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자칭 ‘덕후’에게 고함

2016.05.11GQ

‘오타쿠’가 ‘쿨’해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매체와 인터넷에 오르내렸고, 오타쿠는 오덕후를 거쳐 덕후 혹은 덕으로 외래어의 영역을 벗어났다. SNS가 발달하면서 소위 ‘덕력’을 뽐내는 이들이 가시권에 들어왔고 현혹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인기 드라마에 따라 직업 선호도 1위가 바뀌는 식의 ‘하이프’와 비슷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오타쿠 혹은 오타쿠 같은 무엇이 되고 싶어 했다. 심한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 온갖 안간힘-스타워즈 코스튬을 입은 자기 모습을 SNS에 올리기-을 쓰며 보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인위적으로 덕후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상엔 오타쿠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향후 오타쿠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오타쿠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오타쿠라고 하는구나’ 라는 늦은 깨달음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게다가 뭐든 흉내를 내는 사람은, 대단히 슬프게도 티가 난다. ‘나도 오타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나도 오타쿠였으면 좋겠는데 확실치는 않다거나, 오타쿠가 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자신이 일반인이라는 인증이다.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멈출 수 없다면, 어떻게든 오타쿠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유사 덕질’은 멈추는 게 좋다. 지금 그 종목은 승산이 없다고 봐야 한다. 대신 오타쿠에 대한 오타쿠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대체 오타쿠의 뭐에 그렇게 끌리는지 성찰해보는 건 어떨까? 오타쿠의 역사를 파고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그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해보는 것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덕존잘(존잘: 뭔가를 매우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 SNS 용어)’들을 모아보는 것은? 그들의 특징을 파악해보는 것은? 그에 따라 분류해보는 것은? 그 뒷이야기들을 살펴보는 것은? 지금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슬퍼지지만, 어쨌든 건투를 빈다.

    에디터
    글 / 정세현(밴드 404)
    일러스트레이터
    여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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