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로로 피아나와 평화와 여가

2015.12.10GQ

도쿄 메이지 신궁 주차장에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클래식 카 1백 수십 대가 도열해 있었다. 도쿄 라 페스타 밀레 밀레아의 출발선에는 로로 피아나 레이싱팀의 클래식 카도 있었다.

메인 2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카가 여기 모여 있습니다. 12시 정각에 출발하겠습니다!” 10월 16일 도쿄 메이지 신궁 앞,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낭창했다. 신궁 앞 돌다리 주변에는 20세기와 21세기가, 과거와 지금이, 시간과 공간이 가지런히 섞여 있었다. 신궁은 도쿄 하라주쿠 역 옆에 있었다. 신궁을 둘러싼 건 깊은 숲이었다. 숲의 규모는 총 70만 제곱미터, 12만 그루에 달하는 나무는 일본 전역에서 신사 건립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기부한 것이었다. 우리는 1백45대의 클래식 카가 출전을 기다리던 주차장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깊은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입구로 걸어 나온 참이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후까지 멈추지 않았다. 도쿄에서 열린 클래식 카 경주 대회, 라 페스타 밀레 밀리아 현장이었다.

밀레 밀리아는 원래 1927년부터 1957년까지 열린 자동차 경주였다.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공도 내구 레이스였다. 밀레mile는 1,000, 밀리아miglia는 마일mile이라는 뜻이다. 1,000마일, 약 1,600킬로미터를 달리는 레이스라는 뜻이다. 1957년에 큰 사고로 경주 자체가 중지됐다가 1977년에 클래식 카 경주 대회로 다시 시작됐다. 도쿄에서 열린 라 페스타 밀레 밀리아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날 메이지 신궁 앞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총 3박 4일 동안 약 1,200킬로미터를 달리게 돼 있었다. 매일 아침 7시 즈음부터 오후 5시 남짓까지 쉴 새 없이 달리는 일정, 각 코스별, 참가자별로 시간을 측정해서 가장 빠르게 주파한 팀이 우승하는 형식이었다.

“영국에서 온 87세 부가티, 지금 출발합니다! 아, 24년형 아주 큰 벤틀리가 출발합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다녀오십시오!” 12시 정각에 출발을 시작하자, 아나운서는 한 대 한 대 공들여 소개하기 시작했다. 1백45대를 소개하는데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소개를 거듭할수록 또랑또랑해졌다. 얼굴도 목소리도 살짝 상기돼 있었다. 더불어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행복한 여행 되세요!”라고, 극존칭의 인사말은 마냥 살가웠다. 운전자와 동승자를 포함해 2백80여 명의 참가자는 출발선에 서서 관객들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미소와 목소리로부터, 이 경주와 클래식 카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가장 오래된 차는 1922년에 생산된 부가티였고, 가장 젊은 차는 1968년에 생산된 토요타 200GT였다.

출발 몇 시간 전, 메이지 신궁 안쪽 주차장은 놀라운 전시장이었다. 모든 참가자와 모든 자동차가 거기 다 도열해 있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고, 살 수 있다 해도 그 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운 차들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인 건 1927년에 생산된 부가티 T35C였다. 운전자 야수히코 아키모토, 동승자 요코 아키모토의 차였다. 두 개의 앞바퀴 사이에는 손으로 돌려서 시동을 거는 발동기가 있었다. 옛날, 경운기에 시동을 걸던 그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동차에 스타팅 모터가 장착되기 전, 그야말로 생산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로로 피아나 레이싱팀 소속, 참가번호 9번 역시 부가티였다. 1926년에 생산된 부가티 T35, 운전자 쿄토 타케모토와 동승자 준코 타케모토의 차였다. 이 부부는 3박 4일간 이어진 레이스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주파해 우승했다. 로로 피아나가 자동차 경주를 위해 공들여 만든 로드스터 라인을 입고 시상대에 선 사진에서, 부부는 어린이처럼 웃고 있었다. 로로 피아나에서는 총 6팀이 참가했다. 루시아 갈리아니와 줄리아노 카네는 1938년산 란치아 아프릴리아, 마시모 라이몬디와 루카 패트론은 라곤다 2리터 슈퍼차저, 주세페 리델리와 조안드레아 리델리는 1923년 부가티 T23 브레시아를 타고 출전했다. 지금, 지구에 딱 한 대 남은 부가티였다. 1955년에 생산된 메르세데스 벤츠 190SL, 1955년 트라이엄프 TR-3를 타고 출전한 참가자도 로로 피아나 소속이었다.

