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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밀의 공상과학 시계

2016.01.22신희대

모두가 추억을 들출 때 리차드 밀은 내일을 이야기했다.

오늘의 시계는 과거의 재현을 꿈꾼다. 망자의 이름이나 빛바랜 건축물이 시계에 새겨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어느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동경, 그렇게 만들어진 시계로 우리는 잊혀진 가치들을 기억해낸다. 그런 반면에 언제나 내일을 이야기하는 시계도 있다. 우리는 그런 시계를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이는 미래적인 시계에 관한 우리의 갈증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추억을 들출 때 도리어 꿈을 이야기한 시계, 리처드 밀의 시계는 바로 그런 시계다.

RM67-01 FRONT

RM67-01 FRONT

리차드 밀의 새 시계, RM 67-01 오토매틱 울트라 플랫은 마치 어떤 미래 도시의 단상들이 얽히고설킨 모양새를 했다. 이 시계에 쓰인 오토매틱 무브먼트 CRMA6는 그 얼굴을 만드는 일에 주요한 역할을 했는데, 불과 3.6mm 두께에 불과한 이 무브먼트는 티타늄과 플래티늄, 전기 플라즈마 공법이 사용되어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차세대 소재를 모두 섭렵한 것이 특징이다. 표면적으로는 무브먼트의 구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스켈레톤 처리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이 시계가 실로 기기묘묘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베젤의 가장자리에서 시곗바늘을 따라 시계 중심부에 이르기까지, 총 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입체적인 구조에 있다. 다이얼의 숫자는 메탈을 깎아 만들었다. 다만 4와 6 사이에는 5가 아닌 어떤 기이한 것이 자리했는데, 여기에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루미노바가 채워져 디자인에 기능을 담은 역설적인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

RM67-01 BACK

RM67-01 BACK

그러나 이토록 전에 없던 혁신적인 시계에도 과거의 유물은 따라붙었다. 다만 그것은 어떤 형태나 구조가 아닌, 시계를 만드는 태도다. 리차드 밀의 RM 67-01 오토매틱 울트라 플랫은 케이스의 순수 가공 시간만 꼬박 6시간이 걸린다. 정밀 가공 과정에서는 베젤이 8일, 케이스 및 백케이스가 각각 5일씩 소요된다. 더불어 이런 작업의 밑바탕에는 450시간 이상의 사전 준비가 뒤따른다. 끝이 아니다. 만들어진 케이스를 다시 반나절 동안 살피고 뜯고, 그렇게 최종 품질 검사가 끝이 난 케이스라야 비로소 무브먼트라는 심장이 박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기대했던 어떤 미래적인 속도도 없다. 인간을 닮은 로봇도, 암흑 물질도, 불가사의도, 아무것도. 하지만 도리어 이런 느린 호흡이야말로 새 미래를 만드는 촉매라 이 작은 시계는 외치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때마다 자신의 탄생 주기를 뽐내며 해묵은 얼굴을 들이미는 시계들의 홍수 속에서 이 미래적인 시계를 말이다.

    에디터
    신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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