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김선욱, 임동혁, 지금 세 명의 피아니스트 – 2

김선욱은 다만 가벼워지고 싶은 순간을 억누르고 한 음 한 음 벽돌을 쌓아 베토벤의 성당이라는 건축을 완성해갔을 뿐이다.

피아니스트의 모래주머니

김선욱과 임동혁은 음악적으로 큰 대조를 이룬다. 임동혁의 음악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에스프레시보’다. 러시아 유학 시절, 그 추운 땅에서 자라고 배우는 동안 레프 나우모프에게 들은 말의 전부는 “에스프레시보, 에스프레시보 그또 에스프레시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린 제자가 피아노를 치면 스승은 옆에서 한 번 더 “에스프레시보”라고, 더 쥐어짜라고 했다. 덕분에 임동혁은 감정을 엄청나게 쥐어짜는 음악을 하게 됐다. 그는 타고난 직관, 유연함, 상상력, 집중력을 발휘해 악보에 담긴 감정을 한 방울, 한 방울 짜낸다. 그 과정이 놀랍도록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임동혁은 무서운 음악가다.

한편 김선욱의 음악은 ‘완벽’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완벽을 추구한다. 완벽을 추구해온 고된 과정이 김선욱의 연주에 그대로 드러난다. 바늘 하나 들어갈 구석이 없는 연주는, 그래서 가끔은 듣는 이마저 고되게 한다.

김선욱을 처음 만난 건 그의 나이 열일곱에 통영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서였다. 방금 리허설에서 들은 연주를 호평하자 “나는 다이내믹이 없다. 포르티시모부터 피아니시모까지 내야 할 소리는 너무도 다양한데 지금은 포르테와 피아노만 있는 것 같다”라며 서슴지 않고 자기 비판을 쏟아냈다.

“덩치 큰 사람이 무조건 때려 누른다고 큰 소리가 나는 게 아니죠. 사람에게는 기(氣)라는 게 있는데 그 기에 따라 전달되는 포르테의 양이 다릅니다. 제스처를 크게 작게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에요. 선생님들이나 다른 연주자들이 조언해주는 건 아주 간단해요. 더 크게 치고 더 작게 쳐라. 하지만 훨씬 복잡한 문제잖아요. 깊은 포르테도 있고 세게 때려서 내는 피아노도 있어요. 그 기준을 의식 속에 정해놓아야 나중에 무의식적으로 터치를 해도 원하는 소리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모든 연주 방식을 꼼꼼히 탐구해야죠.”

다이내믹 하나를 두고 긴 고민을 쏟아내는 소년의 눈빛은, 내 눈에 그건 열일곱의 눈빛이 아니었다. 나는 엉뚱한 뚝심 하나가 생겼다.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도 여유롭게, 끝없는 고민 속에 피아노를 만지는 그가 언젠가 커다란 흐름을 몰고 올 것이며, 그 폭풍이 지나고 나서 몰라보게 성장한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우리 나이 딱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다시 김선욱을 만났다. 그는 첫인사를 건넸다. “1년 2개월 만이네요. 그때 말고 제 연주 보러 온 적 없죠?”

스무 살이 되는 해, 우리는 뚝딱하고 10대에서 20대가 돼버리는 걸까. 진짜 어른이 되는 걸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깜짝 상자를 앞에 둔 것처럼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내게 스무 살 김선욱은 말했다. “그냥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를 뿐이에요.” ‘하루’는 사람마다 다른, 꽤나 상대적인 개념일지도 모른다. 완벽주의자이자 연습광인 김선욱의 하루는 나의 하루와 다르고, 마찬가지로 그와 내가 인지하는 어제와 오늘의 차이도 다르다.

성향에 걸맞게 김선욱은 오랫동안 베토벤에 집중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2년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을 완주했다. 베토벤을 향한 열정은 음반으로도 남았다.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한 협주곡 5번 ‘황제’를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했고, 최근엔 독일 아첸투스 레이블에서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하머크라비어’를 선보였다.

