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드라마를 좋아하세요?

볼까 말까, < 태양의 후예 >를 마침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일상에서 “~했지 말입니다”를 더는 들어줄 수 없노라 판단한 날이었다. 확인사살과 폐기처리가 예정된 이벤트로서의 시청. 그런데 말투나 들어보자던 게 앉은 자리에서 5회까지 이어 달리고 말았다. 김은숙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다들 (대사가) 오글거린다고 한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면서 보기 때문에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5회까지 달리는 동안 내가 연신 중얼거린 말과 같았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나는 졌다고 말해야 한다. 그 드라마엔 ‘여기까지’라는 게 없었다. 인간이 곧 캐릭터고 캐릭터가 곧 인간이었다. 삶이 설정이고 설정이 곧 삶이었다. 그렇게도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아니라 해도 문제 없는 드라마였다.

김은숙은 잘 쓴다. 거침없이 아귀가 착착 맞는다. 논리와 이치로든 엇나가는 에지로든 결코 헛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등장과 동시에 매력을 어필하는 인물은 절대 그 매력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지 않는다. 비교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김수현 드라마의 인물이 정말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을 한다면, 김은숙 드라마의 인물은 그 사람이 할 것 같은 말만 한다.

그러니 여지도 의심도 있을 수 없다. 김은숙 드라마를 보면서 ‘나라면 저럴 때 어떻게 했을까’라든가, ‘저런 게 인생일까?’ 같은 생각은 들지도 않지만, 필요도 없다. 그냥 다 맡길 수밖에 없다. 맡겨놓으면, 알아서 만나고, 알아서 사랑에 빠지고, 알아서 키스하고, 알아서 귀고리를 신상품으로 바꿔 달고, 알아서 죽고, 알아서 부활하고, 알아서 교훈을 읊어준다. 그것도 시원시원한 속전속결로. 요컨대 김은숙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시청자는 걱정하지 않는다. “알아서 다 해결해드립니다.”

그런데 그것은 몰입과는 사뭇 다른 얘기다. 김은숙 드라마는 모든 걸 잊게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모든 걸 드러내는 바람에, 시청자가 스스로를 ‘다 알고 있는’ 유식한 관객으로 여기도록 만들기는 한다. (대중이 아주 좋아하는 지점이다.) 내용도 장르도 애당초 큰 상관은 없다. 로맨틱 코미디든, 히어로물이든, 국뽕과 멜로의 볼레로든, 그걸 다 버무렸든, (‘키스’가 있는 한) 김은숙 드라마는 김은숙 드라마라는 폴더에 따로 저장된다.

설탕에 비유할 수 있을까? 단박에 감각을 사로잡고 황홀하게 몰아친다. 유일한 약점은 질릴지도 모른다는 건데, 그것도 문제는 아니다. < 태양의 후예 > 마지막 회는 ‘어디까지 하나 보자’ 부문에서는 신기록을 세웠지만, 한순간 질렸다 여겨도 반드시 다시 찾게 되어 있다. 김은 숙 드라마는 트렌드의 산물이 아니라 트렌드 자체다. 드라마가 끝남과 동시에 트렌드도 끝난다. 모든 흉내는 곧 뒷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