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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이 IT산업의 판도를 바꾼다고?

2016.04.29GQ

삼성은 지난 2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즉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를 통해 새로운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 S7 시리즈를 공개했다. 참석자들은 삼성 기어 VR을 쓰고 발표회를 감상했다. 스마트폰 발표회가 아니라 VR 발표회처럼 보일 정도였다. LG도 G5를 출시하면서 프렌즈라는 이름의 주변 액세서리를 대거 내놓았는데, 그중 일부는 VR 관련 액세서리였다. 모바일 산업의 큰 축이 VR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스마트폰 업계만이 아니다. 페이스북이 소유한 오큘러스와 대만의 HTC는 최근 고급형 VR을 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VR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홀로렌즈를,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VR을 준비중이다. 구글도 가상현실 사업부를 신설했고 애플 역시 VR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사실 IT/테크 분야에 이름을 올린 모든 업체가 VR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VR은 황금알을 낳는 미래의 산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아무리 살펴봐도 성공한 VR 콘텐츠가 없다. 이미 많은 하드웨어가 풀리고, 다양한 제품이 등장하고 있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VR 콘텐츠의 리스트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몇 개의 포르노 제목만 있을 뿐이다. 포르노가 VR을 보급할 수 있을까?

사실 새로운 기기의 보급에 포르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포르노 결정론’은 테크 업계의 상식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 상식이 확대 해석됐다고 생각한다. VHS 비디오나 컴퓨터 보급에는 포르노가 큰 역할을 했다. 그 제품들 이전에는 포르노가 한정된 사람만 접할 수 있는 고급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르노를 쉽게 영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 이후 포르노는 단 한 번도 새로운 기기의 보급에 큰 역할을 한 적이 없다. 블루레이, 스마트폰, 태블릿의 보급에 포르노는 거의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VR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VR을 즐기려면 우선 머리에 뭔가를 쓰고 있어야 하는데 이게 아주 부자연스러운 경험이다. 게다가 자신이 실제 주인공이 된 것처럼 경험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포르노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포르노 시청을 실제 행위의 대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관음증적 욕망이 더 강하다. 관음적 행위는 2D 화면 시청에 더 가깝다.

VR 게임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VR 게임의 몰입감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게 아니다. 게임은 크게 콘솔과 온라인 게임으로 대표되는 몰입형 게임, 스마트폰 게임으로 대표되는 캐주얼 게임으로 나뉜다. VR 게임은 스마트폰 게임처럼 즐기기 힘들다. 일하다가 잠시,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집 안에 틀어박혀 혼자 즐겨야 한다. 공간의 제약이 크다. 지나친 몰입 감도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강한 몰입감으로 플레 이 시간 내내 긴장해야 한다면 1시간 이상 콘텐츠를 즐기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오랜 접속 시간을 유지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 업계에도 좋은 제안이 아닐 수 있다. VR 게임은 콘솔 게임 중에서도 짧은 플레이 타임의 게임 속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레이싱 게임을 위한 스티어링 휠, 페달 세트 같은 액세서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런 회의론의 배경에는 3D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 아바타 > 이후 3D 산업에 모든 테크 기업들이 뛰어드는 듯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서랍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3D 안경과 몇 개의 3D 포르노만 남았다. 물론 VR은 3D에 비해 몰입감이 훨씬 강하고 다양한 서비스와 결합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영화에서만 힘을 발휘한 3D와는 파괴력이 다르다. 하지만 현재의 VR은 박람회나 전시회의 스타에 불과하다. 1~2분 정도 놀래키는 효과는 있지만 VR 기기를 우리 집에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물음표를 띄운다. 멋진 경험이지만 간편하지 않고 비싸며 거추장스럽다. 나는 편안히 누워 < 스타워즈 >를 보고 싶을 뿐, 우주 공간을 헤매는 것은 유니버설스튜디오에 놀러 갔을 때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산업 시뮬레이션, 교육 프로그램, 저널리즘, 스포츠 등의 특정 분야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마냥 절망적인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콘텐츠 없이 하드웨어만 잔뜩 밀어내는 현재 VR 산업의 팽창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에디터
    글 / 김정철(웹진 '더 기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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