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워

인스타그램에서 똑같은 얼굴 사진을 많이 본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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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비에서 요즘 누가 팩하니? 바둑 두던 택이가?”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며 자주 느끼던 바였는데, 한번은 옆에 있던 스물 몇 살 남자 어시스턴트에게 묻는 것처럼 되었다. 일부러 아저씨 같은 접근법과 말투를 썼다. “죄다 팩 사진이야. 너도 이러냐?” 나오는 대로 마저 물었다. “아니, 팩을 하는 건 그렇다 쳐. 자기 얼굴 팩한 사진을 왜 이렇게들 올려?” 스물 몇 살은 심드렁하게 일갈했다. “좋은가 보죠.”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를 살아가며 자타 말문을 막는데 그보다 좋은 회화도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제아무리 ‘소통’의 맞춤한 표기법이 ‘#소통’임을 눈치채고 비웃었어도, 모든 걸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말문이 막히면 으레 답답하고 궁금했다. 물론 질문은 대답을 담보할 수 없는 쪽으로 흐른다. “왜?” 또한 정해진 대답을 벗어날 도리도 없다. “좋은가 보죠.”

팩한 얼굴 사진은 20대 남자, 특히 ‘인스타 훈남’ 소리가 메아리치는 이들에게 집중되었는 데,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면, 사진 밑에 꼭 #돼지 #괴물 #존못 같은 다분히 비하적인 표현이, 재차 부정해주길 바라는 의도로 곁들여진 다는 점이다. 짜고 치지도 않으면서 정해진 답은 거기에도 있으니, 댓글이 온통 “아니에요, 귀여워요” 일색으로 긴 줄을 선다.

좋다는데 어쩌나. 산다는데 어쩌나. 그래도 따져보고 싶거든 ‘셀카의 심리학’ 혹은 ‘팩과 훈남의 사회학’ 같은 글이라도 예능감 버무려 써서 올리든 할 일일까? 이를테면 이렇게. “셀카는 시각적 대상과의 관계를 좀처럼 만들지 못한 채로 사진 기술만 광범위하게 도입된 상황이 빚어낸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게 뭐냐고 거울에 물을 것도 없이, 그저 ‘나’ 라는 답이 있는 이들에게 이미지란, 보는 것보다 드러내는 것이라는 감각이 우선한다.” 하지만 분석하고 지적하고 심지어 걱정하는 것처럼 지금과 맞지 않는 일이 있을까? 화살을 쏘는 순간 이미 과녁이 이동해버린 속력의 시대. 한번 누른 ‘좋아요’엔 심지어 ‘좋다’는 뜻도 없다.

그런데 팩은 아무나 하나? 팩 사진은 아무나 찍어 올리나? 일단 콧잔등에 분필 하나 박고 시작하는 ‘인스타 훈남’의 세계에서, 이제 성형이라는 말은 포경이라는 말보다도 이물감이 없어 보인다. 압구정역에 갔더니 똑같은 얼굴이 사방에서 동시에 나오더라는 말은 철 지난 유머도 못 된다. 성형외과와 피트니스센터는 스톰 트루퍼즈 갑옷 제조 공장과 맥이 같아 보인다. 열 명이면 열 장의 얼굴 팩 사진이 모두 똑같다는 이치로써, 어차피 ‘나’를 특별하며, 구별되는 무엇으로 봐주길 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다들 팩 사진을 올리니 나도 팩 사진을, 모두 이 집이 맛집이라니 나도 인증 사진을, 지금 이게 대세라니 당연히 나도 이것을. 내내 그거다.

타인을 고려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타인은 어차피 개인이 아니라 ‘대세’를 이루는 분자 같은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기록하는 앨범이 아니라 수시로 쳐다보는 거울이다. 귀여운 나는 귀여운 나를 쳐다볼 권리가 있다. 타인을 위한 답도 있긴 있다. 언팔은 너의 것.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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