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니느님이시여

2016.05.20유지성

여섯 경기에 나와 6승 무패. 선발 등판 전날, 두산 베어스의 더스틴 니퍼트를 잠실야구장 더그아웃에서 만났다.

생일(5월 6일) 축하한다. 이런 날의 훈련은 어떤가? 그냥 또 다른 평범한 날이다. 쌍둥이 동생한테 전화해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만 빼고. 작년 생일엔 선발로 나갔는데, 처음 이겨봤다. 그전까진 생일날마다 정말 못 던졌다.

매일 경기장에 나올 때 어떤 생각을 하나? 친구들을 만나러 오는 기분? 훈련과 경기는 제대로 하지만, 이게 일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처음 입단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야구는 결국 게임이다. 어떻게 이 운동장에 나와서 게임을 하는 게 직업처럼 느껴질 수 있나? 재미있을 뿐이다.

흔히 ‘고독하다’고 표현하는 마운드에 올라도 그런가? 마운드에선 좀 이상한 기분이다. 내가 못 던져도 계속 게임을 이어가야 하니까. 타자와의 승부를 즐기는 편이긴 하다. 홈런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 타석엔 내가 삼진을 잡을 수도 있고.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흥미롭다.

천상 야구선수인가? 경쟁을 워낙 좋아한다. 가끔 내 공이 별로일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상대를 아웃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그 기분이 있다.

내일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 전날은 주로 뭘 하나? 가볍게 몸을 풀고 공 몇 개 던져보는 정도. 5회쯤 지나면 미리 퇴근한다. 집에 가선 파스타를 먹는다.

파스타? 탄수화물을 섭취하면서 공 던질 에너지를 축적해야 하니까. 내일 점심도 파스타를 먹을 거다. 단백질은 과식하면 몸이 무거워질 수도 있다.

5일 혹은 4일 휴식 후 경기에 나선다. 그 사이에 완벽히 짜인 ‘루틴’이 있나? 최대한 똑같이 유지하려 애쓴다. 등판 간격마다 루틴을 반복한 것이 내가 성공한 큰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중 뭐라도 빠지면 다음 날 대번 몸이 달라진다. 기분도 별로고. 단, 원정 일정이 길면 계획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처럼 비가 와서 게임이 연기되면 어떤가? 야수는 매일 경기에 나가지만 투수는 경기가 취소되면 등판 일자가 바뀐다. ‘루틴’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하루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2~3일 연달아 비가 오면 그 기간을 통째로 잃는 느낌이다. 3일 넘게 미뤄지면 루틴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

벌써 6년 차. 웬만한 한국 선수보다 오래 뛰었다. 2014년엔 직접 투수조 미팅을 소집했다는 뉴스도 나왔고. 지금 니퍼트는 리더인가? 난 보컬 리더형 선수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성격이 못 된다. 미팅을 소집해도 의견을 제안하는 쪽이다. 이게 효과적이니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라고. 오랫동안 야구를 해왔으니 젊은 선수들에겐 그렇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좀 생겼다. 일단 나부터가 예전에 코치들이 막무가내로 명령하는 걸 안 좋아했다. 선수들의 몸과 마음은 전부 다르다. 다 같은 훈련을 받는 건 적절치 못하다.

프로농구 전자랜드의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포웰은 팀 전체 주장을 맡기도 했다. 투수조 조장 정도라면 어떤가? 거절할 거다. 만약 선수들이 나한테 뭘 묻고 싶은데 통역이 옆에 없으면 어떡하나? 그냥 다른 선수들이 내가 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쪽이 낫다.

이제 경기 중 포수와 얘기할 때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전혀 없나? 전혀. 난 한국어를 알아듣고, 중요한 얘기는 통역을 부른다. 난 종종 흥분하는데, 그럴 때마다 포수 양의지가 마운드로 올라와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만약 그가 날 진정시키지 않으면 난 혼자 상황을 이겨내려다가 완전히 터져버릴 거다.

니퍼트가 다혈질이라고? 마운드에선 감정을 최대한 감춘다. 폭발할 것 같으면 사람들이 없는 데로 잠깐 가서 표출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 투구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 끝내줄 때도 있지만, 완전히 얻어맞고 내려오는 기분 또한 투수가 겪어야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루틴이 중요하다. 준비부터 경기까지 계속 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기분으로 시즌을 치르는 거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다”란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GQ >는 얼마 전 “한국 프로야구에서 투수의 가치가 고평가되고 있다”라는 주제의 글을 실은 적이 있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흔들리지 않으면 팀 전체가 평온하다. 반면 기복이 심한 투수가 마운드에 있으면, 그 에너지가 타자들에게도 전달된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선발투수는 게임의 톤을 만든다. 우리 팀엔 다섯 명의 선발투수가 있다. 경기장 밖에서의 성격은 전부 다르지만, 경기할 때만은 모두가 정신적으로 똑같다고 느낀다. 이기기 위해 경기에 완전히 빠져든다. 그렇기 때문에 야수들이 타석에서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점수를 내면 곧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테니까.

