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4가지 깨달음

2016.03.28GQ

깨달음 1 그랬다. 지난달 P.S.에 운이 좋다고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었다. 거의 1년간 가위바위보와 제비뽑기로 P.S. 당첨자에서 제외됐는데, 그걸 발설한 순간 그 운이 사라졌다. 이달은 색색 포스트잇으로 P.S. 담당자를 뽑았다. 누군가 나에게 말한, 좋은 기운을 준다는 노란색이 나를 배신할 줄이야. 처음부터 초록색 포스트잇이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듯했는데, 기어이 그걸 거역했다. 운이 따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기회에 개방적인 태도를 지녔고, 만나는 사람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기사였다. 그래서 좀 더 넓고 안정적인 마음과 태도로 P.S.를 써보려 했으나 도통 획기적인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다.

깨달음 2 넷플렉스가 출시됐다. 들뜬 마음으로 텔레비젼을 샀다. 하와이 여행 갔다가 사둔 3년 묵은 애플 TV를 드디어 달았다. 생각보다 넷플렉스는 아직 콘텐츠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사나흘 즐거웠다. 그 후론 아이패드로 < 태양의 후예 >만 본다. 유시진 대위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무엇보다 똑 부러지고 말끔한 남자다운 성격이 맘에 든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그런 남자가 없다. 있대도 얼굴이 송중기가 아니지 말입니다.

깨달음 3 요가 개인교습을 시작한 지 세 달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가 헷갈린다. 이달 목표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 달 동안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 다니는 거다. 하면 할수록 어렵다. 등은 곧게 펴는데 갈비뼈가 들리지 않게 배 쪽으로 내리고, 어깨의 힘을 빼라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와중에 다리에 힘을 주라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팔과 다리 외에 몸통은 하나라고 알고 지낸 수많은 세월이 야속해졌다. 최근 요가를 하면서 등과 어깨와 가슴, 갈비뼈와 배와 배꼽, 골반과 엉덩이 근육을 각각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가 선생님은 본래 사람은 누구나 근육을 따로 움직이도록 태어났는데, 생활환경에 따라 몸이 굳는 거라고 말했다. 꾸준히 열심히 하면 진짜로 자기처럼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건 아무래도 거짓말이다. 믿을 수 없다. 발리나 하와이에서 요가만 하면서 산다면 몰라도. 요가를 얼마나 꾸준히 해야 득도할 수 있을까. 종종 일이나 출장 때문에 몇 번 수업에 빠질 때면, 그나마 애써 풀린 근육이 다시 꽁꽁 얼어버린다. 쉽게 되는 일은 역시 하나도 없다. 요가가 좋은 건, 있는 힘껏 힘을 주고 난 후엔 꼭 몸을 이완하는 쉬는 시간이 있다는 거다. 어떨 땐 그게 마사지 받는 것보다 시원하다. 요가의 마지막 코스 사바사나라는 쉬는 시간에는 정말이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예전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다. 대개 어떤 공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아마도 그때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나 싶다. 뭐 마음만큼은 이미 수련의 달인이다.

깨달음 4 모든 관계에는 처음과 끝이 있거늘 애써 영원한 관계도 있다고 믿고 산 날들이 있었다. 부모도 자식도 연인도 친구도 영원할 순 없다. 그걸 깨닫고 제대로 정리하는 순간, 슬프거나 아쉬운 마음만이 아니라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도 생긴다는 걸 알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때론 행운이 날 피해간대도 사는 데 큰 불행이 없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에디터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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