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에 관하여

인간은 다른 동물의 털로 겨울을 난다. 혼자선 계절을 보낼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서.

MINK 모피의 미덕이 호사스러움이라면, 밍크는 그 논리에 가장 부합하는 소재다. 미끄러질 듯 부드러운 감촉과 각도에 따라 빛을 달리하는 광택, 풍성한 털의 양감은 그 어떤 소재보다 화려하며 압도적으로 호화롭다. 밍크는 모피의 밀도와 길이, 감촉과 탄력, 색깔로 품질을 결정하는데, 일반적으로 미국 북부와 캐나다, 핀란드, 스웨덴, 러시아 등 극지방에서 사육한 것을 최고로 친다. 요즘은 털을 짧게 가공한 시어드 밍크도 많이 사용한다. 밍크 코트 8백50만원, 사바티에.

 

VICUÑA 지구상의 동물 섬유 중 가장 얇은 것은 비쿠냐의 털이다. 두께가 6~10마이크로미터밖에 안 돼 이것으로 지은 옷은 실크처럼 곱고 부드럽다. 비쿠냐는 잉카 왕족에게만 허용되었을 만큼 진귀한 소재다.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털이 200그램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개체수 보존을 위해 3년에 한 번씩만 채집하고, 원단은 섬세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속털만 골라 직조한다. 물론 캐시미어보다 비싸고, 촉감 역시 한 수 위다. 한번 만지면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비쿠냐 점퍼 4천4백50만원, 로로 피아나.

 

MOUTON 양이 겨울을 나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무통을 입는다. 털과 가죽을 그대로 살려 양면 가공하기 때문에 양털의 온기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복슬복슬한 털은 깨끗이 세척해 안감으로 사용하고, 가죽의 은면은 스웨이드나 나파 가공해 바깥쪽으로 둔다. 그러면 양을 꽉 안고 있는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스탕’이라고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더블 페이스 스킨 또는 램 시어링이라고도 부른다. 무통 재킷 6백20만원, 버버리 프로섬.

 

MOHAIR 모헤어는 앙고라 염소의 털이다. 내구성과 탄력이 우수하고 가벼운 데다, 염색했을 때 발색이 좋고 동물 섬유 중에서 가장 광택이 뛰어나 다른 소재와도 종종 혼방한다. 모헤어는 가공 방식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낸다. 남성복에서는 섬유를 방적해 고급 양복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렇게 니트로 만들어 솜털같이 보송보송한 질감을 살리기도 한다. 흔히 앙고라라고 부르는 소재는 앙고라 토끼의 털을 뜻하므로 따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모헤어 니트 가격 미정, 톰 포드.

 

KARAKUL 갓 태어난 양의 모피를 사용하는 탓에 윤리적인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카라쿨 양털에는 거부하기 힘든 극도의 탐미가 있다. 조밀한 털의 구성과 고혹적인 광택, 화려하게 굽이치는 특유의 결은 주술적이라 할 만큼 관능적이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페르시아 황제의 모자나 빅토리아 시대의 재킷, 소비에트 시절의 코사크 햇처럼 극적인 장식성이 필요한 곳에는 이 소재가 빠지지 않고 쓰였다. 시각적인 효과만큼은 의심의 여지없이 강렬하므로. 카라쿨 모자 4백80만원, 톰 브라운.

 

BEAVER 고급스러운 윤기와 질감을 지닌 비버털은 오래전부터 널리 쓰인 모피다. 특히 유럽에서는 16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멋 좀 부린다는 귀족들은 모두 비버 펠트 모자를 머리 위에 얹었고, 사교계 부인들은 우아한 비버털 스툴을 둘렀다. 요즘은 원모의 거친 보호 털을 뽑아내고 솜털 길이를 가지런히 깎는 가공법을 주로 사용한다. 내구성과 내수성이 우수하고, 염색도 쉬워 의복과 액세서리에 두루 쓰인다. 비버털로 안감을 처리한 카디건 5백80만원, 스베보 by 지.스트리스 494 옴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