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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발견

2016.05.15유지성

주체할 수 없는 밤과 아침을 지나, 오후까지 느긋하게 섹스를 한다.

 

대낮에 만나면 대개 저녁을 먹기 전에 헤어졌다. (저녁에 만나면 아침까지 있기도 했지만) 대낮에 만나 다음 날 아침까지 시간을 보내는 건 진한 연애, 그 절정 즈음(의 몇 달)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침에 가까운 새벽, 달리 말해 평일이든 주말이든 잠들어 있을 몇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오후의 섹스야말로 낯설지 않나?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부터 섹스를 염두에 둘 정도의 열의라면, 군복을 벗은 이후로는 글쎄.

오후. 간단한 점심과 푸진 저녁 사이, 평일엔 대부분 근무 중, 휴일엔 이미 지난밤의 누군가가 떠나간 시간, 종종 그저 혼자 낮잠을 자는 때, 만남과 만남 사이의 공백, 지금 당장의 섹스보다 참았다 저녁의 ‘무드’를 즐기기 위한 스릴….

혼자 살며 내 방이 생기기 전엔 좀 달랐나? 이를테면 숙박업소의 대실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만 가능한, 둘밖에 없는 공간에서 맞는 네 시간의 자유. 거기서 섹스만 하는 건 아니었다. 게임기가 있으면 게임도 하고, 텔레비전 재방송도 보고, 우리 동네엔 없는 맛집 음식도 시켜 먹었다. 그런데 대개 그런 곳은 창문이랄 게 없었다. 고개를 내밀고 담배만 간신히 피울 수 있을 정도의 ‘쪽문’ 정도. 창문이 있다 해도, 커튼이나 기타 시설을 이용해 암막을 친 것처럼 완전한 어둠을 연출할 수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섹스를 포함) 이것저것 몰두하다 보면, 대개 프런트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 시간을 잊곤 했다. 오후의 햇빛은 건물 밖에만 있었다.

그래서 낯설다. 서늘한 아침을 지나 창문을 활짝 여는 시간, 햇살이 밖에서 막 쏟아져 들어와 실내가 달아오르는 순간, 해가 떨어지며 하루의 색이 바뀌는 그때의 섹스가 그렇다. 모닝섹스라고 해봐야,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벌어지는 일 아닌가? 일어서서 기지개를 펴기는커녕 물도 한 잔 안 마시고 이불 속에서 이미 뜨거워진 피부가 맞닿은 채로 시작되는 어젯밤의 연장전. 몸의 세포가 전부 깨어난 새로운 오늘의 일이라기엔 좀….

세수하고 밥 먹고 이를 닦고 환기도 시키고 나면, 비로소 상대적 시간으로서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 모공이 좁아진 피부, 전신에 넘치는 에너지. 그런 오후에 페니스만 얌전할 리는 없을 텐데. 술에 취한 밤, 심신이 후들거리는 중에 욕망만 또렷할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어쨌든 몸에는 비슷한 전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랄까.

더러운 섹스야말로 궁극의 쾌락이라 믿는 쪽이라면 뭐든 눈에 띄고 꽤 민망할 수도 있는 밝은 날의 섹스가 썩 내키지 않겠지만, 한편으로 밤에 그렇게 갈망하던 것들을 자연스레 할 수 있지 않나? 희고 큰 (내) 셔츠를 입은 여자를 침대에서 만나는 일, 그야말로 섹스를 연상케 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서로가 내는 더 큰 소리를 그 안에 묻는 일, 수시로 현관문 밖으로 오가는 이웃의 목소리에서 오는 흥분, 그리고 그 모든 게 (혹시 불 켜면 안 되냐고 떼쓸 필요 없이) 선명하게 보이고 들리는 일. 혹은 최소한 술이 덜 깨 발기가 안 되면 어쩌나, 이러다 내일 우리가 서로를 기억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들로부터의 해방.

격정을 쏟아 붓고 끝내기엔 오후는 보통 느릿느릿 흐른다. 그러니 주체할 수 없이 돌진하기보다 천천히, 사정이라는 결승점의 익숙한 기쁨을 향해 달리기보다 일광욕을 하듯 중간중간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멈춰 있기도 하며. 그러다 잠깐 누워 다시 눈을 붙여도 여전히 오후인 지금은, 바야흐로 해가 쭉쭉 길어진 늦은 봄. 당장 뛰어나와 오늘 밤을 불태워야 한다는 친구들의 전화도 오지 않는 시간. 원래 그런 오후엔 대개 혼자였다. 어떤 식으로든 친밀하거나 호감이 있는 사이라면 그 즈음 전화를 걸어 “이따 술 마시자”고는 할 수 있어도, 불쑥 집으로 초대하는 건 미리 한 약속이 아니라면 무례한 일일 뿐이었다.

그렇게 전기난로처럼 서서히 열이 오르는 오후를 놓치고 싶지 않아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밤을 함께 보낸 상대와의 맛있는 점심은 통상 작별인사였으나, 이제는 글쎄. 휴일 낮에 여는 준수한 동네 식당을 찾는 대신 요리라도 배워야 할까? 더 느슨한 오후를 위한 ‘낮맥’에 어울리는 간단한 음식이라면 몇 가지쯤이야. 금세 달궈질 프라이팬은 많다.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레이터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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