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책을 말하다

책을 사기만 하는 사람과 책을 읽기만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중요한가?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적어도 지금 한국의 대다수 출판사에 이 질문의 답은 책을 사기만 하는 사람이다. 읽든 안 읽든 책을 사는 사람이 독서 시장을 유지하고 지속시킨다. 종종 ‘읽지도 않을 책을 왜 사냐’고 타박까지 받으면서 책을 사는 사람이 책을 먹여살린다.

모든 게 내리막인 세상이라, 가만히 있어도 뒤로 밀리는 쇼핑 카트에서 책은 여차하면 원위치에 놓이기 가장 쉬운 후보다. 책은 언제나 읽는 자인 독자를 기다리지만, 갈수록 사는 자인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국민 1인당 독서량이 도서 구매량에 턱없이 모자란 실질 독서량이라면 아직 희망은 있다. 하지만 그 독서량이 독자 한 명의 실질 구매량이라면 이미 여기는 낭떠러지 바로 앞이다.

그래서일까. 수년 전부터 책과 관련된 행사는 거의 소비자에 초점을 맞춰 진화하고 있다. 그 과정은 ‘뭔가를 일으켜보고 싶은데, 뭐가 좋을지는 모르겠고, 뭐라도 하는 게 낫겠지, 이왕이면 그럴듯하게’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기획을 ‘콘서트’라는 단어로 부르기 시작한 역사와 같다. 그렇게 온갖 문화 행사의 접미사는 ‘콘서트’가 되었다.

발단이 어디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원래 장사가 잘 안 되는 가게는 그나마 사정이 나아 보이는 옆 가게를 슬쩍 따라 한다. 음악 동네의 콘서트라는 형식을 빌리고 영화 동네의 GV를 가져다 섞어서 내놓은 결과가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북 콘서트였을 것이다. 북 콘서트는 독자에 대한 고민이 아닌 소비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북 콘서트가 효용이 있을까? 판매 촉진, 저자와 출판사의 인지도 상승, 새로운 독자의 유입. 이런 것들이 ‘북 콘서트’의 일차적인 목표겠지만 결과는 그만큼 풍성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거나 ‘안 하면 섭섭해서’ 정도의 의미에 고착되어 있다. 이 형식을 고집할 이유는 희박해 보인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독서 시장을 되살려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안간힘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이만큼 해왔다면 효용과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지금 ‘북 콘서트’는 역할이 애매한 ‘띠지’처럼, 거추장스럽게 책을 둘러싸고 있다.

독서보다는 독서 시장, 독자보다는 구매자를 우선해서 말했지만, 궁극적으로 책은 독서와 독자로 생명을 이어간다. 북 콘서트의 지향도 소비자를 독자로 변화시키는 것일 테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빌려온 형식을 짜깁기한 지금의 북 콘서트는 책이라는 매체의 특수성을 살리지도 못하고, 소비자가 독자로 건너올 디딤돌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북 콘서트의 참여자들은 저자나 다른 독자와 자신의 독서가 어떻게 다르고 달랐고 달라질지를 확인할 수 없다. 수집과 구경, 가십거리에 치중된 호기심으로 콘서트 시간이 때워지고, ‘안 읽은 책도 읽은 것 같은 느낌’만 남는다. 저자가 책을 낭독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고 책이 깊이 있게 다가오거나 콘서트가 풍성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책도 노래도 이중의 할인을 당할 뿐이다. 소비자는 독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구경꾼의 역할을 하다가 콘서트장을 떠난다.

장사가 안 돼서 옆 동네 장사를 따라 해봤는데 그게 우리 동네에 맞지 않는다면 당연히 방식을 바꿔야 한다. 소비자 정체성을 독자 정체성으로 옮겨갈 발판이 될 형식이 필요하다. 그건 책도 있고 저자도 있고 낭독도 있고 노래도 있는, ‘함께라서 좋은 시간’으로는 만들 수 없다. 활자와 읽기 행위와 독서 경험을 공유하는 형식이 당장은 보잘것없고 그리 화려하지도 않아 ‘행사’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잘나가는 옆 동네의 들썩들썩한 소동을 부러워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우선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더 나은 소비자가 되도록 돕는 것. 마침내 독자가 되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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