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영석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2016.03.02GQ

230 GQS_인물론 2-수정-나영석

나영석은 대개 감동을 유발하기 위해 과장된 자막이나 음악, 카메라 워크를 쓴다거나 카메라 앞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으로 비판받는다. 그리 치명적인 내용은 없다. 억지 감동을 유발하는 일은 나영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TV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운명적 결함이고, 프로그램 연출의 목적에 합당하고 효과적이라면 얼마든지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비판 대부분은 시청자의 주관적인 취향과 관련된 불평 섞인 비난이다.

그러나 나영석과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좀 더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한국의 대중문화 중 하나다. 당연히 그가 전파를 통해 뿌리는 생활의 이미지에 뭐가 겹쳐 보이고, 도대체 그게 뭐기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지에 관한 반성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나영석이 설정하는 세상의 모습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시선, 그 방향과 위치에 따라 프로그램의 가치도 달라진다.

<1박2일>부터 <꽃보다 청춘>에 이르기까지, 나영석은 출연자들이 어리둥절해할 상황을 던졌다. 그 상황을 돌파하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관찰하는 것이 나영석의 예능이 가진 감동과 재미였다. 출연자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목표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고생하는가에 프로그램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 대표적이다. 가장 원초적이어서 치사한 목표, 맛있는 밥과 편안한 잠자리를 상으로 내걸고, 그걸 얻으려면 ‘복불복’에서 이기라고 했다.

물론 처음에는 출연자들이 다른 프로그램처럼 연출자가 시키는 대로 ‘복불복’에 임했다. 하지만 강호동이라는 특이한 캐릭터가 진행을 맡으며, 서서히 제작진 대 출연자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마치 WWE 프로레슬링이 종래의 평면적인 권선징악 시나리오를 벗어던지고 프로레슬링 단체와 장르의 규칙에 대해 참조적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나영석은 연출자의 말에 불복하는 출연자의 모습을 서슴없이 시청자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즉, 복불복 게임은 카메라 뒤의 절대자인 나영석이 만든 원리가 작동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았고, 그 스스로도 프로그램 속 출연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가변적인 형태의 ‘복불복’을 경험하게 설정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게임에 임하며 슬랩스틱의 재미를 노리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좀 더 확장된 형태의 재미를 추출하는 게 가능했다. 실제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의 드라마를, 출연자와 제작진이 서로 갈등하는 드라마와 입체적으로 만나게 한 것이다.

그 덕에 나영석의 프로그램은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 가지지 못하는 서사 구조를 자연스럽게 획득했다. 대학 시절 4년 동안 연극부에 매달렸던 경력을 들추지 않더라도, 리얼리티를 그대로 드러내는 연출이라기보다는 리얼리티 속에서 드라마를 뽑아내는 기술을 시연했다. 전통적인 서사 양식, 즉 연극이나 소설에서 드라마는 주로 인물들에게 목표를 던져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겪게 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목표을 이루는 것 자체보다는 그들이 목표를 향하는 힘에 의지해서, 여러 가지 조건을 격파하며 발생하는 갈등 안에서 재미를 느낀다. 그래서 ‘무한도전’이라는 제목은 오히려 나영석의 프로그램에 잘 어울린다. 항상 도전을 유발하고, 도전에 따라 성취되는 결과가 무엇이건 간에 그 과정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유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1박2일>에서 강호동이 빠지고 구심점 없이 출연자를 나열해야 했던 시점부터, 나영석은 좀 더 적극적으로 (마치 연극 연출가처럼) 자신이 수립한 계획 위에 배우들을 올려두기 시작한다. KBS를 떠나 tvN에 정착하고 연출의 자율성을 좀 더 확보한 뒤부터는 그 설정을 간결하게 조율하는 기술까지 선보인다. <꽃보다 할배>에서는 원로 남자 배우 네 명과 그들을 수행할 무뚝뚝한 남자 배우 하나를 붙여놓는 것으로, <삼시세끼>에서는 시골집에 남자 두세 명을 보내 세끼 밥을 해 먹는 것으로 모든 설정을 끝냈다. 밥과 잠자리로 대표되던 목표는 좀 더 크고 추상적이고 가변적인 것, 예를 들어, 탈 없이 여행을 마치거나 밥을 해 먹는 것으로 바뀌었다. 목표가 있었기에 일부러 설정했던 복불복 게임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대신 출연자의 캐릭터를 보강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게임을 발생시켰다.

