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2015 MEN OF THE YEAR – 정재영

2015.11.26GQ

지금의 정재영은 첫눈처럼 새롭다.

검정색 턱시도는 권오수클래식. 검정색 터틀넥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촬영 전에 인터뷰부터 할까요? 네, 좋아요. (에디터의 자료를 가리키며) 이게 다 뭐예요? 지난 인터뷰 안 봐도 돼요. 그때그때 달라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니까요?(웃음) 지난 십여 년 동안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말 꾸준하게 작품을 했어요. 매년 거의 두 편 이상 출연했네요. 아니에요. 막상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5년 전에 출연한 <퀴즈왕>은 총 세 컷 나왔어요. 카메오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제작자 김무령 대표 : 카메오 절대 안 한다면서 결국 했네요. 다음엔 내 영화에도 카메오 좀 해줘요!) 에이 그게 진짜 마지막이었어요. 그 이후로 장진 감독한테도 카메오 안 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장진 감독이 저를 안…, 안 쓰잖아요. 하하. 그리고 <우리 선희>도 잠깐 나왔고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홍상수 감독 영화에 두 번째로 출연한 작품이죠? 꽤 여러 편 출연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두 편밖에 안 돼서 놀랐어요. <우리 선희>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좀 지적이지 않은 사람을 연기했죠.

대신 함춘수(정재영)는 강요하지 않아요. 특히 2부의 함춘수는 솔직하되 노골적이지 않죠. 윤희정(김민희)과 상황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선을 넘지는 않아요. 강해 보이려는 대신 옷을 훌훌 벗죠. 그래서 귀여웠어요. 에이, 귀엽긴요 지저분하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제 모습을 반영한 인물이죠.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인물은 배우에 따라 굉장히 많이 달라져요. 매일매일 아침마다 (시나리오를) 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유)준상 씨는 준상 씨의 모습 그대로가 나오고 (이)선균이는 선균이 그대로 연기하는 거예요. 배우가 자신의 진짜 모습이 까발려져요. 그냥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오는 거죠. 촌스러운 사람은 촌스러움이 묻은 채로요. 근데 홍 감독님 영화에서 제대로 된 뽀뽀도 안 하고 그냥 끝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가 <우리 선희> 때는 (정)유미랑 뽀뽀를 했어요. 그래서 은근히 각오하고 있었는데…. 하하. 이번 영화 찍을 때 마지막 대본을 봤는데도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촬영 끝나고 나서 감독님께 여쭤봤는데 “널 계속 보니까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가 않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랑 술 마시면서 나눈 대화에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정재영이란 배우에 대한 관심이 적었어요.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달까요? 항상 비슷하다고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을 본 이후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을 하면 어떤 배우들은 전환점이 찾아와요. 감독님의 작업 방식 자체가 어떻게 보면 스스로 큰 용기를 내는 거예요. 아침에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말하는데, 안 될 때는 스탠바이 하고 있는 스태프들은 어떡해요? 한계를 만들어놓고 자신을 던지는 거죠. 사실 여배우들도 용기를 내야 해요. 메이크업도 제대로 못하니까요.

그리고 윤희정은 이상한 보라색 패딩을 입었고요. 그게 우연히 작업실에 걸려 있었어요. 그걸 입으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민희가 엄청 당황했어요. 하하. 엄마 옷 같아서요. 오히려 제 옷 중에는 2백만원 짜리도 있어요. 안에 입은 거는 홍상수 감독님 옷이고요. 제 옷은 (발을 들어 올리며) 지금 신고 있는 이 신발이랑 청바지가 전부였어요.

근데 청바지가 제일…. 한 13~14년 전에 통 넓은 청바지가 있어서 가져갔는데 감독님이 엄청 좋아하셨어요. 그게 감독님 스타일이에요. 근데 요즘은 좀 슬림한 걸 입고 다니시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함춘수가 윤희정을 바라보는 눈빛이 솔직했어요. 그래서 순수했고요. 하지만 영화를 본 제 아내의 첫마디는 이거예요. “왜 이렇게 느끼해? 토할 뻔했어.” 어떤 분들은 유부남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느끼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왜 이렇게 껄떡대? 저렇게까지 하고 싶나?” 저는 순수했지만요.

함춘수의 대사 그대로 같았어요. “예민하고 용감해져야 합니다.” 결혼한 지 17년 됐는데 연애 초기 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솔직해야 미스터리가 생길까요? 영화가 1부와 2부로 나뉘잖아요. 1부를 찍고 나서 2부를 찍으니까 계속 이전에 연기한 게 기억나는 거예요. 우리끼리는 저예산 <인터스텔라>라고 얘기했어요. 평행 우주라고. 1부에서 만났을 때의 기억이 나는데 또 처음처럼 하니까 감정이 미묘했어요. 그게 또 다른 의미의 솔직함이고 미스터리일 수도 있겠네요.