주차장에서, 지붕이 없는 클래식 카로 참가하는 운전자들은 차에 우산을 씌워놓거나 비닐을 덮어놓는 방식으로 비를 피했다. 밀레 밀리아에 참가한 자동차를 보려고 미리 티켓을 사서 들어온 관람객의 숫자도 상당했다. 하나같이 쉽게 볼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다양한 브랜드, 다양한 시대, 가늠할 수 없는 가치의 클래식 카가 오로지 친선과 여가를 목적으로 모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막 시작하기 전의 공연장 로비가 이랬을까? 사람들은 조용하게 웅성거렸다. 저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거의 빗소리에 묻힐 것 같았다. 라 페스타 밀레 밀리아 공식 기념품을 판매하는 천막에선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들었던 것 같은 교향곡이 내내 나오고 있었다. 그런 채 도열해 있는 다양하고 찬란한 각각의 시대를 관통해 걷는 일.

GQB_Motoring_로로피아나2

로로 피아나 레이싱팀의 클래식 카 01 출발선에 선 51번, 1938년 산 란치아 아프릴리아. 02 50번 1932년산 라곤다 2리터 슈퍼차저. 03 짐작도 못할 가치, 7번. 전 세계에 딱 한 대뿐인 1923년산 부가티 T23 브레시아. 04 123번. 1955년산 트라이엄프 TR 3. 05 9번. 대회의 우승자 교토 타케모토와 준코 타케모토 부부의 1926년산 부가티 T35. 06 125번. 1955년산 메르세데스-벤츠 190SL.

출발 하루 전, 주일 이탈리아 대사관저에서는 로로 피아나 레이싱팀의 참가를 기념하는 오찬 행사가 있었다. 도쿄 미나토구의 고요한 주택가 골목 안쪽, 아무렇지도 않은 대문 양쪽에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일본인 직원 두 명이 서 있었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12시 정각에 입장입니다. 죄송합니다. 약 4분 정도 남았습니다.” 정중하고 정확한 태도, 초대받은 사람들은 제각각 성장을 하고 있었다. 초대장에는 “Mr. Woosung Jung”이라고 필경사가 공들여 쓴 글씨, 12시 정각에 대사관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호사스러운 환대, 손끝으로 만지는 순간 감화될 것 같은 로로 피아나의 드라이빙 슈즈….

뤼나르 블랑 드 블랑을 몇 잔 마셨더니 햇빛이 찬란한 오후의 시작이었다. 대사관저 안쪽에서 보이는 건 온통 초록색과 갈색, 나무 기둥과 무성한 잎사귀, 호수에 반사된 하늘. 작은 숲이 그 안에 다 있는 것 같은, 완연한 일본식 정원이었다. 몇 마리인지 알 수 없는 새소리를 배경으로 유난히 호탕한 웃음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미스터 로로 피아나와 로로 피아나 레이싱팀 선수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현관 입구에는 로로 피아나 소속 클래식 카 3대가 서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1938년 란치아 아프릴리아, 영국에서 온 1932년 라곤다 2리터 슈퍼차저, 프랑스에서 온 1923년 부가티 T23 브레시아.

GQB_Motoring_로로피아나3

01 출발 전의 메이지 신궁 주차장은 일종의 경연장이자 전시장이었다. 02 메이지 신궁의 신관이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03 우승을 축하하는 로로 피아나 레이싱팀 소속 선수들.

다양한 클래식 카 경주에서 이미 10회의 우승 경력을 가진 줄리아노 카네는 란치아 오너였다. 포르쉐와 애스턴 마틴도 수집하는 사람이었다. 라곤다 오너인 루카 패트론 역시 자동차 수집가, 2차대전 이전의 자동차에 유난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부가티 T23 브레시아를 가진 사람은 주세페 리델리, 이 차는 전 세계에 한 대뿐이므로, 앞으로의 하루하루가 그대로 역사인 차였다. 완숙한 친목, 이미 모든 경쟁에서 충분한 승리를 경험한 것 같은 여유, 같은 질량의 패배도 극복해낸 것 같은 관록…. 로로 피아나가 후원하고 참가한 라 페스타 밀레 밀리아의 풍경은 이렇게 그윽했다.

비가 채 그치기 전에 출발했던 참가자들은 오모테산도의 공도를 유유히 지나 다음 교차로를 향해 달렸다. 건널목 앞에 멈췄을 땐 지나가던 사람들도 손을 흔들어 응원해주었다. 안전하고 즐겁게 달리는 일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3박 4일의 몰입, 선수들은 일본의 고속도로와 산길, 시골길과 고즈넉한 마을을 두루 달릴 예정이었다. 며칠 후 다시 도쿄 메이지 신궁에 도착했을 땐 모든 참가자와 자동차는 물론, 같이 참가하고 후원한 로로 피아나에게도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좋은 오후의 시작이었다.

