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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488 스파이더를 타고 하루종일 달렸다

2015.12.07GQ

페라리 488 스파이더를 타고 이탈리아 볼로냐 일대를 굉장한 기세로, 때론 느긋하게 달렸다. 지붕을 열고 종일 페라리를 탄 하루, 어떤 기분에 대하여.

Ferrari 488 Spider red 008

막다른 길이었다. 어떤 길을 어디서 잘못 들었는지 확실치 않았다. 우리는 페라리 488 스파이더를 타고 작은 마을길을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열어놓은 지붕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흙냄새에 행복해하면서. 어쩌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진입로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있었고, 시승은 거의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우리는 조금 의아해하면서 마주 보고 웃다가, 페라리 488 스파이더가 마침 좋은 각으로 떨어지는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느긋하게 차를 다시 주차했다. 어차피 막힌 길이었다. 그 길로 들어오는 차도 없고 차선도 없었다. 거기서 사진을 찍으면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다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볼로냐 인근 시골 마을, 우리 주변에 빨간색 페라리와 지는 해, 가끔 부는 바람뿐인 저녁이었다.

한참 사진을 찍다가, 차를 너무 오래 타서 조금 굳은 것 같은 몸을 풀고 있을 때 골목 어귀에서 서성대는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였다. 여자는 이쪽으로 뛰어오려다 멈춰서 남자를 보고, 다시 이쪽으로 뛰어오려다 멈칫했다. 둘 다 배낭을 메고 있었다. 여자는 마침내 결심한 듯 뛰어오기 시작했다. 배낭을 메고, 남자친구랑 둘이서 동네를 오래 산책한 것 같은 십 대였다. 뛰어오면서 흘러내린 배낭은 팔꿈치 즈음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도록 두고, 여자애는 상기된 얼굴로 숨을 헐떡거렸다. 그러곤 집게손가락으로 빨간색 페라리 488 스파이더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거… 당신 차예요?”

“시승 중인 저널리스트야, 페라리 좋아하니?”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이탈리아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큰 미소를 오랜만에 봤다. 마침 쭈뼛거리던 남자친구도 천천히 걸어 차 옆에 와 있었다. 멀리서 페라리 488 스파이더를 보고 여기까지 뛰어온 거였다. 너무 좋아서 그랬다는 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우리는 차에서 좀 멀리 떨어져 섰다. 여자애는 휴대전화로 차 곳곳을 찍으면서 말했다.

“와우, 아름다워요 정말…. 꿈이에요.”

그러다 그 두 사람이 같이 나오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손을 뻗을 때 말했다.

“찍어줄게. 전화기 줘, 네 것도 줘.”

“고마워요.”

그들이 “땡큐! 챠오!!!” 하고 뒤돌아 뛰어갈 때, 해는 거의 수평선에 걸쳐 있었다. 해가 미처 다 떠오르기 전에 시작한 시승이었다. 능선에 있는 와이너리 겸 리조트에서 출발해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촬영을 마치고, 각각의 페이스로 여기까지 달려온 참이었다.

GQT-MotoringFerrari

페라리 488 스파이더는 458의 후속 모델이자 V8엔진 스파이더의 전통을 잇는 모델이기도 하다. 3,902cc V8 트윈터보 직분사 가솔린 엔진의 최고출력은 무려 670마력이다. 458 스파이더는 565마력이었다. 105마력 더 강해졌다. 최대토크는 77.5kg.m이다. 역시 22.2kg.m 상승한 수치다.

