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언프리티 랩스타, 산이

2015.12.23유지성

산이에겐 적이 많았다. 바람 쐬듯 그 미움을 온몸으로 받았다. 이제는 좀 시원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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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는 구찌, 팬츠는 Z. 제냐, 목걸이는 루이 비통,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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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김서룡 옴므, 셔츠는 루이 비통.

새해 계획 있어요? 이제 몇 살 되세요?

서른넷요. 새해에 서른셋 되죠? 서른둘요. ‘빠른’이라서. 친구들은 서른셋이죠. 세상에.

소감을 묻는다면요? 서른두 살이고 싶어요. 어릴 땐 항상 빠른이라고 강조했는데, 나이 들고는 어린 게 더 좋네요. 더 어른이 되면 더 징그러울 것 같아서.

방송 나오는 모습 보면서 ‘아 징그러워’ 이렇게 생각해요? 안 봐요 그래서. 못 봐요. 자기가 TV에 나오면 더 자세히 보이잖아요. 엄청 어색한 그런.

지난 12월호 ‘GQ AWARD’에서 산이를 올해의 MC로 뽑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썼죠. “편안하고 능글맞다. 앞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화끈하게 뭔가 보여주고 박수를 받아내고 싶은 MC다.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신나게 추임새를 넣고, ‘그루브’를 탄다.” 영광이네요. 초짜 MC인데. 그런 게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장난치는 것 좋아하고.

열 명이 넘는 그 ‘센 여자’들 사이에서. <Show Me The Money 4>에선 제가 그 게임 안에 있었는데, <언프리티 랩스타>는 밖에서 보는 입장이었잖아요. 그래서 시야가 좀 넓어진 것 같아요. 참가자들한테 조언도 할 수 있었고. 왜냐하면 매 편마다 누구는 수혜자가 되고 누구는 피해자가 되니까요. 편집 때문에. 그래서 그 친구들 기분도 업 다운이 심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마지막에 웃게 된다고 말해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다독여주는 사람이었나요? 그러려고 했죠. 시즌 1은 특히나. 우리끼리 되게 친했어요. 2는 좀 덜했고요. 그냥 몇 친구만?

산이는 자상한 남자인가요? 자상하죠. 어릴 때 미국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기본 매너 같은 건 좀 있는 것 같아요. 앉을 때 의자를 빼주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예를 들면 문을 열어준다거나 하는 것들.

무엇보다 선을 넘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MC의 중요한 자질이겠죠.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조금 오버하면 과해지고, 아니면 뭔가 부족한 것 같고.

특히나 힙합이란 장르는 선을 넘을 때의 쾌감이 있는 장르니까요. 하지만 굳이 그런 쾌감을 자극하려 들지 않는 듯 보여요. 예전에 그런 걸 많이 해서 그런가? 나이 들수록 좀 바뀌어요. 거칠고 강한 것들을 여전히 좋아하긴 해도, 부쩍 차분한 것들에 끌려요. 확실히 남자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 뭔가 여성성이 좀 생기는 건가? 그러면서 오히려 남자가 되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정글 같던 <Show Me The Money 4>보단 한 발짝 벗어나 있던 <언프리티 랩스타>가 더 즐거웠나요? 아, 그 정글엔 다시 들어가기도 싫어요. 하하. 스트레스 안 받은 건 확실히 <언프리티 랩스타>죠. <Show Me The Money 4>는 남자들끼리 경쟁심이 막 불이 붙으니까. 전 그런 상황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좀 불편해요.

래퍼들은 보통 그럴싸한 배경이나 ‘기믹’을 가지려고 애써요. 산이는 굳이 그런 걸 만들려 들지 않고요. 전 그냥 제 자신으로 행동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외국 래퍼가 되게 멋있어 보여서 따라 한다고 쳐요. 잠깐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면 상관없지만, <Show Me The Money 4>처럼 내 바닥까지 보여줘야 하는 데서는 분명히 탄로 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들 방송에서 잘하려면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전 그런 성격이 못 돼요.

랩을 할 때도 그렇지 않나요? 굳이 흑인처럼 보이려거나, 그들의 습관을 따라 하려 애쓰지 않죠. 맞아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팬들이 가장 미국적인 힙합을 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오래 있으면서 좀 달라졌죠.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예절 문화, 인사 문화 같은 게. JYP 소속일 때 (박) 진영이 형한테 많이 배웠어요.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부담 없고 편안해서 ‘오그라들지’ 않지만, 자칫 만만해 보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헤이터’가 많은 래퍼. 항상 칼을 갈고 있어야 돼요. 굳이 먼저 남을 상처 입히고 싶진 않지만, 누가 칼을 겨눴을 때 확실히 대응할 수는 있어야 해요. 그래서 <Show Me The Money 4> 무대에서 제가 보여줘야 하는 것들이 있었던 거고. 그런 게 없으면 사람들은 바보인 줄 알아요. 그리고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강한 게 아닌가 싶어요. 여전히 고민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힙합의 본질적인 모습과 제가 살면서 느끼는 것들의 괴리감이랄까.

