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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폼필리오의 ‘코트’ 철학

2015.12.11윤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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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컬렉션을 발표한 게 벌써 5년 전 일이에요. 그 사이 당신의 레이블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최근에는 다른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죠. 어때요? 성공했다는 실감은 나나요? 처음 레이블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까날리나 오니츠카 타이거 같은 큰 브랜드와 일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 점에서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겸손한 척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여덟 살 때부터 디자이너가 꿈이었다면서요? 맞아요. 저는 페사로라는 곳에서 자랐어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할머니가 거기서 몇 개의 부티크를 운영했거든요. 어릴 땐 거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옷을 보고 만지는 게 저에겐 놀이였죠. 그러니 어떻게 옷에 관심이 없을 수 있었겠어요?

그래도 어떻게 그런 어린 나이에 명확한 꿈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때 일이 기억도 잘 안 나거든요. 어른들은 보통 아이들 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잖아요. 아마 저희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저도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제가 옷을 만들고 싶다고 꽤나 당돌하게 대답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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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들어보니 왠지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 같아요. 지금이 있기까지 가족의 영향이 컸겠죠? 아버지는 건축가였고,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인 것들을 많이 보고 자랐죠. 그리고 할아버지들이 아주 스타일리시했어요. 한 분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멋쟁이 신사였고, 한 분은 엄격한 군 장교였거든요. 할아버지 제복에 있던 큼지막한 금색 단추는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기억나요. 지금 제 디자인과 취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도 이 두 분이에요.

많은 사람이 당신의 컬렉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탤리언 클래식이라고 말해요. 그걸 ‘폼필리오식 모던 클래식’이라고도 부르더라고요. 이런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고마운 일이에요. 저만의 색깔이 있다고 인정해주는 거잖아요. 제 옷은 전형적인 클래식 복식은 아니지만 사실 상당 부분 테일러링에 기반하고 있어요. 독특한 색감이나 소재를 사용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스타일링을 해서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이죠.

맞아요. 색감이나 프린트, 패턴의 활용이 특히 과감해요. 물방울 무늬나 스트라이프도 자주 등장하죠. 그건 개인적인 성향이에요. 강렬한 색깔과 소재, 무늬 같은 걸 보면 빠져드는 타입이거든요. 저는 오히려 남들이 이상하다고 하는 색깔 조합을 유심히 봐요.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러곤 그걸 제 컬렉션에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해요. 그 순간이 정말 좋아요. 그게 바로 제 디자인의 DNA라고 생각하고요.

컬렉션을 볼 때마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고 느껴요. 컬렉션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나요? 일의 얼개나 스케줄을 세밀하게 짜는 타입은 아니에요. 오히려 감정적으로 일하는 편이죠. 일단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그중에서 영감을 주는 것들을 찾아요. 그러곤 거기서 한 발짝, 한 발짝씩 나아가는 식이에요. 그 과정을 차근 차근 밟다 보면 자연적으로 컬렉션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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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옷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요. 디자이너가 정말 즐기면서 옷을 만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서요. 실제로도 일을 즐기면서 하는 편인가요? 네. 미를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를 깎고 괴롭히는 디자이너들도 사실 꽤 많아요. 실제로 그들은 그런 방식을 통해 더 좋은 디자인을 완성하는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좀 더 단순해요. 열정, 재미, 긍정 이런 단어들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일과 삶을 분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게 가능한 것 같지도 않고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하는지 생각해 봐요. 일하는 순간이 고통스러우면 분명 삶도 고통스러울 거예요.

이젠 이번 F/W 컬렉션 얘기를 좀 해봐요. ‘테일러링’과 ‘스포티즘’ 을 조합한 게 핵심이죠? 전통적인 이탤리언 테일러링에 대한 제 나름의 헌사예요. 그렇지만 그걸 좀 더 새롭고, 독특한 방향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특히 스타일링에 힘을 많이 줬어요. ‘이 옷을 이렇게도 매치할 수 있구나’ 하고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했죠.

예쁜 코트도 참 많았어요. 코트와 재킷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템이에요. 그래서 가을 겨울 컬렉션을 준비할 때면 괜히 신이 나요. 특히 이번에는 코트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일정한 디자인을 정해두고 소재와 컬러, 패턴으로 변화를 줬죠. 넓은 라펠과 더블 브레스트, 벨트 장식은 이번 시즌 코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예요. 덕분에 우아하고 풍성한 인상을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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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코트 스타일이 딱 정해져 있나 봐요? 트렌치코트나 피코트, 더플코트도 종종 만들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코트는 전부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예요. 더블 브레스트가 주는 정중하면서도 남성적인 느낌을 좋아해요. 패드로 어깨선을 강조한 각지고 우람하고 강직한 코트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요. 그런 실루엣은 왠지 ‘밀리터리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지금까지 만든 코트 룩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더니 이 파스텔컬러의 격자 무늬 코트를 골랐어요. 색깔과 패턴의 조합이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구조나 양감도 딱 제가 좋아하는 정도고요. 메리노 울과 앙고라를 섞어 복슬복슬한 질감을 살린 것도 잘한 것 같고, 벨트로 스타일링의 가능성을 넓힌 점도 마음에 들어요. 게다가 어떤 컬러와도 무난하게 어울리니 다른 옷과 매치하기도 편하죠.

    에디터
    윤웅희
    일러스트
    곽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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