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 시작됐다, 정연주

배우 정연주는 들떠 있지 않았다.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에서 보여준 동성 간의 키스로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그녀는 도발을 말하지도 않았다. 세간의 평가에 무심하다기보다 자신을 건너뛰고 세상을 말하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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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는 질샌더네이비, 브라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쇼츠는 로우클래식, 반지는 러브캣비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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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찍히려고 애쓰지 않는 여배우는 처음 봐요. 어떻게 나와야한다는 생각이 없어요. 나오면 나오는 대로 괜찮고요.

실제보다 예쁘게 보이고 싶지 않아요? 저 다 예뻐요. 제 이름이 두루 곱다는 뜻이에요.

연기도 비슷하게 봤어요. 이전엔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했죠. 뭔가 보여주려고 하지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대세는 백합>에서는 달랐어요. 애쓰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웠어요. 적극적인 타입은 아닐 것 같았어요. 동의합니다. 그렇게 볼 수 있죠. 근데 저 적극적일 때는 되게 적극적이에요.

지금까지 본인의 의지로 배역을 골랐나요? 그럼요, 다 제 의지. 하지만 선택지 자체를 갖고 온 적은 없어요. 그런 점에서는 적극성이 떨어지겠죠. 주어진 상황에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최선은 다해요.

<오늘영화>에서 윤성호 감독과 작업한 적이 있죠? 왜 <대세는 백합>의 세랑을 맡겼다고 하던가요? 저랑 캐릭터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아닐까요? 한번 물어볼까요?

네, 배우로서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배우는 자기 장점을 잘 알아야 하고, 감독은 배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제 눈엔 적극적으로 나서는 역할보단 세랑처럼 관계의 우위 속에서, 가만히 자기를 보여주는 역할이 좋아보였어요. 인간관계에서 극단적으로 우위에 서는 건 소위 4차원인데 세랑이 그렇잖아요? AB형이 제일 예측불가능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빠지게 하는 것처럼요. 혈액형이 뭐예요? A형이요. 전 4차원 아니에요.

이전엔 그저 배우였지만, 이제는 연예인이기도 해요. 연예인 생활은 어때요? 연예인을 캐릭터로 표현해보라면 뭔지 알겠어요. 하지만 생활에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지는 않아요.

좋은 대답이네요. <대세는 백합>으로 관심을 받고 달라진 건 없고요? 관심은 <드림 하이 2> 때 더 컸어요. <대세는 백합>은 제가 재밌었고요.

스스로 재밌어서 자연스러웠던 것 아닐까요? 크루로 출연하는 <SNL Korea>만 해도 안 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 것 아니에요. <SNL Korea>는 내가 이거 해도 되나? 저거 해도 되나? 고민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어서. <대세는 백합>에서는 그 고민이 없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것보단 한 가지를 잘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보여줄 게 많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걸 봤는데, <대세는 백합>을 보고 나서야 그 말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꼭 맞는 역할 속에서 각각 다른 표정이 보이더라고요. 촬영은 공동 작업이잖아요. 촬영장에 가야 시작이죠. 촬영장 분위기를 타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안 해요.

그게 소극적인 거예요. 그럼, 소극적인 걸로. 하하.

<대세는 백합> 이후에 딱히 달라진 건 없다는 거네요? 인터뷰가 많아졌어요. 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인터뷰는 어때요? 상당수의 답변을 만화영화에 비유해서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그렇게 했다고요?

네, 만화영화가 영감의 원천인 줄 알았죠. 영감은 곳곳에 있고, 만화영화는 만화영화예요.

<세일러문>은 인생 만화영화고요? <짱구는 못말려>도, <호호아줌마>도 좋아해요.

그러니까요. ‘짱구’와 ‘호호아줌마’를 비유로 사용해요. 하하, 그러네요. 만화영화 말고 되게 많은데, 그 순간에 그게 떠오른 게 재밌네요.

생각이 많은 타입이에요?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있을 땐 많고, 없을 땐 없고.

