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2016.02.11유지성

너에게 신호를 보낸다. 말 대신 몸으로.

GQ_신호-2-01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진다. 친해져서, 알고 싶은 게 많아져서, 알려주고 싶은 얘기도 늘어서. 하지만 이 밤은 언젠가 끝나야 한다. 술병을 부둥켜안고 잘 수는 없으니. 혼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긴 겨울밤은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말수는 줄어들지만 결정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끝까지 남아 있다. 조용해졌다고 자리를 파하고 헤어져 집에 가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입 안이 간질간질한 채로, 그 말꼬리를 집까지 잇고 싶다는 바람. 거기서 딱 한 잔만 더 하면 우리는 서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속들이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질문이 줄어드는 대신 긴밀한 관찰과 그만큼의 이해가 늘어날 텐데.

어쨌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대개 모호한 시점이다. 대화에 확실한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을 때, 술도 안주도 하나 더 시켜도 될 것 같은 때, 대중교통이 끊길랑 말랑 할 때. “갈까요?”든, “이제 집에 가요”든 그 선전포고 같은 제안에 딱히 또렷한 주어는 없다. 너와 나에겐 세 가지의 선택지가 남는다. 각자 집에 간다, 한잔 더 한다, 같이 간다.

예전엔 일단 걸었나? 잘 알고 있는 길로 모르는 척 향하는 식이었다. 바로 저 골목 숙박업소가 있는 데까지. 그게 동조를 구하는 신호였다. 바람 좀 쐬자며 걷는 데 허락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 사이에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묻지 않았으면. 암묵적 동의를 기대하며 불빛이 가까워지고 간판 보일 때까지 걸었다. 마침내 그곳의 두껍고 무거운 유리문을 열면 대개 답이 어려운 퀴즈를 맞혔을 때처럼 “딩동” 하는 경쾌한 알림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하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엉겨 붙었다. 이제 그렇게 길을 무작정 걷는다고 내 집이 나오진 않는다.

게다가 방 키만 꽂고나면 오토매틱 기어처럼 ‘중립’에서 ‘드라이브’로 바로 진입하는 숙박업소와 집은 다르니까. 집에선 할 수 있는 ‘옵션’이 많다. 그만큼 해야만 하는 일도. 형광등을 켜나 스탠드를 켜나, 뭘 만들어 먹나 차를 끓이나, 간단히 맥주를 마시나 찬장의 독한 술을 꺼내나, 음악을 듣나 텔레비전을 켜나…. 그래서 그중 짜릿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신호는 언제인가, 아니 언제 보내야 하나. 여기는 확실한 내 집이니까 내가 뭐라도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신호 대기 중이던 옆자리의 수많은 사람도, 마주 보고 앉은 둘 사이의 술잔과 테이블도 없어진 만큼 몸은 더욱 친밀해졌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알 수 없다. 신호등에 빗대자면 동시 신호 사거리에서의 노란불쯤 되는 건가? 어쨌든 여기까지 왔지만 다시 너의 집으로 돌아가는 좌회전 신호가 떨어지는지, 그보다 훨씬 가까운 침대로 향하는 직진 신호가 떨어지는지는 그 다음 불이 들어와 봐야만 아는 것.

또한 신호등은 규칙적이란 점에서 예측 가능하지만 오늘 밤의 색깔은 집에서 벌어지는 일, 그러니까 ‘옵션’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물론 적절한 순간에 물어볼 수는 있겠지. 선언하거나. 하지만 대개 신호는 말보다는 몸으로 보낸다. 어떤 식으로든 거절당하는 게 싫어진 게 언제부터였더라? 정확히 섹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빨간불이 들어와도 상대가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거라 생각하면 적어도 내 속은 편하니까.

그런데 어쩌면 이런 온갖 모호함이야말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는 동력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몸으로 보내고 몸으로 되받는 신호라면. 다 같이 통하는 한국말이 아니라 너도 나도 자기만의 신호를 갖고 있다는 점, 또한 그게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무척 새로우니까.

그런 쾌감을 섹스에 빗대자면 내 몸이 아니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가까운 미래의 뜨거운 삽입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전희와 비슷한 게 아닐까. 몸으로 질문하고 대답 또한 몸으로 받으며, 경험과 감각에 의지해 부지런히 움직이다 답이 돌아오는 듯하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거기엔 OX 퀴즈처럼 “딩동” 하는 소리는 없겠으나, 보기도 답도 여러 개라 까다로운 시험문제를 풀어낸 것 같은 기쁨이 있다.

빈 술잔을 앞에 두고 밤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아침이 올 때까지, 사정 직전에 육박한 채로 간지러운 순간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팽팽하고 낯선 신호를 주고받는 밤과 긴장을 오래 기억한다. 말없이.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
    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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