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배우의 가장 치명적인 순간 – 2

2016.02.12GQ

그 여자가 웃을 때, 그 여자가 갑자기 빨리 걸을 때, 그 여자가 멍하니 있을 때, 그 여자가 말을 걸 때, 그 여자에게 대답하고 싶을 때…. 지난날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그 여자를 문득 마주쳤던 장면, 그리고 영원히 방부해버린 표정과 모습을 모았다. 여자 혹은 여배우를 기억하는 방식으로서 우리는 추억이 아니라 순간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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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사랑이 뭐길래> ━ 응접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 “홍은동입니다.” 널찍한 2층 양옥에 사는 한심애(윤여정)는 전화를 그렇게 받는다. 전화기 저쪽 여순자(김혜자)는 네모진 작은 마당이 있는 한옥에 사는데 전화를 받을 땐 “북가좌동입니다” 그런다. ‘전화’를 꼭 ‘즌화’라고 발음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중 1991년에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는 서울올림픽 이후 마구 불어오는 온갖 ‘새 바람’ 속에서 신구와 노소와 동서와 남녀가 어떻게 부딪히는지를 생생하게 그린 홈드라마로, 웃기는 걸로 치면 역사상 제일 웃긴 드라마였다. 윤여정은 거기서 ‘민주적인’ 이미지의 가정을 이끄는 여자, 한심애를 연기했다. 살림은 넉넉한 편이지만 워낙 갸냘픈 몸이라 행주질만 한번 세게 해도 어깨가 결릴 것 같은 여자. 하지만 늘 꼿꼿하게 ‘교양 있는 서울 사람이 쓰는 말’이라는 당시 표준어를 정의하던 말의 표본처럼 말하는 여자. 윤여정은 주로 실크로 된 ‘교양 있는’ 홈웨어를 입고서 응접실 소파에 앉아 ‘교양 있게’ 전화를 받았다. 별의별 기함할 일이 전화기로 날아들었지만, 그녀는 결코 휘둘리지 않았다. ‘아!’ 하며 입을 좀 벌리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개인의 논리로 맞섰다. 요컨대 그녀는 교양 있는 여자였다. 윤여정의 지성미라면 간결하고 세련된 옷차림이며 부정사와 동명사를 구분해 쓰는 영어 회화 실력이며 두루 보인다지만, 무엇보다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이전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교양 있는 서울 여자’를 텔레비전에서 처음 보여줬다는 점에서 과연 우아한 지성미의 선구자였다.

임예진, <무자식 상팔자> ━ 옛 앨범을 보는 남편 옆에 잠들어 있을 때. 70년대 학교 영화, 소위 ‘얄개물’의 독보적인 여주인공이었던 임예진은 20대를 멜로 스타로 보내진 못했다. 앳된 이미지가 남아서였을까?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중년을 넘어 시간의 결이 더해진 후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무자식 상팔 자>에서 임예진은 그간의 이미지를 – 새침한, 깍쟁이인, 심지어 아직도 앳된 – 통째로 적출해 버렸다. 까칠하고, 메마르고, 욕심은 욕심대로 많고, 얼굴엔 항상 자디잔 짜증을 새긴 갱년기 여자. 내내 잘 지내던 모든 관계로부터 갑자기 세상의 모든 것과 불화하는 때, 그 절벽 같은 고독에 맞서느라 악을 쓰는, 뚝뚝 우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시 세우려는 여자를 임예진은 마늘을 저미듯이 섬세하게 연기했다. 한편 그녀의 남편(송승환)도 똑같이 갱년기와 싸우는 중. 서로가 서로를 예뻐하고 지지했던 지난날을 떠올 리고자, 그는 잠든 아내 옆에 앉아서 옛날 앨범을 들춰본다. 그 속에 앳된 임예진의 사진이 얼핏 스치고 지나간다.

전양자, <엄마가 뿔났다> ━ 밥상을 물리고 ‘등대지기’를 부를 때. 잘 맞는 옥색 윗도리에 씨알이 잔잔한 진주 목걸이. 진하지 않지만 흐리지도 않은 화장. 흔히 어른들이 “참 곱다”할 때의 그 고움. 오영숙은 (전양자) 스스로를 “아직 처녀랍니다” 소개하는 예순 몇 살 여자다. 나충복(이순재)은 그녀를 보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친구 몇몇과 어울린 자리에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자 그만 마음이 저 밑까지 내려가고 만다. 오영숙이 부르는 노래는 심수봉도 아니고 이미자도 아니고 ‘등대지기’다. “얼어 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손.” 창작동요제에 나온 소녀처럼 그녀는 두 손을 맞잡고서 한마디 한마디 정성스레 가락을 탄다. 소녀도 그런 소녀가 없을 떨림.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다음 생엔 잘난 사람으로 살면서 좀더 일찍 이 여자를 만나고 싶어서’ 그만 비감해지는 나충복 씨의 얼굴. 두 사람. 사랑이라는 말. 언제 봐도 정말 깊이 아름다운 장면이다.