24시간 내내 촬영하는 ‘나영석 프로덕션’은 카메라를 돌리는 순간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뽑아내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촬영 현장은 최대한 편안하게 가져가고, 편집을 통해 원하는 내용의 리얼리티를 유도한다. 즉,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정해준 목표를 수행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나서야 편집을 통한 연출을 시작한다. <1박2일>의 미션 수행은 출연자 모두 자신들이 무슨 일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동의한 후에 이루어진 약속된 쇼에 가까웠다. 현재의 나영석은 출연자들과 만나서 “자,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요?” 하는 버라이어티쇼의 전통적인 진행 관습을 전부 생략하고, 출연진을 낯선 환경으로 끌고 가서, 까다로운 목표를 부여한 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에 곧장 담는다.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재미, 특히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출연자의 역량에 많은 부분을 기대야 하는 일반적인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나영석의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어떤 행동을 하건 그 행동을 연출자가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자신이 섭외한 출연자의 행동을 바라보는 나영석의 관음적 시선이 프로그램 전반에 짙게 깔릴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 안에서 연출자의 이야기를 대변할 진행자가 없으므로 당연히 과장된 음악이나 자막이 이어지고, 드론이나 초고속 촬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환기시키고, 특별한 장면을 포착하는 것 모두, 나영석의 시선을 통해 걸러진 출연자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나영석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공동체는 <무한도전> 등 연기자가 잔뜩 출연하는 다른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유사 가족의 형태를 띤다. 현대적인 개인이 모여 있다기보단,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는, 과거의 가치 속에 머물러 있는 개인들이다. 나영석의 공동체에는 전근대적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특성이 자연스레 내포되어있다. 공동체 안의 서열은 나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설정되고, 집안일을 잘하고 음식을 잘 만드는 출연자는 남자건 여자건 ‘엄마’의 역할을 맡는다. 다양한 반려동물과 가축 역시 소규모 공동체, 현재의 서울이 아닌 과거의 시골 어딘가에 존재했을 것 같은 공동체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한국적 전근대성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포장하며, 나영석은 향수 어린 과거의 ‘사람 냄새’라는 것이 사실은 무엇이었는지 도통 직시하지 않는다. 먹고 자는 일이 절박해지는 환경을 만들어 출연진이 좀 더 본능에 충실해지는 과정을 진솔하다고 형용하는 버릇으로 그의 세계관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술에 취해 다 같이 망가져야 서로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한국적 공동체의 고약한 습관처럼, 진솔함이라는 이름 아래, 이성으로 억제하고 있는 인간의 동물적인 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로 편하고 친근해지기 위해 생활의 모든 면을 공개해야 하다니. 변비로 고생하는 윤여정의 이야기를 보며 시청자가 느끼는 건 뭘까?

또한 모두가 가족이라는 관점은 프로그램 안의 성적인 뉘앙스를 완벽히 차단한다. 어린 여성은 조카나 딸이어서 성별과는 무관한 존재다. 여성은 자애로운 어머니 아니면 발랄하고 철없는 딸 이외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삼시세끼>에 등장하는 로맨스 역시 풋풋한 처녀 총각이 만나 황순원의 <소나기>적 사랑을 나누는 식이다. <꽃보다 누나>에서 가끔 ‘알고 보니 엄마도 여자였어’라는 뉘앙스로 전하는 깨달음은, 철없던 아들이 잠깐 느끼고 금세 잊는, 너무나 ‘한국의 아들’에 가까운 형태로 드러난다.

나영석의 예능이 고단한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기회를 주는 따뜻한 프로그램이라는 말 속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물신이 들어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아날로그 레코드의 마찰음에 음악의 본질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무너져가는 낡은 집에 들러 상상 속의 추억을 느끼는 것처럼, 인터뷰마다 “자신은 멋지고 쿨한 사람은 아니”라며, 본인의 촌스러움에 대한 자랑스러운 애착을 드러내는 것처럼, 나영석은, 갓 찍어 생생한 사진에 일부러 낡은 느낌의 필터를 씌우는 사진가다. 그렇게 자신이 관찰한 출연자의 행동 위에 그윽한 항수와 낭만의 물신을 심어놓고 시청자를 유혹한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오며 정작 잊고 있었던 중요한 것이, 과거로 호명되는 한국적 공동체의 이미지 안에 있었노라고. 그 안으로 들어와 다 같이 온돌에 등허리를 지지며 군고구마를 까먹고 방귀를 트면 모두가 행복할 거라고.

    에디터
    글 / 함영준(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일러스트
    장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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