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형에 양자리

왁자지껄 별자리와 혈액형에 관해 얘기할 때 가장 맥 빠지는 반응은 이것이다. “그런 걸 믿으세요?” 촌스럽기는, 별자리가 종교인가? 뭘 믿고 말고 하나. 두 번째로 덜떨어진 대답은 이것이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거죠.” 그냥 재미?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흔한가? 나는 원하고 원망한다. 혈액형과 별자리에 대한 보다 날카로운 이야기를, 보다 풍부한 에피소드를, 보다 짜릿하고, 보다 웃기고, 보다 멍청한 상황을 더 더 더. 그런 나를 두고 천칭자리 B형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더 더 더 원하는 것도 선배가 O형에 양자리라 그런 거예요.” 어느 별자리 해석에 이르기를, 양자리가 지닌 욕망의 근원은 “나는 앞으로 가고 싶다”라 했던가. 어디까지나 해석은 상대적이라야 재미가 생기는 법, 양자리가 ‘나는 앞으로 가고’ 싶을 때, 물병자리는 ‘나는 이해하고’ 싶고, 사수자리는 ‘나는 만끽하고’ 싶고, 처녀자리는 ‘나는 만족하고’ 싶다. 만족과 만끽은 어떻게 다를까. 내게는 사수자리 친구가 두 명 있는데, 걔들에게 ‘만끽’을 대입하면 즉각 웃음이 터진다. “어쩜 쟤는 저렇게까지 저럴까” 싶던 무수한 일들이라니. 그런가 하면 ‘나는 앞으로 가고 싶다’는 양자리와 ‘나는 제어하고 싶다’는 염소자리의 관계는 묘하다. 말 그대로, 하나는 앞으로 가려 하고, 하나는 제어하려 하니, 조화를 이루기로 치면 과연 아름다울 것이나, 부딪히기 시작하면 사사건건 점 하나로도 틀어질 판이다. 물론 염소자리는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맞춤한 제어력을 선보일 것이지만, 그럴수록 양자리는 정말 이렇게까지 싫은 경우는 처음이라 느낄 것이다. 전화가 온다. 왕년에 술깨나 같이 마신 형이다. 생각해보니 그도 염소자리. 나는 갑자기 깨닫는다. 형의 전화를 받을 때 어쩐지 ‘착한’ 말투를 쓰려 했다는 것을. 형은 뭔가를 묻고, 나는 길들여진 과거로부터 여전히 형의 어린양임을 표현하려 애쓴다. 전화를 끊으며 형이 말한다.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내가 언제 그렇게 많이 마셨냐”거나, “너나 작작 마시”라거나 했을 텐데,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 형.” 착하다. ‘착한 커피’ 옆에 ‘더 착한 커피’ 간판을 보란 듯이 거는 기막힌 도시에서 나도 이만큼은 착하다.

촬영장에 갔더니, 여자가 세 명 있었다. 스타일리스트, 사진가, 여배우. 셋은 모두 사자자리라고 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사자자리는 대체로 ‘세다’는 이미지에, 범접하기 어려운 인상도 풍기지만, 이상하게도 양자리에게만은 편안한 상대가 된다. 그 바탕은 사자자리는 양자리를 귀여워한다는 데 있다. ‘저것도 내 먹잇감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냥 먹어치우기 보다는 하는 짓을 보며 웃으면 재밌겠다’는 판단이 사자자리에게 생긴달까? 양자리의 유머에 가장 ‘빵빵 터지는’ 게 사자자리다. 파티에 사자자리 사진가를 초대하면서, 양자리가 여는 파티에 사자자리는 무조건 많이 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가 답했다. “그러니까, 밥이라 이건가요?” 아니다. 내가 답한다. “밥은 밥통에, 사자자리는 파티장에.” 그녀가 하하하 웃는다. “양자리는 정말 재미있어.”

언젠가 B형에 천칭자리인 후배가 뜬금없이 조영남 씨 관련 뉴스 한 토막을 카카오톡으로 보낸 적이 있다. “선배, 이 사람은 정말 왜 이럴까?” 나는 평소 느끼는 대로 말했다. “나는 이 사람 왠지 좀 알 것 같더라.” 몇 시간 후 후배로부터 ‘ㅋ’으로 도배된 메시지가 왔다. “선배, 조영남 씨 O형에 양자리!” 3월이 가고 4월이 온다. 바로 양자리의 시간이다. 밤이나 낮이나 꽃이 핀다. 얼씨구나, 나는 앞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