김희애, <내 남자의 여자> ━ 비 오는 날 친구를 찾아갈 때. 봄비치곤 많은 비가 내리는 저녁, 이화영(김희애)이 찾아간 친구는 다름 아닌 김지수다(배종옥). 얼마 전까지 김지수의 남편이었던 남자(김상중)는 현재 이화영과 살고 있는 상황. 말하자면 친구 남편을 빼앗아 사는 여자가 그 친구를 찾아간다. 용서를 빌려고? 그렇지 않다. 이화영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이럴 때 니가 보고 싶을까.” 기가 차는 건 김지수나 시청자나 마찬가지. 하지만 저 여자, 이화영의 마음을 알 것 같은 마음 또한 김지수나 시청자나 마찬가지다. 선악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 연민하는 일, 나눠온 우정, 위로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그냥 마음이 그래서니까. 저 여자 이화영,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안을 수도 때릴 수도,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저 여자를 김희애는 ‘나’로서 살아간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대신할 배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희애가 시작한 후라면 신도 되돌릴 수가 없다.

김윤진, <밀애> ━ 첫 번째 침대 위에서 숨을 몰아쉴 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여자는 거의 벽지처럼 바래버렸다. 잿더미 같은 얼굴, 표정과 감정조차 포기한 것 같은 상태로 어떤 시골 마을에서 지내던 중이었다. 하지만 풍덩한 치마와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휘청거릴 때도 발성만은 꼿꼿했다. 낮고 풍성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하는 이런 말, “삶이 참을 수 없이 하찮아. 살아 있다는 게 거지 같애”. 문어체에 가까운 대사까지 그대로 극 안으로 끌어들일 때, 김윤진은 그 순간 자체를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이종원과의 섹스 신에서도, 그녀가 내는 소리는 보는 사람의 거의 모든 감각을 압도하다시피 한다. 날개뼈가 움츠러들었다가 벌어지고, 가슴팍이 오르내리고, 종아리가 긴장하고 발가락이 움찔거릴 때. 그러니까 오랫동안 굳어있었던 그녀의 몸이 가장 극적으로 뜨거워지는 순간에도 그 숨소리가 다른 모든 걸 빨아들인다. 그건 성대를 거친 소리가 아니라 그냥 터진 것, 곧 흩어지면서 순식간에 공기를 덥히는 소리였다. 다 끝나고, 김윤진은 처음으로 웃는다. 살아서, 그에게 묻는다. “내가 잘, 했나요?” 이종원이 대답한다. “당신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모르고 있어요.” 쓸데없는 소리. 누구도 모를리 없다. 그러면 안 된다.

송지효, <신세계> ━ 드럼통 속에 피투성이로 앉아 있을 때. 그녀는 다도를 알고 바둑을 두는 여자였다. 혼자 있을 땐 안경을 끼는 여자. 곧 부러질 것처럼 경직돼 있고, 정치와 작전의 복판에서 모든게 비밀이었던 여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흥분한 이정재가 손으로 컵을 깨서 피가 나면 손수건을 건네고, 연변 거지들에게 노출된 후에는 최민식에게 “제발 담배 좀 끊으세요” 말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한때 귀를 뚫었던 자국이 선명한데도 이제 귀고리를 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 같은 여자. 하지만 그런다고 그녀 자체가 가려지지는 않아서, 황정민은 이렇게까지 말했다. “빰빠라밤! 니 바둑 선생. 얼굴도 반반하고 몸매도 먹어줄 만하더마는.” 이미 한번 말랐던 피가 땀에 젖어서 끈적한 채, 검정색 속옷 차림. 공포와 포기 사이에서 송지효는 드럼통 속에 결박돼 있었다. 한 번도 여자인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여자인 채, 완전한 야만 앞에서 해체된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격투 신? 드루와 드루와? 잔인과 불쾌를 넘어, 바로 그 장면의 송지효만이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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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하녀> ━ 주인집 남자 방 욕조 안에서 갑자기 허리를 세울 때. 전도연은 몸 전체가 오로지 하나의 세포인 것 처럼 연기한다. 눈빛 따로, 손 따로, 대사 따로가 아니라 자주 발작하듯, 어떤 동물같이, 어디로 흘러가는 것처럼, 도저히 잡히지 않을 듯이…. 주인집 남자 이정재가 쓰는 방 욕조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당연히) 나체로 일어날 때, 그러다 또 갑자기 1990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처럼 쨍하게 부서지듯 웃을 땐 그냥 어쩔 줄 모르게 된다. 그녀는 ‘여자’라는 말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징을 부담스럽지도 않게, 곱고 투명한 피부처럼 입고 있다. 그녀가 욕조 안에서 말했다. “저 임신했어요. 근데 이 집 사모님들한테 들켰어요. 뒤지게 맞았어요, 뺨따구. 1억 주시겠대요, 애 떼면. 근데 나 낳을 거예요, 이 애기.” 상황은 곧바로 나빠진다. 그녀는 욕조 안에서, (여전히) 나체인 채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잃는다. 그녀는 배 아파하면서 구토하고 소리를 지른다. 발작처럼, 거의 동물같이.