사실 베토벤에 대한 김선욱의 오랜 천착은 그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진다. 피아니스트가 평생의 직업이 될 줄 알았던 나의 어린 시절에 베토벤 소나타는 공포였다. 선생님이 내린 과제였고, 가끔씩 내신 등급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느리고 감상적인 2악장을 무척이나 쳐보고 싶었지만, 1악장 재현부가 시작되기 전에 손은 건반을 떠나 다시 처음으로 악보를 넘겨야만 했다. 빠르고 손쉽게 학생의 기교를 평가하는 ‘편의’를 위해, 예술학교는 학생들에게 빠른 작품, 빠른 악장만을 강요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심지어 서른 즈음에야 베토벤의 음악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십수 년을 ‘왜’라는 궁금증을 안고 살았다. 언젠가 소아정신과 전문의이자 베토벤 연구가인 조수철 교수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베토벤 트라우마’에 대한 이유부터 물었다. 그의 답변을 옮겨본다.

“베토벤 음악을 논할 때 음악적 사고(Musical Thinking)라는 표현을 쓰죠. 음악은 사실 필링, 느낌인데 베토벤을 얘기할 때는 꼭 ‘생각’이란 말을 써요. 베토벤의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한 게 27~28세 즈음이니까, 거의 모든 유명한 작품은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썼다고 보면 맞아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베토벤이 취한 방법이 독서. 엄청난 독서광이었죠. 그리스 로마 신화·셰익스피어·칸트·헤겔을 읽으면서 음악적 아이디어를 얻었으니 그 작곡 과정이 얼마나 복잡했겠어요. 모차르트가 감각으로 작곡했다면 베토벤은 사고를 통해 곡을 썼고, 그 프로세스가 작품을 통해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러니 가벼운 걸 좋아하는 마음과는 그 음악이 맞지 않을 수도 있죠.”

‘가벼운 걸 좋아하는 마음’. 김선욱에게 그런 마음이 없을까, 없었을까? 알파고가 아니고서야 그럴 까닭이 없다. 다만 가벼워지고 싶은 순간을 억누르고 한 음 한 음, 벽돌을 쌓아 베토벤의 성당이라는 건축을 완성해갔을 뿐이다.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기사를 최근에 읽은 적 있다. 동료 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김선욱을 인터뷰한 것인데, 느긋이 몸을 뒤로 누이고 글을 읽던 나는 이 대목에서 빨간 펜을 들고 밑줄을 쭉 쳤다.

“죽으면 묘비에 ‘부점 연습하다 세상을 떠나다’라고 써야 할 것 같다.”

‘부점’에는 별표 세 개를 그렸다. 세계적으로도 제법 이름난 피아니스트가 종일, 전곡의 모든 음표를 부점으로 연습한다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100미터 육상 선수가 보다 정확한 달리기 자세를 위해 100미터를 슬로모션으로 달리는 셈이다?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보다 아름다운 스파이럴을 위해 치켜든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연습을 하는 셈이다? 정확한 비유일 수는 없지만, 대략은 그렇다. 부점 연습은 서로 붙어 있는 두 음의 앞쪽 음표에 부점을 찍어 1:1이었던 두 음의 길이를 3:1 혹은 2:1 비율로 바꿔 연습하는 것이다. 앞의 음은 길게, 뒤의 음은 짧게. 상대적으로 강한 박에 힘이 붙는 연습 방법인데, 악보 위 그 어떤 음표도 허투루 흘려버리는 일이없게 한다. 하지만 피로도는 상당하다. 세계 명산에 오를 수 있는 근력을 위해, 한쪽 다리에만 모래주머니를 차고 절뚝거리며 동네 뒷산을 종일 오르내리는 셈이다. 김선욱의 음악은 그렇게 힘겹게 완성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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