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보던 얼굴, 이기홍

이 얼굴을 어디서 봤지? 영화 <메이즈 러너>에서 용맹하게 모두를 이끌던 리더. 웃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 얼굴.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 배우가 된 그의 이름은 이기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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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발렌시아가, 티셔츠는 디스퀘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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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로드 앤 테일러, 셔츠는 구찌.

귀엽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듣죠? 과찬이죠. 감사하고요. 들을 땐 기분 좋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외모에 대한 남들의 시선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요. 저도 <GQ>를 보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왜 이렇게 안 멋있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외모에 대한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이겠죠. 이번에 <GQ>에 나온 저를 보고도 누군가 그렇게 느끼신다면, 저도 맨날 이렇게 멋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어떨 때는 멋있지만, 어떨 때는 완전 별로예요. 미디어로 보는 것과 진짜 세상은 달라요.

귀여운 나와 완전 별로인 나 사이에서, 재미있나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메이즈 러너>에서 맡은 역할 ‘민호’는 귀엽지는 않아요. 힘도 세고 빠르고 매력 있는 남자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사람들이 “어, 민호 멋있는데. 기홍이는 귀엽다” 그러면, 좋은 거 같아요. 액션도 할 수 있고 로맨틱 코미디도 할 수 있잖아요.

생활하면서 자기가 몇 살쯤이라고 느끼는 감각이 있어요? 스물두 살요. 모자 쓰고 백팩 메면 진짜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기도 해요. 결혼하면 진짜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더 애가 된 거 같아요.(웃음)

귀여운 얼굴 다음엔 할리우드라는 말이 따라오겠죠. 스스로를 셀러브리티나 할리우드 스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전 이기홍이에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직업이 배우일 뿐이에요. 그냥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미국 밖에서는 어디서든, 할리우드에서 왔다고 하면 괜히 한 단계 위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한국영화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수준이 높아요.

심리학을 전공했죠?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도와주는 걸 좋아하고 즐겼어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연기를 하고 싶어 하기도 했어요. 그냥 1년만 한번 해보자 했다가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그저 연기가 좋았나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했어요. 스스로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처음 연기를 할 때만의 대담함이 있어요. 두려울 게 없으니까요. 제가 돈을 주고 배우는 거니까요. 근데 지금은 돈을 받고 연기를 하니까 아무래도 최고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확신도 있고 불안도 있고 그런 와중에 나아가는 거겠죠. 사실은 그만둘 생각도 많이 해요. 힘들거든요. 배우를 관두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며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아무 느낌도 없을 거란 확신이 있다면 그만둬도 괜찮겠죠. 근데 저는 분명히 영화를 보러 가서 ‘아, 내가 저 스크린 안에 있어야 되는데. 내가 저 역할을 해야 하는데’ 후회할 걸 알아요.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는 영화를 봐요. 집에서 보는 게 아니라 영화관에 가요. 예고편만 봐도 ‘해야 돼, 해야 돼’ 생각해요. 항상 그래요.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아요.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나요? 물론이죠. 한국 영화는 너무 훌륭해요. 경이로울 정도예요. 만일 제가 어렸을 때 한국에서 연기를 시작했다면 유명한 배우의 아역을 맡을 기회도 있었을 거예요. 그게 아쉬워요. 만일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 배우를 했다면, 예를 들어 제가 존경하는 송강호 선배님과 함께 연기할 수 있었다면 옆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 거예요. 부러워요. 한국에 있는 배우들이.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수도 있어요. 힘들지만 즐거워요. 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말은 배우로서 제가 뚫고 나가야 할 장벽인 거 같아요.

