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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치는 기계식 시계의 라이벌일까?

2016.03.11GQ

빤하고 지겨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손목시계가 없거나 평생 손목에 뭔가를 차본적이 없는 사람에겐 스마트워치든 기계식 시계든 쿼츠 시계든 모두 똑같은 ‘손목시계’일 뿐이니까. 간단한 손목시계의 역사. 인류 최초의 양산형 손목시계는 1904 년, 루이 까르띠에가 친구인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에게 선물한 시계(라는 게 정설이)다. 이후 손으로 꼭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수동식(Manual) 무브먼트가 아니라 걷기만 해도 손목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태엽이 감기는 자동식(Automatic) 무브먼트가 손목시계에 탑재되면서 휴대용 시계는 주머니에서 꺼내보던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 형태로 빠르게 변화했다. (수동식 무브먼트도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자동식 무브먼트도 수동으로 태엽을 감을 수 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 회사들은 1969년 일본 시계 회사 세이코가 전지(Cell)를 사용해 훨씬 정확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얇고 가벼운 쿼츠 시계를 만들어내면서 휘청거렸다. ‘쿼츠 파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절체 절명의 위기를 스위스 시계 회사들은 고급화를 통해 돌파해나갔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알고 있듯 이 고급 기계식 시계를 만들던 회사들은 시계를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 사치품으로 마케 팅했고, 덕분에 롤렉스와 같이 유명 브랜드의 시계들은 세계 어디서나 금만큼이나 현금화하기 쉬운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작년 초, 애플의 CEO 팀 쿡은 이런 스위스 명품 시계 회사들에 경고하듯이 애플 워치를 소개했다. 기계식 시계의 대체제로 애플 워치가 한 몫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칼 라거펠트, 안나 윈투어와 같은 패션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 들에게 먼저 공개하고, 에르메스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명품 브랜드와 협업하며 그 말을 증명했다. 이에 스위스 시계 회사도 화답하듯 이 스마트워치를 만들었다. 태그호이어가 만든 스마트워치 커넥티드는 자사의 오토매틱 무브먼트 대신 인텔의 칩셋을 탑재해 단박에 브랜드 가치와 편리함을 잡을 수 있었다. 가격은 1천5백 달러. 태그호이어는 이 가격이 단지 손목 위의 ‘전자 제품’을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브랜드 가치를 깎으면서 저렴하게 만드는 대신, 2년 후에 1천5백 달러를 더 내면 자사의 기계식 시계 까레라로 교체해준다는 ‘공약’ 까지 내걸었다. 스마트워치와 기계식 시계를 경험 하는 데 드는 비용은 총 3천 달러. 현재 태그로호이어의 까레라 엔트리 모델보다 저렴하다. 이렇 게 점점 스마트워치에 대한 경험이 많아지고 있으니 결국 기계식 시계를 대신하지 않을까?