주로 고민하는 게 뭔데요? 물건 두 개 놓고 뭘 가질래, 하면 고민해요. 고민은 한도 끝도 없어요. 몸을 안 움직이면 고민이 생겨요.

춤을 좋아한다면서요. 그럴 때 춤을 추나요? 모든 게 다 춤이라고 생각해요. 움직이는 것은 다 춤이에요. 모든 충동은 다 춤이에요.

혼자 있을 때도 춰요? 네, 음악 들으면서.

어떤 음악? 여러 가지 많아요. 거울 보고 추는데, 아, 비욘세의 ‘Move Your Body’. 어렸을 때. 아, 또 어렸을 때 얘기하네. 하하. 어렸을 때 <하나둘셋> 보면서 추는 느낌이에요.

“짤랑 짤랑 짤랑”, “으쓱 으쓱 으쓱”. 네, 그런 거요.

어릴 때 많은 게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모든 건 현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기할 때 과거의 경험을 많이 참고하지 않아요? 맞아요. 자꾸 꺼내야 해요. 고된 작업 같아요. 하하. 머리가 컴퓨터 같은 거 아니에요?

컴퓨터가 머리 같은 거죠. 왜요? 어느 장소에 가면 뭐가 딱 떠오르고 뭘 먹으면 그때가 딱 생각나는 게 있잖아요. 연기가 그런 작업 같아서요.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알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그러니까 그냥 예쁘게 있는 것도 연기력이 뛰어난 거라고 봐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디션 연기 테크닉’이라는 수업에서 문정희 선배가 그랬어요. 뭐 하나라도 하고 가면 붙는다고요. 그게 네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예쁘게 하고 가면 붙는다고. 물론 더 많은 얘길 했지만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요즘 알겠어요.

<대세는 백합>의 세랑처럼, 여자를 좋아해본 적 있어요? 아니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의도가 느껴져야 성립되는 것 아닌가요.

남자 고등학교보단 여자 고등학교에서 사례가 더 많지 않나요? 시대가 뒤받쳐주지 않는 짓은 안 하는 것 같아요.

누울 자리 보고 뻗는다? 소극적인 거죠? 하하하.

이건 좀 다르죠. 이 시대보다 뜨겁게 살고 싶은데.

하하. 진짜? 아직은 아니지만 ‘버닝’ 중이거든요.

어디서 그 느낌을 받아요? 몸이 편해졌고, 숨을 잘 쉬어요. 긴장하면 긴장하는 대로 아, 긴장하는구나,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아, 불편하구나, 생각해요.

자길 인정하는 거네요. 그럼 <대세는 백합> 들어가기 전엔 뭘 연구했어요? 전 연구 안 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보는 건 잘 모르겠고, 내가 사랑스럽게 본다고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 같아요.

하하, 한편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대세는 백합>에는 동성 간의 키스가 있잖아요. 그것도 별 생각 없이 한다고요? 그거야말로 현재에 충실하죠.

거부감이 들지 않고요? 거부감이 생겨요? 거부하라고 하니까 생기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하지만 아무리 나쁘고 잘못됐어도, 20년 넘게 그렇게 교육받았다면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전 배우니까요. 여자랑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내가 들어본 적이 있었나…. 자연스럽게 내가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준 것 같은데.

그럼 좋은 교육을 받은 거고요. 하지만 사람은 가르침을 들어서, 잘못을 저질러봐서 안 하지 않아요. 잘못인 것 같은 지점을 알아서 안 하는 거죠. 한계를 긋는 교육을 받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매우 어려워요.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는 노력이 있어야죠. 그렇네요. 즉흥 연기 시간에 미어캣 흉내 내는 연습을 한 적이 있거든요? 정말 힘들었어요.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게 있잖아요. 하지만 누가 나를 어떻게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때 나 자신을 제일 느끼는 것 같아요.

키스 신 찍고 나서도 별 생각 없었어요? 모니터하러 갈까 말까 고민했죠.

모니터해보니 잘한 것 같던가요? 한 대로 나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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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는 빔바이룰라, 쇼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반지는 러브캣비쥬, 양말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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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책, 음반, IT를 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