458 스파이더 역시 완벽에 가까운 페라리였는데, 거기서 이렇게까지 더 향상됐다. 거의 모든 수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더 가벼워졌고, 더 빨라졌고, 훨씬 더 강력해졌다. 원래 자연흡기였던 엔진은 이번부터 트윈터보 엔진으로 변했다. 전보다 적은 배기량으로 전보다 훨씬 큰 힘을 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힘을 내기까지 멈칫하는 시간은 단 0.8초.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반응속도가 아니다. 원할 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오른발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가차 없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땐 내가 미처 내는 줄도 모르는 소리를 계속 냈다. 주로 의성어였는데, 그저 “어어어, 오와와와!! 워어어!” 하는 식이었다. 이 속도로 진입하면 미끄러질 게 뻔한 코너를 슥, 하고 누가 볼을 쓰다듬듯이 빠져나갔다. 코너의 변곡점을 지나는 순간 가속페달이 깊어진다 싶더니 눈앞에 보이는 거의 모든 풍경이 소실점으로 빨려들었다. 꽤 널찍했던 이차선 산길, 차선만 제대로 지킨다면 맘껏 달려도 좋은 길이었다. 속도계를 흠칫 봤더니 시속 150킬로미터를 넘어 있었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초. 좁은 산길이라도, 한 코너에서 다음 코너로 가는 사이에 시속 100킬로미터를 우습게 넘나들 수 있다는 얘기다. 시속 2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7초다. 이건 고속도로에서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속도. 최고속도는 시속 325킬로미터다. 이건 어떤 활주로에서 도전해보면 영영 못 잊을 경험이 될 속도다. 상황이 허락해도, 그 속도에 도달하기 전에 포기하는 일이 더 흔할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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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01 운전에 필요한 거의 모든 조작은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핸들은 손에 착 감긴다. 도저히 놓고 싶지 않을만큼. 02 페라리의 주행모드를 선택하는 이 버튼을 마네티노라고 부른다. 다섯 가지 주행모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안전장비를 끄고 달리는 일은 트랙이 어울릴 것이다. 스포트모드에서도 무시무시한 쾌락을 경험할 수 있다. 03 열쇠는 저기에 꽂아두고 후진기어는 저렇게 누르는 방식이다. LAUNCH는 레이스 모드에서 엔진회전수를 최대치로 올려놓고 날아가듯 출발하는 기능, AUTO는 변속 방식이다. 04 조수석에는 속도와 엔진회전수를 볼 수 있는 작은 화면이 있다. 동승자도 알 건 알아야 하니까. 05 계기판에는 엔진회전수 게이지가 가운데, 가장 크게 있다.

페라리 운전석에선 용기를 내는 것보다 의심을 거두는 일이 우선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의문들. ‘저기 보이는 저 코너를 이 속도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달려도 괜찮을까? 여기서 멈출 수 있을까?’ 다 부질없었다. 페라리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 일은 지금까지 익숙해진 모든 감각을 새로 조율하는 과정이자, 시간과 공간의 틀을 조금 압축하는 일이기도 했다.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건 다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구를 지배하는 물리법칙과 경험, 안전에 대한 감각까지 잊으면 좀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겠지만….

아까 조수석에서 경험했던 그 언덕길을 운전석에서 다시 왕복했다. 그 정도의 쾌락에 이르는 데 이렇게까지 간편한 과정이라니. 발가락 끝에서 시작된 어떤 감각이 종아리와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아랫배 근처에서 휭 돌았다. 이내 가슴을 간질이는가 싶더니 즉시 뇌에 있는 수분을 누가 휘휘 젓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지럽지 않고, 다만 아찔하게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풍경이 명료해졌다. 지붕은 열어놓았다. 그래서 길과 나, 페라리와 바람, 속도와 감각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차로 이렇게 달릴 때의 몇 배에 달하는 감각과 정보량이었다. 아까 옆에서 보고 놀랐던 속도, 시속 150킬로미터는 강변북로의 시속 80킬로미터와 같은 감각이었다. 언덕길을 왕복하고 내려와 시계를 보니 단 15분이 지나 있었다. 40분 정도 지난 줄 알았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속도가 빨라서 15분을 40분으로 느낀 게 아니었다. 15분간의 몰입, 페라리 488 스파이더와 길에만 집중했던 시간이 감각을 왜곡한 것이었다. 같은 감각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선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나들면서도 페라리가 빠르다는 생각을 못했다. 다른 모든 차가, 심지어 창밖으로 지나가는 그 모든 배경이 느려진 것 같았다. 지구가 조금 천천히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환상적인 감각을 체험하는데 페라리 488 스파이더의 실내는 편안하기까지 했다.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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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LS 페라리 488 스파이더의 외관은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기능적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모든 면, 모든 곡선의 흐름이 공기역학을 고려한 결과다. 바람이 차체를 훑고 지나가는 길이 다 보인다.

