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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몰랐던 와인 #셰리와인

2016.03.30손기은

노트는 몰스킨 컬러 노트북 시트러스 옐로 MOLESKINE.CO.KR, 만년필은 라미 2016 스페셜 에디션 알스타 차지드 그린 FACEBOOK.COM / LAMYPENKOREA, 칵테일 제조는 연남동 올드패션드(연남동 385-1 3층)

어떻게 만드나? 스페인 헤레즈 지방의 술로, 셰리Sherry라는 이름 자체가 헤레즈jerez를 영어 식으로 엉뚱하게 발음한 것이다. 그래서 셰리 와인 라벨에는 항상 Jerez-Xeres-Sherry(각 스페인어, 불어, 영어)라는 표기가 있다. 험하고 긴 뱃길 수송에 와인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더하면서 시작됐다는 점은 포트 와인과 비슷하지만, 양조 방법과 숙성 방식은 꽤 다르다. 포트 와인은 발효 과정 중간에 브랜디를 더해 알코올로 변하기 전의 당을 남겼다면(그래서 달다), 셰리는 발효가 거의 끝난 시점에 브랜디를 더해 전체적으로 드라이하고, 알코올 도수도 낮다. 게다가 셰리의 숙성 과정에는 세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첫 번째는 효모 숙성이다. 이 지역 효모가 숙성 중인 오크통 안에 들어가 와인 표면에 곰팡이와 같은 막을 형성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셰리 와인만의 독특한 아몬드 향이 배가된다. 이렇게 만든 와인이 가장 일반적인 타입의 드라이 셰리인 ‘피노’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팔로미노 피노’ 품종으로 만들어 색만 보면 소비뇽 블랑과 비슷하다. 두 번째는 산화 숙성이다. 알코올 도수를 18도로 맞추고 효모 막 생성을 억제시킨 셰리에만 진행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오크통에 담을 때 빈 공간을 약간 남겨 산소와 접촉하게 한다. 오크통에서 뽑아낸 향이 더해져 복합적인 와인이 완성된다. 세 번째는 숙성된 와인을 블렌딩하는 ‘솔레라 시스템’이다.

플로르 Flor 알코올 도수 17도 이하의 셰리를 숙성시킬 때 생기는 거품 같은 곰팡이 막. 이 막이 글리세린을 앗아가 맛이 드라이해지며 날카롭고 톡 쏘는 듯한 향이 추가된다.

솔레라 시스템 Solera system 맨 아래 줄에 있는(가장 오래 숙성한) 오크통의 1/4을 비운 뒤, 한 줄 위의 오크통(1년 덜 숙성한) 속 와인을 꺼내 아래 통을 채우는 숙성법이다. 이런 블렌딩으로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주로 3~5줄 높이의 피라미드 형태로 오크통을 쌓으니, 점차 와인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솔레라’는 가장 아래 줄의 오크통을 일컫는 말로 ‘지면’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수엘로’에서 왔다.

 

셰리 와인의 대표적인 네 가지 스타일

1 피노 대표적인 셰리 와인. 화이트 와인인데 극도로 드라이해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개봉 후 바로 마셔야 맛이 살아 있다. 그래서 장사가 잘되는 타파스바에서 피노를 마셔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2 페드로 히메네즈 페드로 히메네즈 품종의 포도를 수확 후 땅 위에서 앞뒤로 뒤집어가며 15일간 햇빛에 말려 당도를 바짝 끌어올린 와인이다. 색깔은 간장처럼 짙고 맛은 조청만큼이나 달콤하고 진득하다. 이 술 자체로 디저트가 된다.

3 올로로소 플로르 없이 산화 숙성과 솔레라 시스템을 거쳐 만든 셰리 스타일이다. 앞선 종류보단 맛이 더 묵직하고 알차다. 알코올 도수는 20도 정도이며 페드로 히메네즈를 소량 블렌딩해 단맛을 다양하게 조절한다.

4 아몬티야도 플로르가 있는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다 중간에 플로르를 제외하고 산화 숙성 방법으로 추가 숙성을 진행하는 와인 타입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와인이 꿀차색으로 변하고 아몬드 향도 한층 더 짙어진다.

 

셰리로 흔든 칵테일

1 셰리 코블러 1830년대의 칵테일. 코블(자갈) 사이즈의 작은 얼음을 사용해 ‘셰리 코블러’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바에서 얼음이 본격적으로 유통되던 시절과 궤를 같이하는 술이다. 그 시대에 막 개발된 빨대를 처음 사용한 술이기도 하다. 아몬티야도 셰리와 심플 시럽, 얇게 저민 레몬과 오렌지가 들어간다. 알코올 도수가 약해서 술술 넘어가고, 열대 과일에서 느껴지는 흔한 단맛보다는 셰리 와인 특유의 단맛이 새롭다.

2 던힐 1900년대 초반, 런던 피카딜리의 근처의 한 바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술이다. 진, 드라이 베르무트, 셰리가 1:1:1 비율로 들어가, 네그로니나 퍼펙트 마티니와 얼추 비슷한 느낌이다. 스위트 베르무트 대신 크림 셰리를 사용한 셈. 크림 셰리는 올로로소 타입의 셰리에 페드로 히메네즈를 섞어 달콤하고 기름진 맛이 특징이다. 이 칵테일에는 압생트도 들어가는데, 잔 안에 살짝 묻히는 느낌으로만 넣는다.

3 셰리 칵테일 1800년대 초에는 ‘칵테일’이 지금처럼 믹스드 드링크를 아우르는 단어로 쓰인 게 아니라 비터, 설탕, 물, 술이 들어간 음료를 한정해 일컬었다. 이런 ‘칵테일’의 확장판이자 압생트와 마라스키노 리큐르를 ‘킥’으로 사용한 술이 사진 속 ‘셰리 칵테일’이다. 뉴욕 ‘데드래빗’의 잭 맥개리 바텐더가 선보인 이후 인기를 얻었다. 연남동 ‘올드패션드’ 바에서도 조만간 셰리를 활용한 칵테일을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마드리드의 셰리바

런던, 뉴욕, 마드리드 곳곳에 셰리바가 포진해 있다. 간단한 타파스를 내며, 1백여 종이 넘는 셰리를 빼곡히 갖추고 있어 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놀이공원이자 덫이다. 특히 요즘은 미국의 칵테일바에서도 셰리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 클래식 칵테일 복원이 인기로 셰리 와인도 덩달아 쓸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셰리의 본고장 스페인에 가면 셰리바의 셀렉션이 한층 더 화려해진다. 마드리드에 있는 ‘라 베넨시아’는 일흔 살을 훌쩍 넘긴 셰리바다. 낮이건 밤이건 매 시간 손님이 꽉 들어차 있는데, 겨우 자리를 비집고 바 앞에 서면 무뚝뚝한 직원이 술을 내온다. 주문한 술과 가격은 직원이 나무로 된 바 위에 분필로 대충 적어주고, 안주는 기본적인 타파스 몇 종만 주문할 수 있다. 셰리를 즐긴다면, 이곳에서 자신의 주량과 금전의 한계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 분명 올 테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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