지난해 포스트 시즌에선 26.2이닝 무실점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맹활약을 펼쳤지만, 정규 시즌에선 부진했다. 올해로 서른여섯. 부상도 있었던 터라 이번 시즌엔 니퍼트가 예전 같진 않을 거라는 전망도 꽤 있었다. 뉴스를 안 본다. 좋은 얘기야 상관없지만, 만약 나쁜 얘기가 나오면 그게 뭔지 알고 싶지 않다.

연봉 협상 때도 30만 달러 삭감을 받아들였다. 비슷한 얘기가 오가지 않았나? 지난 정규 시즌엔 정말 못 던졌다. 하지만 운동을 오래 하다 보면 한 번쯤 위기가 온다. 막바지에 건강을 회복한 이후 다 괜찮아졌다. 난 남들의 걱정엔 신경을 크게 안 쓴다.

그렇다면 달라진 것도 없나?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와신상담하며 뭔가 바꿨다거나. 모든 걸 매년 하던 그대로 똑같이 했다. 작년은 이미 지나갔고, 그 시기를 통해 많이 배웠을 뿐이다.

여섯 번 등판해 6승 무패. 두산 베어스에서 뛰기 시작한 이후 가장 좋은 페이스다. 팀은 1위를 달리고 있고. 팀원들이 잘하고 있는 거다. 6승 무패란 숫자는 그걸 의미하는데 왜 다들 나만 주목하는 건가?

스타가 필요하니까. 요즘은 마치 내가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된 기분이다. 동의할 수 없다. 동료들도 높이 평가했으면 좋겠다.

지금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건가? 우리 팀 최고의 선수? 물론이다.

니퍼트는 동료 선수들이 더그아웃 앞을 지나갈 때마다 농담을 건네며 크게 웃었다. 그러다 공을 손에 쥐자 이렇게 이를 꽉 깨물었다.

우려가 있다면 피안타율이 0.263으로 매우 좋은 편은 아니다. 대신 놀라운 페이스로 삼진을 잡으며 그 수치를 상쇄하고 있다. 둘은 상호 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으니까. 구위에 자신이 생긴 건가? 피안타율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는다. 아웃을 잡는 데만 집중한다. 땅볼이든, 플라이볼이든. 최대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집어넣으려 하기 때문에 피안타율이 높아진 것 같다.

잔루율 역시 87.3퍼센트로 낮은 편은 아니다. 주자가 나가면 주자가 없을 때와는 좀 다르게 던지나? 모든 투수가 주자가 나갔을 때 더 위력적인 공을 던질 것이다. 일부러 애쓴다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이미 그렇게 설계되어 있달까.

자기 세부 기록을 확인하는 편인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잭 그레인키는 자신의 세이버매트릭스 스탯을 줄줄 꿰고 있다고 한다. 상대할 타자들의 기록을 분석하기도 하고. 반면 거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정상급 투수도 많다. 어떻게 세이버매트릭스 기록을 취합하고 분석하는지 잘 모른다. 대신 말하고 싶은 건, 야구는 계속 뭔가를 조정해나가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투수라면 갑자기 어떤 구종이 흔들리는, 타자라면 이 투수의 공은 도저히 못 치겠다 싶은 날이 있다. 하지만 경기 중에 어떻게든 조정하며 (투수는) 아웃을 잡고 (타자는) 베이스로 나가야 한다.

매번 타자를 맞아 초구를 던질 땐 어떤 생각을 하나? 원 스트라이크.

그렇다면 승부구를 던질 땐 어떤가? 어떤 공이 타자와의 승부에서 마지막 공이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공을 믿고 찔러 넣는 수밖에 없다. 이번 공으로 삼진을 잡겠다거나 다음 공으로 승부를 봐야겠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베테랑이 되며 달라진 게 있나? 훈련이나 경기에서 요령이 생겼다거나. 난 아직도 베테랑 선수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난 이제 내가 어떤 투수인지 안다.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도.

외국인 투수 최초 100승이라는 목표는 어떤가? 현재 64승을 거뒀다. 그게 내가 계속 던지는 이유가 될 가능성은 없다. 그만둘 때가 되면, 내가 기록한 승패가 어떻든 기쁘기만 할 것 같다. 그리고 난 그 숫자가 내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니퍼트에게 마운드란 어떤 곳인가? 내 모든 것. 동료들, 형제들과 함께 경기를 하는 곳.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김참
    어시스턴트
    조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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