손예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 하늘색 비키니를 입고 수영장에서 나올 때. 수영장은 텅 비어 있다. 유혹을 작심한 여자가 평형으로 수영하다가, 남자가 허겁지겁 도착했을 때 젖은 머리인 채로 올라오는 장면. 이것은 사실 아주 오래된 클리셰다. 하지만 손예진의 하늘색 비키니가 이 상투적인 몇 초에 숨을 불어넣는다. 실은 그 몸이. 요즘 기꺼이 벗고자 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과장된 점이라곤 없이,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만든 적도 없는, 언젠가 옆에 있었거나 지금 옆에 있는 것같이 소담한 몸. 게다가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예진의 민낯이야말로 귀하고 산뜻하다. 어쩌면 12년 전의 손예진이 이 과장되고 시시하기까지 한 코미디 영화를 혼자 떠받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하늘색 비키니가 아니라면, 이 영화는 봤다는 사실조차 영원히 잊은 채 다시는 떠올리지 않았을 테니까.

김고은, <은교> ━ 시인 이적요의 집 현관 의자에서 낮잠 잘 때. 은교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거기서 김고은의 몸은 참 잘 쓴 문장처럼 정확했다. 종이 같은 흰색으로 빛나는 다리와 목덜미에서 나는 땀, 그래서 이마에 붙어 있는 잔머리는 거의 완결된 소설 같았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몸. 말하자면 몸이 아니라 머리를, 우뇌보다 좌뇌로 향유하고자 할 때 더 거대하게 욕망하게 되는 몸이었다. 누구냐고 묻는 김무열에게 “은교요” 대답한 이후에는 어떤 섹시하고 노골적인 장면도 그 첫 번째 낮잠을 이기지 못했다. 여자로서의 몸은 완성됐으나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때때로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는 무구함…. 은교와 김고은의 아름다움은 그로부터 왔고, 그 한 장면으로서 이미 마무리돼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배우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낮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사라질 여자였다.

배두나, <청춘> ━ 거의 모든 섹스 신에서 수다스러울 때. 이렇게까지 모든 장면이 일관되게 민망한 영화는 다시 없을 것이다. 가만 보고 있자면 내 몸 어딘가가 증발할 것 같은 느낌, 긁을 수 없는 데가 간지러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시간은 간다. 대사도 그렇다. 이 영화는 일생을 돌아봤을 때 누구라도 가장 부끄러워할 순간들의 집합 같다. 하지만 배두나만은 그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 있다. 게다가 모든 섹스 신에서의 배두나는 용감하고 또한 수다스럽다. 상대역은 김래원. 섹스가 지상과제인 것처럼,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모든 것을 쏟는 좀 나쁜 남자다. 배두나는 그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래서? 그 날라리랑은 몇 번이나 했어? 이런 방법으로도 해봤겠네? 어땠어? 좋았어?” 배두나는 솔직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알 수 없는 채 계속 말한다. “자기도 그거 해? 마스터베이션? 나 만난 후에도?” “자기도 수인 씨처럼 지난 일로 상처 받은 거야? 그런 거야? 그래서 나한테 무관심한 거지?” 그 말 사이사이에, 어쩔 수 없는 신음이 섞여 있다. “오늘 이거 쓰지 마, 싫어, 안 돼, 오늘 그냥 해.” “나 그쪽 닮은 사내 셋은 낳을 수 있어. 대신 누가 아빤지는 비밀로 해줄게.” 모든 게 민망해서 다시 보기조차 부끄러운 영화 안에서도 배두나는 그렇지 않다. 마냥 자연스러워서 빛난다. 무슨 말을 해도 그렇다. 그 가늘고 예쁜 몸을 당차게 쓸 때는 물론이고.