그런 채 다분히 관능적이었다. 운전자가 남자라면 이 차를 여자에, 그날의 운전을 혼자가 아니었던 어떤 날 깊은 새벽에 비유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운전자가 여자였다면, 그녀가 주체로서 경험한 어떤 밤의 황홀한 움직임을 떠올렸을지도. 손과 발로 자극한 정도와 부위에 따라, 페라리 488 스파이더는 다채롭고 질리지 않는, 멈추고 싶지도 않은 소리를 들려줬다. 그럴 때마다 다른 반응이었다. 어딘가를 전율하듯이, 생전 처음 내보는 소리로 서로를 자극하듯이. 패들 시프트로 기어를 한 단 한 단 내릴 때의 소리와 감각, 그 모든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각기 다른 정도로 밟았을 때의 또 다른 힘. 계속 듣고 싶은 소리, 깨물어보기도 하고 굴려보고 싶기도 한 호기심, 그럴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은 순간의 총합….

일본, 싱가포르, 영국, 호주에서 온 기자들과 같이 있었던 공식 회견에서, 페라리는 488 스파이더의 표적 고객을 이렇게 분석했다. 1. 60퍼센트 이상은 이미 페라리를 가진 사람. 2. 지붕을 열고 달리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쾌락주의자. 3. 역동적이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운전을 선호하는 사람. 4. 기왕이면 교외에서 다른 차보다 페라리를, 누군가와 함께 타기를 즐기는 사람. 몇 가지 분석이 더 있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는 누군가의 시작이기보다 완숙한 고민과 선택의 결과에 어울리는 차다. 이기려고 애쓰기보다 그 상태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 어울리는 성품, 그 쾌락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데 인색함이 없는 사람을 위한 차이기도 하다. 그렇게 전 지구적인 꿈으로 자리매김한 거의 유일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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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는 어떤 항구 옆 노천식당에서 했다. 테이블 건너편에 우리가 타고 온 10대의 페라리가 도열해 있었다. 지역 경찰이 협조하고 페라리 본사가 기획한 일종의 전시였을 것이다. 강가를 뛰던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 쇼핑백을 들고 걸어가던 20대, 엄마와 산책하던 꼬마도 페라리 앞에서 멈췄다. 사진을 찍고, 손을 뻗어 페라리랑 같이 ‘셀카’를 찍고, 주변에 있는 페라리 스태프와 경찰과 환담을 나눴다. 지나가면서 한 번 사진을 찍은 어떤 여자애는 친구를 데리고 다시 돌아와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마mama 다음으로 배우는 단어가 페라리일 거야.” 옆에서 식사하던 페라리 싱가포르 홍보 담당자가 웃으면서 말하고 덧붙였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진심으로 페라리를 사랑해, 페라리는 꿈이야. 그냥 모두의 꿈.” 한국이라고 다를까? 11월 17일은 페라리 488 스파이더가 한국에 공식으로 출시된 날이다.

페라리의 상징은 이토록 단단하다. 그 상징 안에서 진화와 도약을 멈추지 않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지붕을 열고 숙소로 돌아갈 땐 서두르지 않았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로 공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속도는 이미 충분히 겪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차가 딱 마음대로 움직여줄 때의 환상적인 기분도. 그러니 돌아가는 길은 좀 느긋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시골의 흙과 풀 냄새를 다시 맡으면서, 머리 위로 볼로냐의 하늘과 바람을 그대로 소유한 채. 이런 저녁이야말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면서.

    에디터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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