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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 바닥에 누워

2016.03.18유지성

딱딱한 침대, 물렁한 침대, 소리가 나는 침대, 차가운 방바닥에서 해보았다.

방바닥에서 섹스를 한다? 해본 적은 있다. 우당탕탕. 문을 열고 곧장 바닥으로 넘어졌다. 뭐라도 하나 생략하면 좋은 그런 순간. 방바닥에 가방이며 굽 높은 구두며 속옷이 허물처럼 그대로 굴러다니는 걸 보면서. 그런 흥분은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나무가 깔린 방바닥처럼 금세 딱딱해지곤 했다. 좀 쓸리고 빨개지고 쑤시는 가운데도, 그 불편함은 꽤 색다른 식으로 몸을 자극했다.

전면 통유리로 한쪽 벽을 대신한, 전망 좋던 한 도시의 호텔에선 그 낮게 깔린 눈높이 그대로 도시가 보이기도 했다. 몸의 세포가 전부 바짝 깨어난 것 같은 상태로, 그 도시가 좀 새롭게 보였다. 반대쪽 높은 건물에서도 이 방이 잘 보일까. 길 건너에 불 켜진 창문의 개수가 많을수록, 이쪽 방을 더욱 밝히고 싶어지는 기분.

하룻밤에 장소를 여러 번 옮길 수 없다면 그 방 안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바닥에서 땀에 젖은 채로 헐떡거리다 침대로 올라오면, 바닥에선 도무지 불가능하던 몸놀림이 가능해진다. 아까는 없던 해방감, 고난 끝의 자유, 그레코로만형(처럼 몸을 다 쓰지 못하다가)에서 자유형으로 바뀐 2라운드. 침대는 바닥으로부터 우뚝 솟아 우리 둘밖에 없는 섬이자 로프 없는 링이니, 더욱 본격적으로.

나뭇가지나 로프 대신 내 방 침대 옆엔 책장이 있다. 영화처럼 격렬한 움직임 중에 책이 푸드덕 침대로 쏟아진 적은 없지만, 지지대 혹은 받침대로 그 역할을 거뜬히 해내곤 했다. 혹시나 해서 깨지는 물건은 올려두지 않았다. 그러라고 만든 책장은(혹은 그러려고 거기에 둔 것은) 아니겠으나, 서로의 긴 머리카락이 유용한 손잡이가 되는 것처럼.

싱글보다 간신히 넓은 ‘슈퍼 싱글’ 침대에서 잔다. 베개를 가로로 딱 두 개 놓을 수 있는 크기. 친밀함도 섹스의 일부라면 거기에 가산점을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침대 크기는 섹스에 영향을 끼치나? 섹스는 몸을 가로로 넓히는 게 아니라 세로로 포개는 일에 가까운데. 하지만 이것은 페니스의 크기와 비슷한 얘기일지도. 작아도 아무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커서 나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몸을 옆으로 굴려 방바닥에 쾅! 떨어지는 것 또한 저돌적이긴 하겠으나, 빙그르르 같은 자세 그대로 위아래가 뒤바뀌는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삽입과 몰입 모두를 해치지 않는 모범적 장면 전환일 테니.

딱딱한 침대와 말캉한 침대에 관한 취향이라면 어떨까. 정도는 제각각이겠으나, 적당한 탄성은 윗몸일으키기나 턱걸이에서 반동을 이용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최후의 순간에 꽤 도움이 된다. 몸보다 늦게 ‘출렁출렁’ 물결치기보다,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침대의 순발력. ‘신혼 침대’라는 말이 고유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가운데, 그 신혼 침대의 조건으로 꼽히는 항목들을 살펴보면 꽤 웃음이 난다. 소재가 위생적일 것, 수분 흡수와 발산이 뛰어날 것, (무엇보다) 스프링의 탄성과 복원력이 뛰어날 것, 소리가 나지 않을 것. TV 광고에서 보던, 그저 편안한 밤과 숙면을 위한 침대와는 좀 다른 지점이 엿보인다.

대부분 이유를 짐작할 만한 동시에 수긍할 만한 얘기들. 그런데 소리에 대해서라면 다소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을까? 모든 침대에선 제각각의 소리가 난다. 스프링 침대, 물침대, 돌침대, 라텍스 침대, 간이침대…. 스프링의 문제든 프레임의 문제든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는 간혹 민망한 한편, 침대를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더욱 기운을 내 박차를 가하게 되기도 한다. 탄성과 교성은 물론이고 철썩철썩 온갖 살이 부딪치며 내는, 평소엔 썩 반갑지 않은 별의별 소리들이 활활 타는 그 밤에 더욱 기름을 들이붓듯.

그리고 이불. 리넨이라면 몸이 닿을 때마다 촉이 얇은 펜으로 글씨를 쓰듯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고, 두꺼운 솜이라면 물에 빠지듯 풍덩하고 전신에 감기는 풍성한 감각이 생긴다. 그것을 각각 살갗을 쓰다듬을 때의 긴장, 손아귀로 꽉 움켜질 때의 충만함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속이 꽉 찬 솜이불에 리넨 커버를 씌워둔, 의아한 조합을 즐긴다.)

방바닥이 맘에 안 든다고 콱 이사를 가거나, 매트리스가 불편하다고 침대를 갈아치우긴 어렵지만, 이불 커버쯤이라면 새로 나온 초박형 콘돔을 알아보는 열의와 비용쯤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소파와 주방과 욕실을 전전하더라도 결국 끝장을 보는 섹스는 누워서 하는 일. 뜨거운 섹스를 유발하는 효용을 따져보자면 속옷 하나 새로 사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일 수도 있겠지만, 바닥에 부드러운 러그 하나 까는 정성으로도 확 바뀐 맘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
    M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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