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세상에 뿌려진 디제이만큼

2016.05.03GQ

세상에 왜 그리 많은 디제이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디제이는 가장 좋은 음악을 가장 빠르게 구해서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정보와 유행을 공유하고 첨단 장비로 기술적 차이를 빠르게 보완할 수 있다. 최신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빠른 귀’보다 수많은 음악 중 더 좋은 음악을 가려내는 ‘까다로운 귀’가 중요해졌다.

이미 ‘식은 떡밥’이지만 한 케이블 방송에 서 방영된 디제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까다로운 귀를 가진 사람을 가려내는 데 실패했다. 디제이 문화에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연출, 디제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발언, 극히 제한적인 시간 안에서의 대결 방식, 일부 출연자의 알 수 없는 퍼포먼스와 이미 녹음해온 것처럼 보이는 믹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유의 악마의 편집 등에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나타냈다. 하지마 정작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내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 건 구린 음악이었다. 두 출연자가 동시에 선곡하려 했던 블러의 ‘Song 2’는 물론 구린 곡이 아니지만 히트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라도 클럽에서 두 번 듣고 싶은 곡은 아니다.

“곡이 너무 좋아서 엠피스리로 소장하고 있어요!”는 10년 전에 읽은 가장 웃기는 댓글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대중음악은 일회성 소비재다. ‘일회성 소비재’의 관점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사람이 디제이라면 지금 한국 디제이들은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에서 어떤 자부심도 보이지 않는 ‘감성주점’ 디제이와 대형 클럽 디제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가지 플레이리스트를 반년 가까이 반복하는 디제이, 장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디제이, 한 소절만 들어도 전체가 예상되는 따분한 음악을 만들지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이 야속한 프로듀서 디제이, 멜론 EDM 플레이리스트 생체 복사기에 가까운 디제이 등등. 당장 인스타그램만 둘러봐도 프로필 사진은 이미 모두 디제이다.

많은 디지털 디제잉 장비가 나와 그만큼 접근이 쉬워졌다. 능숙한 기술과 화려한 몸짓이 동반되면 더 좋겠지만, 여전히 디제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근사한 이름을 짓거나 최신 장비를 갖추기 전에 얼마나 멋진 음악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덥플레이트, 스페셜 등으로 불리는 자신만의 ‘익스클루시브 튠’을 가졌거나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한 좋은 음악을 빠르게 발견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대를 지나, 디제이들이 경쟁적으로 빤한 곡을 선곡하고 힘들게 습득한 화려하고 멋진 기술을 빤한 음악에 허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TV에서, 클럽에서, 페스티벌에서 접하는 많은 디제이의 음악에서, 수집가 혹은 좋은 청자로서의 미덕을 전혀 느 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티스트가 되려는 디제이는 왜 또 그렇게 많은가? 스스로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전에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디제이이기는 한가? 디제이 원맨 DJ Oneman, 로간 사마, 벤 유에프오, 일라이자 앤 스킬리엄은 자작곡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일 따위 하지 않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충분한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다. 좋은 디제이는 좋은 프로듀서가 아닐 수 있지만, 좋은 디제이는 반드시 좋은 수집가다. 수집가로서, 좋은 음악을 좋은 방식으로 들려준다. 바이닐 레코드든 음원이든 사운드클라우드의 ‘라이크’ 리스트든, 매체는 크게 중요치 않다. 음질이 나쁘지만 않다면 다른 사소한 문제는 장비가 해결해준다.

즐기는 사람들조차 베이스 ‘드랍’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그 이상은 ‘노 관심’이 된 건, 좋은 음악을 딱히 가려낼 필요가 없는 감성주점이나 엉터리를 방관하는 더 엉터리인 클럽이 쉬지 않고 생겨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음악이 중요한 클럽과 좀 더 상업적인 클럽이 공존하는 건 당연하고 나쁘지 않다. 하지만 클럽의 운영자 혹은 음악 디렉터가 지금 디제이 부스에 있는 디제이가 어떤 음악을 지향하는지 몰라서는 곤란하다. 기껏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초청해놓고, ‘터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플레이를 시작한지 20분 만에 디제이 부스에서 끌어 내린 어느 클럽의 ‘웃픈’ 일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근에 본 가장 슬픈 말은 어느 파티 홍보 글에 적힌 “XX클럽의 디제이 팀장 출신”이었다. 디제이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과 엉터리가 되는 건 무관하다. 다만 클럽이든 어디든 이미 자신이 잘 알려진 디제이이거나 선곡의 자유를 보장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엉터리 디제이가 되는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길은 레지던트 디제이 혹은 고용된 견습 디제이로 경력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도 온라인 디제이 커뮤니티의 구인란에서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하나씩 배워가며 시작할 막내”를 찾는 글을 적잖이 볼 수 있다. ‘막내’라니, 빨래라도 시킬 것 인가. 당연히 모든 클럽과 모든 디제이 레지던시의 얘기는 아니다. 팀장님께는 죄송하지만, 디제이 팀장은 그 ‘슬픈’ 호칭만으로도 제법 까다로운 귀를 갖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다행히 요즘은 클럽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디제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파티를 열고 친구를 초대해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괜찮다. 수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린 연예인이든 취업 준비생이든, 충분히 걸러진 음악 목록을 갖지 못했다면 굳이 화려한 조명 아래서 디제이로 활약하기보다는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과 작업실이든 친구 집 옥상이든 폐건물이든 찾아서 음악을 공유하며 노는 즐거움을 찾는 게 먼저 아닐까. 게다가 클럽에서 멋진 포즈로 디제잉하는 노골적인 사진보다는 옥상 파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음악을 들려주는 모습의 사진이 SNS에서 더 많은 ‘좋아요’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그 편이 훨씬 더, 까다롭지만 신뢰받는 귀를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라. 귀가 화근이 되는 경우는 없다.” 프랭크 타이거의 경청할 만한 말이다. 비단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디제이에게 적절한 격언이기도 하다. 까다로운 귀는 디제이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훌륭한 청자가 훌륭한 디제이일 수는 없지만 모든 훌륭한 디제이는 반드시 훌륭한 청자다.

    에디터
    글 / 정희석(음악 애호가)
    일러스트레이터
    여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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