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2015 MEN OF THE YEAR 강정호

2015.12.02GQ

올해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거라고 믿은 사람은 오직 강정호뿐이었다.

PITTSBURGH, PA - AUGUST 21: (EDITORS NOTE: Image has been converted to black and white) Jung Ho Kang #27 of the Pittsburgh Pirates looks on before the game against the San Francisco Giants at PNC Park on August 21, 2015 in Pittsburgh,Pennsylvania. (Photo by Rob Tringali/SportsChrome/Getty Images)

내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홈경기가 열릴 고척돔에서 어제 (11월 5일) 서울 슈퍼 시리즈가 열렸어요. 인터넷으로 보려고 했는데, 해외(피츠버그)에서는 볼 수가 없었어요. 다른 방법도 계속 찾아봤는데, 결국 실패했어요.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많은 사람이 큰 금액을 받고 미국에 갔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한국에 남았으면 안정적이고, 좀 더 많은 연봉을 받았을지도 몰라요. 최근 KBO에서도 아주 큰 규모의 계약이 이뤄지니까요. 사실 처음부터 메이저리그를 꿈꾼 건 아니에요. 1년, 1년을 하다 보니까 점점 더 욕심이 생겼어요. 재작년 시즌을 시작하면서부터 꿈을 높게 가진 것 같아요. 최고의 선수들이 있는 곳에서 경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먼저 수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KBO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3루수나 유격수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는 팬도 많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이제야 세계 최고 선수들이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알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TV로만 보니까 감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메이저리그에 와서 진짜 경험을 해보니까 ‘나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어요. 사실 처음부터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기회만 꾸준히 주어진다면 금방 어느 정도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예전부터 느낀 건데 강정호 선수는 참 무덤덤한 것 같아요. 속내를 잘 드러내지도 않고요. 처음에 제가 메이저리그 간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반신반의했잖아요.

그렇죠.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주전 내야수를 한다고?”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전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한국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야구선수 개인으로서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먹었어요. 안 될 거라는 말을 다시는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95마일 이상 빠른 공을 잘 치는 손꼽히는 타자였어요. 시즌 초 스스로 정한 2할 7푼, 15홈런 이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빠른 공 공략이 주요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한국에 있을 때도 빠른 직구는 자신이 있었는데, 미국에 오니까 변화구 공략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특히 싱커에…. 솔직히 초반에 많이 고전했어요. 처음 본 선수도 많고 어떤 스타일인지도 잘 모르니까요. 그런데 계속 출전하면서 적응하다 보니까 금방 눈에 익었어요. 다른 한국 선수들도 미국에 와서 꾸준히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 이상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시즌 초반 내야 안타나 땅볼 코스가 좋아 안타가 되는 등 운도 따르는 것 같았어요. 잘 풀렸던 거 같아요. 내야 안타를 치는 스타일은 아닌데, 운이 좀 따르면서 어렵게 가지 않게 되었어요.

시즌 첫 번째 홈런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요? 메이저리그 특급 마무리 트레버 로젠탈(올 시즌 48세이브, 평균자책점 2.10) 선수에게 9회 초, 1 대 0 상황에서 초구를 노려 동점 홈런을 만들었어요. 이후에도 로젠탈 선수에게 강했고, 극적인 상황에서 홈런을 종종 쳤는데요. 경기 초반보다는 후반부 들어 게임이 타이트해질 때 스릴이 있어요. 장점이자 단점인데요, 제가 뭔가를 쳐서 경기를 이기고 싶은 욕심이 너무 강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승부해야 하는 찬스가 왔을 때, 해내면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잖아요. 그런 상황을 즐기고 꼭 영웅이 되고 싶어요.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신시내티 레즈)와 펫코 파크(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올해 최장 비거리 홈런을 기록했어요. 특히 펫코 파크는 홈런이 잘 안 나오는 투수 친화적인 구장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혹시 보양식 같은 걸 따로 챙겨 먹었나요? 아니요. 그냥 비타민 챙겨 먹고요, 최대한 살 안 빠지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잘 먹지 못해요. 부모님이 보내주신 김치 정도 먹을 뿐이에요.

쉴 때는 주로 뭘 했어요? 한국에서는 쉬는 날 친구들 만나고 이랬는데 여기서는 쉬는 날 자체가 많이 없어요. 어쩌다 쉴 때면 피츠버그 시내를 돌아다녔어요. 어쨌든 처음 온 동네니까, 동네 구경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편이에요. 아주 가끔 여행 아닌 여행을 하는 거죠.

피츠버그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요? 처음엔 피츠버그 사람들이 저를 아는지 잘 몰랐었어요. 대부분 야구장만 가고 시합만 했으니까요. 한데 어느 날 경기장에 태극기가 막 휘날리고 있었어요. 피츠버그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어서 엄청 감사했어요. 특히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제가 휠체어 타고 들어갈 때 관중들이 환호해준 건 진짜 감동적인 경험이었어요.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시즌이 끝난 최근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인 요청을 받기도 하나요? 최근엔 가끔씩요. 하하.

쉴 때 올 시즌 경기를 다시 보기도 하나요? 요즘은 할 게 없어서 다시 봐요. 안 좋다가 어떻게 좋아졌는지를 확인하려고요.

시즌이 끝난 지금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오전에 재활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영어 수업 듣고, 밤에는 개인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요.

“지루한 루틴을 이겨내는 게 운동선수의 재능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매일 똑같은 운동을 하는 게 너무 지루해요. 근데 제 성격이 지난해보다 올해 성적이 안 좋으면 많이 분해하는 타입이에요. 저는 지금 절대 쉴 수 없어요.

쉬어야 하는 시기 아닌가요? 제가 쉬고 있을 때 다른 선수들이 운동하는 걸 생각하면 쉴 수가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새 운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 메이저리그 4번 타자이기도 했어요. 어떤 타순이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건데, 4번 타자일 때는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유격수에 4번 타자는 한국에서도 쉬운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내년에 2루수로 뛸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도 있어요. 2루수는 스물두 살 때 한 번 해봤어요. 안 해본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글쎄요, 아직 우리팀 2루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그래도 가장 편한 건 3루수나 유격수겠죠? 아무래도 제일 많이 했으니까요.

3루수와 유격수 중에서 3루 수비가 더 낫다는 의견도 있어요. 어떤 포지션이 편해요? 시합을 더 많이 나갈 수 있는 포지션이 편하겠죠.

우문현답이네요. 박병호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항상 제게 고마워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저보다는 많이 받을 거예요.

전화를 걸기 전에 부상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한데 목소리가 아주 밝아서 복귀 시점을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재활 상태가 생각보다 빨라서요. 정확히 약속드리긴 어려워도, 전반기 일찍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꼭 이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저 정말로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평상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보니 편안해 보였어요. 미국 진출 후 강정호 선수에 대한 평가 중에서 제일 많이 바뀐 건 패션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요? 여기서는 원정 경기 갈 때는 항상 수트를 입고요, 야구장 갈 때는 꼭 셔츠를 입어야 해요. 특별히 바뀐 건 없는데요. 아, <GQ> 덕분이죠. 여기서 <GQ> 자주 봐요. 한데, <GQ KOREA>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앞으로는 피츠버그로 보내드리죠. 진짜요? 꼭, 꼭 보내주세요.

KGH thumb

    에디터
    양승철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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