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셔츠 장인 ‘파비오 보렐리’

파비오 보렐리 (루이지 보렐리 CEO)

루이지 보렐리는 나폴리 셔츠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사보이 왕가의 공식 셔츠 업자, 최고의 나폴리 셔츠 메이커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지니고 있으니까. 브랜드가 설립된 건 1957년이지만, 시작은 안나 보렐리가 아틀리에를 연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 역사도 꽤 길다. 부드러운 실루엣과 섬세한 디테일, 뛰어난 착용감, 핸드메이드를 고집하는 이탤리언 장인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보렐리의 셔츠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현재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건 안나 보렐리의 손자이자 루이지 보렐리의 아들인 파비오 보렐리. 그는 가문의 유산을 좀 더 현대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루이지 보렐리의 셔츠는 다른 셔츠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나폴리 셔츠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손바느질로 섬세하게 만들어 실루엣이 아름답고, 입었을 때 훨씬 편하다. 또 얇고 부드러운 심지를 사용해 형태가 자연스럽고, 칼라도 일반적인 셔츠보다 높아 우아한 느낌을 준다. 눈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입어보면 그 차이를 확실하게 안다.

2016 SS LUIGI BORRELLI

당신의 할머니 안나 보렐리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자 셔츠 메이커였다. 다른 남성복 아이템에 비해 셔츠는 유독 여자 장인이 많은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예전에는 남성복은 남자 테일러가 만드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남자의 몸은 남자가 더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셔츠는 속옷처럼 피부에 바로 닿는 옷이다. 여자가 만든 섬세하고 부드러운 셔츠를 입어보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을 거다. 사실 여성 셔츠 메이커가 인정받기 시작한 건 할머니가 만든 셔츠가 유명해지고부터다.

아버지에게 가업을 물려받은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브랜드를 좀 더 널리 알리고 세계적인 유통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셔츠뿐 아니라 수트와 재킷, 바지, 타이, 신발까지 함께 선보이는 토털 컬렉션 브랜드로 확장했다. 사르토리알의 전통과 브랜드의 비전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2016 SS LUIGI BORRELLI

셔츠 박스 안쪽에 손바느질로 완성한 부분을 그림으로 설명해놓았다. 그게 참 흥미로웠다. 단추와 단춧구멍, 칼라, 암홀, 어깨 요크, 소매의 건틀렛과 앞판의 칸노키노 Cannoncino, 사이드 거셋, 이 여덟 군데만큼은 꼭 손바느질로 마감한다. 셔츠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1백 퍼센트 핸드메이드 셔츠는 불가능한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효율적이지 않다. 단순히 생산 효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마감해야 내구성이 훨씬 좋은 면도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칼라나 소매는 기계로 먼저 붙인 다음 손바느질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단추를 십자형이 아닌 새발 형태로 꿰매는 이유는 뭔가? 많은 사람이 치킨 풋 스티치 Chicken Foot Stitch를 나폴리 셔츠의 특징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건 우리의 고유한 디테일이다. 눈이 어두웠던 할머니가 실수로 단추를 그렇게 달았는데, 그 형태가 독특하고 재미있어 그때부터 쭉 치킨 풋 스티치를 유지하고 있다. 기계로는 이렇게 달 수 없어 손바느질로 완성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2016 SS LUIGI BORRELLI

루이지 보렐리만의 고유한 디테일이 또 있나? 허리선 부분에 덧대는 하얀 삼각형 거셋도 우리의 특징이다. 이것 역시 할머니가 파란색 셔츠에 하얀색 거셋을 달면서 시작됐다.

베이지색 박스와 어두운 초록색 리본 인쇄 역시 루이지 보렐리의 상징이다. 베이지는 온화한 우아함을 표현하기 위해, 초록색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던 색깔이라서 골랐다.

유독 좋아하는 셔츠는 어떤 것인가? 영국 원단으로 만든 셔츠를 좋아한다.

싫어하는 스타일의 셔츠도 있나? 아메리칸 핏 셔츠. 개인적으로 좀 더 얇은 이탤리언 핏을 선호한다.

어렸을 때는 어떤 옷을 입었나? 열여섯 살 때부터 수트를 입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진과 리넨 셔츠를 주로 입었다.

보렐리의 맞춤 셔츠는 비싼가? 원단과 디테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원단도 소재와 색깔, 패턴이 다른 1천5백 가지 패브릭 중에서 고를 수 있다.

2016 SS LUIGI BORRELLI

셔츠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주.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페라리의 회장이었던 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우리 셔츠를 좋아해 자주 셔츠를 맞추러 왔다. 앤디 가르시아나 해리슨 포드, 세르지오 로로 피아나, 지오반니 아그넬리도 보렐리의 오랜 고객이었다.

정말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나? 피아트 그룹의 회장이었던 지아니 아그넬리. 세련되고 근사하게, 가장 이탤리언답게 옷을 입는다.

아직도 나폴리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나? 아틀리에는 아직 남아 있지만 그곳에서 제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현재의 생산량을 감당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나폴리에 있던 매장도 얼마 전에 카프리로 옮겼다.

그렇다면 셔츠는 어디서 제작하나? 수트와 재킷, 타이 같은 아이템은 여전히 나폴리에서 제작하지만, 셔츠는 바리에 있는 더 큰 아틀리에에서 만든다.

2016 SS LUIGI BORRELLI

여러 가지 컬렉션이 있던데, 각각의 라인은 어떻게 구별되나? 지금은 두 가지 라인을 만든다. 로열 컬렉션은 최고급 소재를 사용해 클래식하게 만든 메인 라인이고, 루이지 보렐리 컬렉션은 좀 더 캐주얼한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해 제작한 것이다. 럭셔리 빈티지 라인은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아직도 나폴리에 살고 있나? 물론이다. 나폴리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나폴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을 한 군데만 꼽는다면?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20분 정도 달리면 포실리포라는 해안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쉬는 날은 뭘 하며 보내나? 카프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정말 천국 같은 곳이다.

좋아하는 영화는 뭔가? < 두 사령관 I due marescialli >이라는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가 있다. 비토리오 데 시카와 토토가 주연한 1961년작 코미디 영화인데, 정말 재미있다.

일할 때의 버릇이나 습관이 있나? 항상 면바지에 샴브레이 셔츠를 입는다.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가업을 물려 받은 것. 가족의 전통과 유산을 지키는 건 이탈리아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