 

미스터 로로 피아나와 아주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

GQB_Motoring_로로피아나4

로로 피아나가 레이싱팀을 갖고, 이런 경주에 참여하는 이유가 뭐죠? 우리는 세 종류의 스포츠를 후원합니다. 세일링, 클래식 승마 장애물 비월 경기, 클래식 자동차. 때때로 골프와 폴로도 후원해요. 로로 피아나 고객이 실제로 여가로 즐기는 스포츠죠. 직접 후원하고 참가하는 것은 고객과 나누는 아주 효율적인 대화이기도 해요. 초고속 보트 경주offshore도 후원했어요. 보트 경주의 F1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제 안 해요. 너무 시끄럽고 공해도 심해서. 우리는 세일링에 더 가까운 브랜드예요. 자연적이고 은은하고 훨씬 아름다운 아이템이죠. 저도 세일링을 가장 좋아합니다. 로로 피아나를 위해서 경주하기도 해요. 팀의 일원이죠.

보트 이름이 ‘마이 송My song’이라 들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노래에서 따왔어요. 조용하고 나긋한, 아주 작은 파도와 바람 속에서 세일링하던 어떤 날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노래 같아요. 내가 가진 모든 보트를 마이 송이라고 불러요.

마이 송을 타고 어디까지 가봤어요? 지중해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1999년에는 대서양을 건너 캐러비안으로 갔어요. 능숙하기만 하다면 3.5미터 보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널 수도 있어요. 나는 못해요. 열아홉 살 때부터 보트를 탔어요. 챔피언이 되고 싶었다면 다섯살에 시작해야 했어요.

당신과 로로 피아나에 어울리는 아주 이상적인 주말을 묘사해주겠어요? 일단 주중에 무슨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겠죠? 토요일엔 너무 일찍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겨울이라면 11시쯤 나가서 스키를 타고 5시쯤 돌아와서 친구들과 좋은 식사와 와인을 먹고 아주 피곤해져서 푹 자는 것. 여름에는 11시쯤 일어나서 보트를 타고 어디로든 가는 거예요. 어떤 섬에 가거나 그저 보트 위에서 바람을 즐기고, 수영을 하고, 아주 작은 해변에 가고, 친구와 얘기하고 점심 먹고 와인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와인을 마시고. 그러곤 친구들과 영화를 볼 거예요. 그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자는 거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몸을 움직이고 싶어요.

어떤 사람에게 딱 한 번만 선물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주겠어요? 한 명 있어요. 스페인 전 국왕 카를로스한테 ‘더 기프트 오브 킹즈The Gift of Kings’를 주겠어요. 그는 굉장한 세일러고 로로 피아나의 ‘더 기프트 오브 킹즈’를 받을 수 있는 정말 거의 유일한 경력을 가진 친구죠. 왕이었으니까.

로로 피아나를 설명할 수 있는 세 단어를 말해줄 수 있어요? 품질, 품질, 품질이에요. 딱 하나 더 보태자면 존중.

성공한 인생이란 뭘까요? 가족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유일한 성공이에요. 당신의 아들이 행복하다면 성공한 인생이에요.

당신의 가족이 진짜 행복해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예요? 우리 가족은 아마 지금 행복할 거예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까. 하하. 단지 돈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대화를 통해 관계를 창조하고 아버지로서 아들의 인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정말 행복한 일, 성공한 인생이에요. 진짜 귀한 건 시간이니까.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늘 산에 오른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다만 목표를 바꾸지 않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행복하게 올라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겠죠.

목표를 성취했다고 생각해요? 물론이죠. 아직 죽을 때가 아니긴 하지만. 하하.

당신의 진짜 목표가 뭐예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 그들이 고통받지 않는 것,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가족과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 평화롭게, 즐기면서, 건강하게,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 이건 당신에게도 꼭 당부하고 싶어요. 앞으로 진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마세요. 절대로.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카가 뭐예요? 딱 하나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약 40년 전에 나온 페라리 캘리포니아. 정말 아름다운 차죠. 지금은 아주 작은 시트로엥을 타요. 테슬라는 두 대를 갖고 있죠. 디젤차를 안 탄 지 오래됐어요. 유럽은 디젤을 정말 많이 타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소음과 환경오염을 지지할 수 없어요.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개인은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아주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스트레스를 어떻게 조절해요? 스트레스? 하하하, 난 그게 뭔지도 몰라요.

    에디터
    정우성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