잠깐. 스마트워치가 손목시계를 대신한다고? 어쩐지 그 말이 좀 이상하다. 손목시계는 회중시계를 대신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주머니 속에 있던 시계가 손목 위로 이동한 것이다. 예전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회중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지만 시계가 손목 위로 이동하면서 단지 손목만 들면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 간편해졌다. 편리한 쪽으로 이동하는 건 모든 기술의 이치. 그렇다면 스마트 워치로 우린 뭘 할 수 있나? 단지 시간만 확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스마트워치엔 심박수, 운동량 측정 등 다양한 부가기능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건 수많은 정보를 손목 위 에서 쉽게 보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손목 위의 디스플레이로 보면,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것보다 훨씬 편하니까. 다시 잠깐. 스마트 워치가 스마트폰과 연동한다고? 왜 스마트폰을 완벽하게 대체하지는 못하지? 손목시계가 회중 시계를 대신한 것처럼, 스마트워치도 스마트폰의 기능을 소화할 수 있을 때 독립된 기기로 인 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스마트워치에 대해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간단한 스마트폰의 역사. 스마트폰의 원형은 팜톱 Palmtop이었다. 손 위 컴퓨터라는 뜻이다. 노트북을 무릎 위에 놓고 쓸 수 있다고 해서 랩톱 Laptop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이치다. 스마트 폰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도구가 된 건, 노 트북의 기능을 어느 정도 대신할 수 있었기 때 문이다. 스마트폰은 휴대전화를 대체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작게 만드는 데서 시작했다. 한데 사람들이 이 작은 컴퓨터와 비슷한 크기에 뭔가를 매일같이 들고 다녀서 그 기능을 흡수해버렸다. 바로 휴대전화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완벽하게 중독돼버린 건, 스마트폰 이 휴대전화를 대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랩톱의 많은 기능을 휴대전화 크기에서 구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은 폰을 스마트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스마트한 컴퓨터를 ‘폰’ 크기로 만들고, 휴대전화를 흡수한 것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단순한 통화보다 사진, 동영상, 메일, 웹, 메모, 소셜 미디어에 더 많이 활용한다. 스마트워치도 궁극적으로는 똑똑한 시계가 아니라, 손목에 올릴 정도로 작고 똑똑한 기기인데, 아주 사소한 기능, 즉 시계의 기능을 흡수하는 쪽으로 발전할 때, 스마트폰처럼 수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고, 새로운 시장으로 인정받으며, 사람들을 중독시켜 손목 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이폰 이전에도 팜톱, PDA라는 이름의 수많은 기기가 있었지만, 노트북을 대신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이폰 이야말로, 멀티 터치스크린, 편리한 운영체제, 엄청난 확장성을 보여준 유일한 ‘스마트폰’ 기기 였기에 세상을 바꿨다. 스마트워치가 만약 계속 ‘시계’를 겨냥하고, 사소한 기능에 집착하며, 스마트폰의 많은 기능을 대체하지 못하면 팜탑과 PDA같이 미완성 기기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계식 시계, 특히 오래된 손 목시계는 어떤 의미일까? 오직 시간밖에 알려주 지 못하는 ‘멍청한’ 기계일 뿐일까? 기계식 손목 시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계보다 ‘기계’에 주 목하고 싶다. 우리 주변에 완벽하게 아날로그 기계로 존재하는 건 뭐가 있을까? 최소한의 전자 제어 장치도 포함되지 않은 기계는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기계식 시계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기계다. 한데 기계가 보여주 는 시간은 결국 부정확하다. 기계식 시계는 태생적으로 오차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항상 오차를 수정하고, 오버홀을 하는 이유다. 그런데 왜 아직도 기계식 시계가 가치 있을까? ‘아날로그 감성’이란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기계식 시계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 중에서 유일하게 보석의 지위를 차지했다는 점 에 있다. 말하자면 실물자산. 기계식 시계는 많은 사람이 욕망하는 대상이다. 도대체 왜?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책 <스펜트> 를 통해 타인에게 호의를 사고,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이미지와 지위를 보여줄 수 있는 쪽으로 소비가 변화해왔다고 주장한다. 수공작의 꼬리, 사 자의 갈기, 사슴의 뿔, 혹등고래의 노래와 같이 생존 기능과는 크게 관련이 없고 번식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한 개체의 형질과 자질을 알리는, 다른 개체가 지각할 수 있는 신호들” 은 모든 동물에게서 진화해왔다는 말이다. 기계식 시계, 정확하게는 명품 시계로 분류되는 이 시계들은 자신을 멋지게 알릴 수 있는 일종의 신호다. 왜냐하면 그 시계를 ‘손목’에 차기 때문이 다. 손목은 타인에게 가장 쉽게 보일 수 있는 부 위. 옷, 차, 구두, 백과 함께 기계식 시계가 살아남 을 수 있었던 이유도 언제나 보이는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기계식 시계 회사들은 여전히 오차를 줄이고(투르비옹), 더 깊은 물 속에서 작동하며(다이버워치), 소리를 내는 시계(스트라이킹 시스템)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미 스마트폰은 제일 정확한 시계이며, 손목에 차는 다이버 컴퓨터는 아주 정교한 측정을 하고, 1만원 짜리 전자시계도 유쾌한 알람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기계식 시계는 오직 ‘아날로그 기계’를 지키 며 도전한 결과물이다. 압도적인 기능을 하는 것 도 아닌데, 순전히 기계라는 틀을 지키며 기술을 실현해내며 가치를 인정받는다. 각 회사마다 공장(매뉴팩처)에서 비밀리에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그 형태를 모방하지 못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높은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 과정은 어쩐지 ‘화폐’와 닮아 있다. 국가는 자국의 화폐를 위폐와 구별되도록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고, 그 기술을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계식 시계가, 돈과 쉽게 바뀌는 것도 응당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오래 된 돈이 여전히 가치가 있듯이 빈티지 시계도 브랜드라는 ‘국가’가 망하지 않을 때까지 그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다. 오히려 오래된 시계일수록 가품의 의심에서 자유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빈티지 기계식 시계마다 각각 지닌 <카사블랑카> 같은 이야기, 감성을 울리며 째깍거리는 소리, 자다 가도 생각나는 디자인도, 결국 국가, 아니 브랜드가 만들어낸 명확한 ‘가격’ 위에서 존재한다. 그러니 교묘하게 통화량(판매량)을 조절해 가치 하락을 막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며, 이름 있는 기계식 시계 회사들은 이 지점에 ‘도가 텄다.’

스마트워치가 기계식 시계의 라이벌이 되려면 좀 더 완벽하게 스마트해지든가, 아니면 ‘스마트’라는 단어를 제거하는 쪽이 낫다. 전자 제품은 언제나 엄청난 감가상각을 겪는다. 새로운 기술은 계속 등장하고 1년 전 것은 구닥다리가 되고 마니까. 스마트워치는 여전히 더 스마트해질 수 있다. 그건 너무나 확실해 보인다. 롤렉스는 70년 동안 무브먼트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도 말이다.

핏비트 차지 HR 핏비트는 손목 위를 건강을 관리하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 지점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발상의 전환. 하지만 수많은 헬스 밴드와 스마트워치가 범람하면서 무한 경쟁 속에서 분투하고 있다.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추얼 데이저스트 1602/8,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아폴로 11호 달착륙 35주년 기념 모델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고 앞으로도 인기가 있을 대표적인 기계식 시계다. 데이저스트는 자동식 무브먼트를, 문워치는 수동식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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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스마트워치 3, 삼성 기어 S2 클래식 플래티넘 스마트워치의 후발주자 들은 더욱 ‘스마트’해 보이려 하거나 완벽하게 시계의 모습을 모방하는 쪽으로 양분되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가장 먼저 손목 위에 있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에디터
    양승철
    포토그래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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