어떻게 할 건가요? 예를 들어, 톰 하디 있잖아요. 제가 <메이즈 러너> 홍보차 런던에 갔을 때, 제가 모르는 톰 하디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어요. 그는 영국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미국에서도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제가 톰 하디처럼 되고 싶다면 한국어를 유창히 하고, 동시에 영어도 유창히 해야겠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한국의 감각이나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해요. 그건 정말 어려운 거예요. 톰 하디가 한 것보다 아마 두 배는 더 어려울 거예요. 미국과 한국은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으니까요. 근데 전 그걸 해보려고 해요. 노력해보려고요. 오해는 마세요. 톰 하디와 저를 비교한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아니에요. 똑같아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배우를 대하는 건 결국 똑같습니다. 한국엔 자주 오나요? 8년 전에 왔고, 지난달에 왔고, 지금 왔어요.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이 진짜 집 같아요. 물론 저는 미국인이지만요. 그게 이상한 점이에요. 한국인인 동시에 미국인이죠. 한국인 입장에서는 너무 미국인 같고 미국인 입장에서는 너무 한국인 같아요. 어느 장단에 맞추겠어요. 한국에 오면 고향 같고 기분이 좋지만, 미국에서도 똑같이 고향 같고 기분이 좋을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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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시도 수트와 셔츠 보타이는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냥 이렇게 물어볼까요? 이기홍은 어떤 사람이죠? 아들이고, 남편이고, 형제고, 친구고, 연인이죠.

프루스트의 질문처럼 한번 해볼까요? 바로바로 대답하는 거예요. 당신 성격의 대표적인 특징은 뭐죠? 정직함이요. 거짓말을 싫어해요.

남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점은? 책임이요. 책임을 지는 거요.

여자에게서는? 모든 거요.(웃음)

당신의 결정적인 단점은? 비판적인 거요. 사람들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요. 스스로 지향점이 높아서 상대에게도 그래요. 어떨 때는 과해요.

행복이란? 주변에 항상 사람이 있는 거요.

가장 큰 불행은요? 혼자가 되는 거요.

좋아하는 새가 있나요? 아니요.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이라면요? 논픽션도 가능한가요?

누구를 말하고 싶은 거죠? 로자 파크스, 잔 다르크, 해리엇 터브먼. 모두 인권 운동가네요.

모토는요? 더 사랑하고, 덜 미워하라.

살이 잘 붙는 체질 같아요. 관리를 잘하나요? 피자 좋아해요. 그래서 운동을 많이 해요. 어떻게 하면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배우는 중이에요.

밤과 낮? 낮이요.

왜요? 밝잖아요. 햇볕이 길고, 빛이 많은 게 좋아요. 낮이 짧으면 우울해져요.

베스트 필름 세 가지. <살인의 추억>. 두 번째는 처음 영화관에 가서 본 <라이언 킹>. 세 번째는 <E.T.> 혹은 <쥬라기 공원>이에요.

<살인의 추억>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지푸라기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은 것 같았어요. 감독 이름도 배우도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냥 영화가 너무 좋았어요. 송강호의 연기가 놀라웠어요. 그리고 배우 한 명 한 명이 영화 속에 존재하는 정확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어요. 이야기와 미스터리도 좋았고, 한국의 시골에 대한 오마주 같은 느낌도 있고, 미국에서 봤기 때문에 한국 생각도 나고. 영화를 만들려면 한 마을이 모여야 한다는 속담이 있어요. 영화는 종합 예술이고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말의 훌륭한 예인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진짜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아까 균형을 맞추는 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완벽주의적인 것과 즉흥적인 것 사이의 균형인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완벽히 역할을 소화해야 하지만 결국 예술이라는 건 즉흥적인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두 가지를 같이 겸해야 해요. 예를 들어, 아까 사진 촬영을 할 때 나뭇가지를 주셨잖아요. 하고 싶은 걸 하라고요. 너무나 자유롭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어요. 두 개를 모두 겸하기 힘든 거죠.

그러는 사이에 뭔가 아름다운 순간이 나오는 거겠죠. 2015년은 어땠나요? 올해는 너무 좋은 한 해였어요. 동시에 최악의 한 해이기도 했고요. 진짜 나빴어요. 근데 진짜 행복했어요. 그래서 배운 건 삶은 그렇다는 거예요. 삶이 엿 같을 때도 있지만, Life’s a bitch. 동시에 아름답기도 하잖아요. Life’s a beach.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해선 안돼요.

하지만 이기홍이라는 배우에 대해 새삼 기대가 생긴다면요? 좋은 기대인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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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