<Show Me The Money 4>는 경쟁 때문이 아니라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어요. 디스곡을 주고받은 비프리가 소속된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팔로알토가 출연했고, 당시 SNS로 비프리를 거든 박재범과도 썩 좋은 관계라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죠. 전 팔로알토 형이 나오는 줄 몰랐어요. 원래 <Show Me The Money> 측에 안 나간다고 하고 있던 차였거든요. 그러다 뉴스 보고 알았죠. 그후에야 (제작진이) 비로소 알려주더라고요.

비프리의 디스 곡에 이런 구절이 있었죠. “랩 병신 찌질이 산이 같이.” <Show Me The Money 4>에선 송민호가 그 가사를 인용해 쏘아붙이기도 했고요. 그런 말을 듣는 기분은…. 처음 디스 곡이 나왔을 땐 별생각이 없었어요. 나중에 일이 좀 커졌을 땐 불편하긴 했죠.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특별히 억하심정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자기를 의심해보기도 했나요? 제가 랩을 못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죠. 그렇게 스스로 떳떳하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또 세상 돌아가는 게 그렇진 않더라고요. 물론 그것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의 순간은 주기적으로 와요. 오늘도 녹음하다 왔는데, 생각처럼 안 되는 거예요. 연습 많이 했는데. 처음으로 녹음이 괴로웠어요.

<Show Me The Money 4>의 결승곡 ‘I’m the Man’ 가사엔 이렇게 썼어요. “사람들 물어 왜 당하기만 하냐고. 엄마가 울어 아들 괜찮냐고. 솔직히 상상해 날 물 맥인 놈들. 커리어 익사시켜 먹는 육개장 국물.” 어… 그때 무슨 느낌이었지? 이게 또 얼마 지났다고 가물가물하네요. 아무튼 그전까지는 여러 일이 많았는데, 마지막 무대 끝나고 다 같이 웃으면서 악수할 수 있어서 되게 좋았어요.

흔히 말하는 ‘발라드 랩’에 대한 논란은 아직 여전해요. 최근에 발표한 ‘못먹는 감’까지도. 저는 진짜 둘 다 너무 재미있어요. 힙합도 그렇고, 제가 만드는 랩이 섞인 가요 같은 것들도.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랩 쓰는 것도 정말 즐겁지만, 멜로디 쓰는 것도 마찬가지거든요. 좋은 힙합 곡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이렇게 대중적인 곡 만드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아요. 그게 쉬운 거라면, 래퍼랑 여자 보컬이 같이 참여한 노래는 다 떠야죠. 전 많은 분이 좋아하는 노래를 만드는 데서도 큰 쾌감을 느껴요. 사실 어제 어쩌다 제가 예전에 냈던 믹스 테이프를 다 들어봤어요. 정말 그때 저를 좋아하던 분들은 산이가 배신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긴 하더라고요. 힙합에 대한 애정,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존중에 대해 얘기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이 행복하지 않고 불만족스럽다는 얘긴 아니에요.

그런 평가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저는 어쨌든 계속 제 이름을 거론해주는 게 좋아요. 고맙죠. 좋은 얘기가 많진 않지만, 정말 관심이 없으면 아예 힙합 사이트 같은 데서 얘기조차 안 나올 텐데.

산이라는 래퍼는 결국 이런 자신의 이미지를 즐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못먹는 감’엔 이렇게 쓰기도 했죠. “또 하나의 사랑 노래가 나왔네. 딴 거 해보려 했지만 또 발라드 랩. 나 지금 래퍼 아냐 노래하는 남자. 욕먹어도 좋아. 먹을 수 있…어?” 즐긴다기보단 그런 말이 깊숙이 박히진 않는 것 같아요. 하도 많이 들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비판은 바람처럼 뭔가를 환기시켜줘요. 그게 없으면 저는 한 곳에서 썩어 있겠죠. 뭔가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확실히 생겨요.

지난 음반 <양치기 소년>은 ‘헤이터’에 대한 날이 선 노래로 시작하죠. “날 질투해. 난 니 질투를 먹고 살아. 날 미워해 난 니 미움으로 덕 본 사람.” 산이는 욕을 먹어야 칼을 갈고 제대로 하나 보여주는 사람인가요? 욕먹는 게 좋진 않죠. 대중의 시선이란 게 정말 가늠할 수 없이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지금 그 시선이 좋아졌다고 해도 안주하는 건 아니에요. 언제든 또 바뀔 수 있으니까.

새해맞이로 헤이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많이 없어졌어요. 예전의 3분의 1 정도로 준 것 같아요. 무관심한 사람들보단 헤이터가 훨씬 낫죠. 분명히 제 음악을 듣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억지로 욕먹기 싫다고 곡 만들면 그건 그냥 스트레스예요.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요. 갑자기 어느 순간 가사가 술술 나올 때가 있어요. 저는 그 순간까지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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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팬츠 모두 디올 옴므.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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