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조성진, 김선욱, 임동혁, 지금 세 명의 피아니스트 – 3

2016.06.10GQ

작년 쇼팽 콩쿠르에서, 조성진 소리의 첫인상은 차갑고 옹골찼다. 이어지는 연주는 거침없었다.

예측 불허의 흐름

지난해 10월 21일, 제17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발표됐다. 2005년 라파우 블레하치, 2010년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에 이은 5년 만의 스타 탄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우승은 조성진에게로 돌아갔다. 쇼팽 콩쿠르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우승자였다.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한국의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공연 기획사가 대회 입상자들이 참여하는 갈라 콘서트 개최 소식을 알렸다. 예매 시스템 서버가 마비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드문 해프닝이 벌어진 뒤 공연 티켓은 한 시간 만에 전석 매진됐다.

1994년생인 조성진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에서 공부했다.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2009년 일본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며 전 세계 음악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2014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에 오르며 꾸준히 그 성장을 증명했다. 사실 조성진의 서울예고 입학 직후부터, 그가 졸업 후 어떤 선택을 할지는 국내 음악계의 큰 관심사였다. 서울대 음대를 갈 것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갈 것인가. 어른들은 늘 그걸 궁금해했다. 그리고 소년은 선택했다. 파리를.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봤지만 얘기가 다 달랐어요. 그러니 조언을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요. 차이콥스키 콩쿠르 끝나고 유학 때문에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진짜 몇 달간 인터넷만 한 것 같아요. 근데 파리 고등음악원 홈페이지에 들어간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맑은 느낌이 들었어요. 여기로 가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뭐가 터졌어요. 피아노 교수만 열 명. 아무한테나 배워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고집이 센 편이라 누가 뭐라 해도 영향을 크게 받진 않아요. 신수정 선생님께 배울 때도, 제가 싫으면 절대 안 했어요.”

2013년에는 조성진을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 나이로 스물이 됐고, 파리로 떠난 후였다. “물가 비싸고 언어 어려운 것 말고는 파리 생활에 정말 만족해요. 새롭고 재미있어요. 성격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겁이 없어졌다 할까요. 전에는 약간 낯을 가렸는데, 이제 저는 편하고 상대는 좀 불편한 그런.” 소년은 어느새 청년이 되어 있었지만, 차갑게 반짝이던 눈빛만은 여전했다. 대화 사이사이에 유머인지 도발인지 모를 문장들이 간간히 등장했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열의와 달관이 묘하게 섞인 작은 용광로가 자리 잡고 있을 것만 같았다.

조성진의 말하는 방식은 그의 연주와 닮았다. ‘의외성’은 조성진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평범한 흐름 속에 툭 하고 불거지는 유머와 도발은 연주에서도 나타난다.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앞서 소개한 한 시간 만에 전석 매진된 음악회에서 오랜만에 조성진의 연주를 들었다. 연주가 참 좋아서, 순간적으로 콘서트홀을 떠나 나만의 세상 안에서 아주 멀리 갔다 돌아올 때가 있다. 딱히 구체적인 상황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 같은 곳으로의 여행이다. 반대로 ‘저 피아니스트는 지금 무슨 생각일까’라는 궁금증에 내내 사로잡힐 때가 있다. 관객 입장에서, 자신에 대한 집중 혹은 타인에 대한 집중이라는 극과 극의 경험이다. 이 날 입상자 갈라 콘서트에서 샤를 리샤를 아믈 랭(2위 수상자)은 전자, 조성진은 후자였다.

아믈랭의 쇼팽 소나타 3번에서 특히 왼손이 돋보였는데, 주요음 사이를 포근히 채우는 조밀한 음형들과 내성, 모든 음을 부드럽게 감싸는 저음으로 음악은 섬세하게 완성되어갔다. 그 섬세한 유기체의 흐름은 매우 탄탄했다. 서사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 덕에, 가끔씩 코끝을 붉혀가며 먼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성진 소리의 첫인상은 차갑고 옹골찼다. 이어지는 연주는 거침없었고, 쇼팽 협주곡 1번 몇몇 대목에서 뻔히 예상되는 신파도 없었다. 대신 곳곳에 숨겨진 의외성과 마주해야 했다.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대목은 2악장 말미,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노래를 시작 하기 전 고요 속에서 피아노 솔로가 고음의 화음을 뚝뚝 떨구며 내려올 때. 시종일관 요즘 말로 ‘쿨내 진동’하던 연주였기에 그 쓸쓸한 멈칫 거림이 이례적으로 들렸나 보다. 앙코르로 연주한 ‘영웅 폴로네즈’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다. 영웅의 주제가 포르티시모로 마지막으로 등장하기 직전까지 꽤 오래 이어지는 16분 음표의 쓸쓸한 노래를 그렇게 작게, 들을 테면 들으라지 싶을 정도로 작게 연주하는 것 또한 의외였다. 이런 식으로 잊을 만하면 자꾸 훅훅 들어오니, 잠시라도 딴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조성진은 ‘내 갈 길 간다’며 걸었으나 혼자 걷지 않았다.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2천 명을 끝까지 끌고 갔다. 엄청난 집중력과 전략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쇼팽 콩쿠르 우승이 불러일으킨 이른바 ‘조성진 효과’가 얼마나 유지되고 확장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 클래식 음악 산업의 내수시장이 너무 작다. 산업 활성화에 꼭 필요한 매출액 통계, 관람객 분석 등에도 불명확한 부분이 적지 않다. 어느 젊은 여성 피아니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억울한 건 다른 게 아니라, 한국에는 ‘음악하는 사람들’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시장도, 음악을 제대로 다루는 매체도, 소비자와 공급자도 부족하다.”

피아노 한 대와 한 사람. 이 단출한 조합을 두고 이런저런 상업적인 기획과 포장이 물론 가능하지만 한계 또한 분명히 있다. 결국은 다시 피아노 한 대와 한 사람만 남게 마련이다. 앞서 소개한 세 명의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선욱, 조성진은 여러 경험을 통해 이러한 생리를 일찍이 터득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듣고 바라보면 된다. 그중 누군가의 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라면 과감히 뒤돌아서도 좋다. 다만 그들의 뜨고 짐이 한때의 피상적인 현상일 뿐임을 인지하고 있으면 된다. 음악가들은 언제나 그 곳에 공존한다. 다만 누군가 크게 떠드는 소리에 잠시 가려질 뿐이다.

    에디터
    글 / 박용완(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일러스트레이터
    홍승원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