때때로 진짜가 가짜보다 훨씬 모호한 것 같아요. 올해 출연한 <어셈블리>가 그 단적인 예입니다. 정치를 다룬 드라마지만, 시작부터 선과 악이 모호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타지를 지닌 채 영화를 봐요. 드라마는 더 심하고요. 뭔가를 해소해주길 바라죠. 이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극장을 찾아가는 이유가 골치 아픈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죠. 예전과 달리 관객이 1천만 명 드는 영화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이유도 영화가 확실하기 때문이에요.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거 재미있어?”라고 물으면 단박에 “어 이거 재미있어”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해요.

배우들의 연기도 자극적이고 과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 또한 몇몇 영화에서 오버했어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촬영할 때는 조금이라도 자극적인 게 재미는 있지만 지나고 보면 그건 가짜일 때가 많아요.

최근에 본 <스파이 브릿지>의 주연 배우들은 항상 무표정이에요. 그런데도 감정이 견고하게 쌓여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그걸 빨리 깨달은 것 같아요. 아마도 스티븐 스필버그나 톰 행크스 같은 분들은 진작에 깨달았을 거예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영화계에서 빨리 깨달은 사람 중 하나일 거예요. 미국의 한 평론가가 이렇게 썼어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미국의 두 가지 얼굴이 있는데 하나는 모뉴먼트 밸리의 울긋불긋 솟아 있는 사막이고, 하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라고. 모뉴먼트 밸리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도 움직이지 않아요. 그런데 계속 봐도 지겹지 않아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보고 정적인 연기가 최선이라고 깨달았대요. 그의 얼굴에서 움직이는 건 커다란 목젖뿐이에요.

인터뷰 직전에 <아는 여자>를 보고 왔어요. 11년 전과 많이 변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항상 충혈된 그 눈도 그대로고요. 담배를 많이 피워서 눈이 항상 빨개요. <아는 여자> 때는 젊었죠. 이제 흰 수염, 흰머리가 많이 나요. 염색은 촬영할 때만 해요. 사실 전 꾸미는 건 개의치 않았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너무 막 입으면 추해 보이는 것 같아요.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옷 좀 챙겨 입으라는 조언을 좀 듣는 편이에요. 이젠 슬리퍼도 안 신어요. 예전에는 얼마나 심했냐면 아내가 남자는 벨트와 지갑이 좋아야 한다며 백화점에서 80퍼센트 세일한다고 베르사체 벨트를 사왔는데 정말 대판 싸웠어요. 저는 쓸데없이 따라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패션, 유행 이러는데 그런 건 누가 만드는 걸까요? 아, 이런 말은 <GQ>에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니에요?

자신만의 것이 중요하죠.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건 어떤 거예요? 여행 갈 때는 사치를 좀 부려요. <어셈블리> 끝나고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하와이에 다녀왔어요. 7박을 했는데 4박은 아파트 같은 걸 빌렸고, 그런 곳에 계속 있으면 꿀꿀하니까 나머지 한 3일은 괜찮은 호텔에서 잤죠. 사실 숙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최고의 사치는 아니네요. 아, 최고의 사치라…. 원래 (매니지먼트) 회사 차를 타고 다녔는데 올해 차를 샀어요. 그랜드 체로키요. 근데 그것도 최고의 사치는 아니에요. 사실은 디스커버리를 사고 싶었는데 한 1천만원 정도 차이가 났어요. 하지만 이미 그랜드 체로키도 예산에 비해서 많이 오버한 거였어요. 너무 예산을 넘기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면 평생 그랬던 것 같아요. 차를 살 때 항상 원하는 차보다 한 단계 아래밖에 못 사는 거 같아요. 옛날에도 코란도 밴을 사려다가 결국 4백만원인가 5백만원이 싼 레토나를 샀어요. 그 다음 차도 뭘 사려고 했는데 옵티마를 샀고요. 그래서인지 주류가 아닌 차를 계속 샀네요. 뭐랄까 항상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네요.

이제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곧 개봉하는데, 올해 출연한 세 작품은 최선일까요? 차선이었건 차차선이었건 간에 결국 했으니까 최선으로 노력한 작품이 되는 거죠. 일단 작품을 하는 게 중요해요. 열정보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연기를 하는 거예요.

차선으로 선택한 그랜드 체로키도 좋은 차니까요. 네, 그렇죠. 하지만 얼마 전에 사고가 났어요. 아, 진짜 1만 킬로미터도 안 뛰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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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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