김민희, <연애의 온도> ━ 워크숍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 때. 김민희가 “무지”라는 대사를 뱉을 때, 옳다구나 싶다. ‘매우’, ‘너무’, ‘아주’가 아니라 ‘무지’. 김민희가 일상적인 말을 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김민희가 잔머리를 정리하지 않고 머리를 질끈 묶었을 때, 김민희가 마른 다리를 바짝 당겨 앉을 때, 김민희가 얇은 티셔츠만 입고 나올 때 ‘무지무지’ 좋다. <연애의 온도>에서 동희(이민기)가 막말을 내뱉으며 워크숍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장영(김민희)이 뒤쫓아가 이렇게 외친다. “너 지금 무지 오바하고 있는 거 알아?” 사람이 지긋지긋하면 눈물도 안 나올 것 같은데, 연애는 또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스르르 울면서 또 이렇게 외친다. “왜 나한테 지랄이야.” <굿바이 솔로>에서 최미리(김민희)도 ‘무지’와 ‘지랄’을 수도 없이 내뱉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애처럼 웃고 우는 김민희여서 그 순간이, 그 단어가, 김민희만의 것이 된다.

류혜영, <잉투기> ━ 담벼락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태식을 부를 때. 머리카락을 꽉 당겨 묶었을 때처럼 당겨 올라간 눈,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윗입술로 만드는 비웃음, 팽팽하고 봉긋한 볼, 끝도 없이 뻗은 일자 다리. 류혜영은 자신만의 얼굴과 몸으로 당돌하다 못해 충동적인 ‘영자’를 연기한다. 완전 미친 것 같은데 여전히 예쁘고, 온통 내지르는데 동시에 견뎌내려는 투지가 보이는 영자는 배우의 실제 모습이 투영됐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펄떡거리는 인물이다. 회색 불투명 레깅스를 신고 소파에 완전히 거꾸로 누워 “내가 킥복싱하기엔 좀 에쁘잖아, 으허허”할 때나, 밀가루 포대를 교실로 끌고와 탁구채 잡듯 국자를 잡고 백핸드로 밀가루를 난사할 때마다 류혜영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영자가 왕따 당해 우울한 마음을 누르고 쫓아오는 태식을 따돌리고 어느새 담벼락 위에 올라가 “스토커임?” 외치는 장면을 좋아한다. 화들짝 놀란 태식이 두 발을 버둥거리는데, 그때 보는 사람도 이 여자의 마력에 버둥버둥 빠지고 만다.

이하나, <메리대구공방전> ━ 약수터에서 대구와 투닥거릴 때. 2007년에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이하나는 재능도 없고 직업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고 돈도 없는 스물여덟 여자 ‘메리’를 연기한다. 매 순간 좌절을 겪는데 1초 만에 극복을 다짐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뮤지컬 독백처럼 혼잣말을 내뱉고 혼자 거두고, 심지어는 입 밖으로 대사가 나오다가 도리도리 다시 삼켜버린다. 이걸 연기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끝을 흐려버리거나 어느 때는 대사가 무성음처럼 뭉개진다. 하지만 이하나여서, 이 연기가 말이 된다. 무협지 작가가 되고 싶어 시종일관 사극투로 말하는 대구(지현우)와 과장된 연극 톤으로 말하는 메리가 늘 투닥거리는 곳은 동네 약수터다. 그 공간에서 이하나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주저주저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활개를 친다. 2014년 방영된 <고교처세왕>에서 이하나는 메리의 확장판 같은 캐릭터를 다시 보여줬는데, 신기하게도 여전히 유효했다. ‘메리 식’ 연기에선 이하나는 여전히 신선하다.

>> 여배우의 가장 치명적인 순간 – 3 (한지만, 한효주, 김태희, 전도연…)

    에디터
    장우철, 정우성,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양승철
    포토그래퍼
    정진화
    삽화
    2015, Inkstick with Korean Paper, 70 × 70cm, 2015, Inkstick with Korean Paper, 36 × 36cm, 2015, Inkstick with Korean Paper, 36 × 3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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