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투르비용을 출력하시겠습니까?

시계의 새 시대가 열리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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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비용은 불어로 회오리를 의미한다. 하지만 시계에서라면 지구 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이자 시계 기술의 복잡성을 대변하는 단어다. 그 복잡성에 관해 말하자면 투르비용의 창시자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조차 그의 서른여섯 번째 투르비용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숨을 거뒀을 정도.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지금이라 해도 사정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빨라야 4개월, 길게는 1년이 소요되는 제작 기간에, 그조차도 고작 100여 명의 시계 시술자에게만 허락된 기술이니까. 그런 이유로 투르비용이 탑재된 시계에는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표가 붙었다. 이토록 하늘을 찌르는 투르비용의 위상이라지만 스위스 출신의 기술자 크리스토프 레이머는 그것을 대중의 눈높이로 끌어내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만들었다. 아니, 출력했다. 지난 1월,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투르비용 시계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토프 레이머가 투르비용이 탑재된 시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3천 달러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 얼티메이커사의 3D 프린터와 플라스틱 덩어리가 전부였다. 그의 작업물에 사용된 부품은 총 51개. 그는 플라스틱 소재를 시계의 주재료로 했는데, 이를 스틸 소재로 교체할 경우에는 그 수명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분 당 오차는 0.5초 미만. 투르비용을 탑재한 시계치고는 다소 민망한 수치지만 이는 부품을 고정시키는 핀과 스프링까지 3D 프린터로 출력한 탓이며, 이 과정을 수작업으로 대체할 경우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게 크리스토프 레이머의 설명이다.

크리스토프 레이머가 만든 시계의 구조

다만 그가 해결하지 못한 점이라면 크기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시계 둘레가 9cm에 달할 정도이니 손목시계는커녕 회중시계라 불리기도 과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시계가 우리의 손목에 오기까지는 짧지 않은 기다림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 시계를 폄하하기에는 어쩐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크리스토프 레이머가 시계 제작에 쓰인 3D 렌더링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함으로 더욱 짙어졌다. 조금 크고 부정확할지언정, 3D 프린터만 있다면 투르비용이 탑재된 시계를 가지는 일 정도는 이미 현재의 일인 것이다. 크리스토프 레이머가 공개한 시계에 관한 전부는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