨가 G클래스와 함께 지낸 시간과 그 모든 길을 그날 체험한 오프로드 교장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결심만 한다면,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는 거의 비현실적인 내구성과 성능으로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단단한 상징만으로도 가슴이 떨리지 않나?

 

콘셉트 IAA와 벤츠의 미래

IAA는 메르세데스-벤츠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의 이름이다. Intelligent Aerodynamic Automobile, 지능형 공기역학 자동차의 약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디지털 트랜스포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생긴 차가, 무대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돼 있었다. 시속 80킬로미터에 이르면 자동으로, 공기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이 극적으로 변한다. 리어램프 주위에서 8부분으로 나눠진 뒷날개가 점점 길어져 공기가 흘러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앞 범퍼 아래, 그릴 주변, 휠도 스르륵스르륵 막히고 길어지고 부풀어 오른다. 그러면서도 디자인 언어는 지금 S클래스의 핵심을 그대로 잇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미래를 제시하면서 현실을 정확히 반영했다. 이런 벤츠를 타고 달리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15년을 SUV의 해로 정했고, 올해 G클래스의 판매량만 20퍼센트가 상승했다. 돌아오는 길엔 GLE 하이브리드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향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았던 메르세데스-AMG G63과, 함께 진흙탕을 헤집듯이 달린 G500은 독일운전자클럽 오프로드장에 두고 왔다. 그저 몇 시간 같이했을 뿐인데, 길고 긴 야전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았다. GLE의 안락함 때문이었을까?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고요하고 나긋한 감각 때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한 곡이 끝나기 전에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토록 거친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하던 실력과 역사, 메르세데스-벤츠가 유독 G클래스에 갖고 있는 애정과 고집을 생각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