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누구든 나에게 오라

사람들은 터키 전역에 어디와도 견줄 수 없는 그리스 로마, 비잔틴 제국의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까? 중동을 넘어 유럽 전체를 상징할 만한 소아시아의 고대 유적들이 모든 문명의 지층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시데 반도의 끝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아폴론 신전. 다섯 기둥의 아름다움은 결코 형언할 수 없다.

식빵처럼 소복한 모자와 봄눈처럼 흰 요리사 복의 셰프가 직접 커피를 따라주는 순간, 터키를 여행한다는 무언의 두려움은 천진한 동화로 변했다. 접대는 의무이자 순수한 예술이란 터키의 전통이 터키 항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면 좀 순진한가? 손님을 녹다운시키는 중국식관 또 달랐다.

동쪽 혹은 서쪽? 아시아 또는 유럽? 터키는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터키가 복잡한 정체성 문제와 오랜 기간 묶여 있던 정치적 모순들을 풀어내기 위해 서둘러 변모하는 사이,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은 이 나라가 길고도 아름다운 과거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있었다.

지중해와 면한 서쪽 해안으로 밀려드는 따뜻한 바닷물은 수세기 동안 동서양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 연중 8개월이 온화한, 망고 셔벗 색깔이 나는 안탈리아 일대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들 중 하나”라고 찬탄한 건 14세기 아랍 여행객만이 아니다. 이윽고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고 적극적 개방을 위한 터전으로서 터키의 관광 육성책은 안탈리아 지역에서 불이 붙었다.

안탈리아 항구의 성벽 아래 요트와 작은 배들이 떠 있다. 연중 8개월이 온화한 지중해에서.

안탈리아에는 문명의 시작과 관련된 특별히 우아한 유적들이 있다. 공무원들이 정한 ‘역사적 구역’은 어느 장소에 제한되지 않았다. 페르게 가는 길. 눈이 산등성이를 덮은 토러스 산은 미지의 흰개미집 같았다. 도로가 계곡과 교차하는 목초지에는 염소가 풀을 뜯고, 목재를 실은 트럭이 무화과 나무 사잇길로 지나갔다. 구름바다와 먼지와 풀밭 위에 고대 페르게의 스타디움이 보였다. 도시의 생애는 지붕을 버리고 길바닥에 붙은 돌에서 목격된다. 모래와 벽으로 둘러싸인 채 밑동까지 흔들린 ‘로마의 문’ 은 페르게를 점거했던 지난 왕국들과 전쟁의 추억을 상기시켰다. 트로이 전쟁 후 그리스인이 지은 망루와 목욕탕을 지나자 그때의 신전 자리에 깨진 돌들이 사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주로 남은 아고라. 푸줏간인지 생선 가게인지 소와 게의 형상으로 표시한 부조엔 BC 2세기 시장의 소요가 그대로 감촉되었다. 유물을 발굴하는 인부들은 무너진 축대에 앉아 번호가 새겨진 돌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페르게는 흩어진 폐허가 아니었다. 확장과 수축, 건설과 붕괴, 지배와 귀속을 반복하며 고무처럼 살아 있었다. 쌍둥이 나사처럼 땅에 박힌 붉은 성문 앞에 서니 망가진 석관에 기댄 염소지기, 일몰을 바라보는 소작농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2세기에 지어진 채 석축만 남은 수로 사이의 길은 벨키스 마을이 고대 아스펜도스 위에 어떻게 형성됐는지 말해주었다. 타우루스 산에서 물을 운반해온 아스펜도스 수로는 로마 공학의 산물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재위 시절 세워진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은 무수한 전쟁과 재해 속에서 2500년을 견디고 일대 다른 유적들보다 월등한 생존율로 살아남았다. 지금도 오페라 무대로 쓰이는 온전한 웅장함을 대하니 도대체 아드레날린이 가라앉지 않았다. 객석 위 아치형 통로에 서서 빛이 꺾여 서늘해진 무대를 내려다 보았다. 파마 머리 여자가 코트를 망토처럼 펼쳤다. 그녀 목소리는 대리석 기둥과 역암 주춧돌에 부딪쳐 파장을 그렸다. 누가 터키의 혁명적 시인 히크메트의 시를 낭독해주었으면…. 객석은 건축 당시의 재료와 흡사한 코르쿠텔리산 석회암으로 부분 복원돼 있었다. 저 홀로 튀는 베이지색만이 오직 거슬렸다.

 

스토리텔링은 터키에서 수십 세기를 살아남은 예술이다. 소아시아 고대 도시들에서 호머가 태어났고, 알렉산더의 야망이 막을 내렸으며, 요한이 마리아의 마지막 날들을 지켰고, 산타클로스의 우화가 시작되었다. 옛 히타이트의 거점지, 시데에선 클레오파트라가 정부情夫 안토니우스를 만났다. 터키에서 가장 강렬한 고대 도시는 그리스 올림픽이 열릴 만큼 흥했으나 마케도니아 점령하에 무너졌다. 카페와 신발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로 북적대는 바르바로스 거리를 빠져나오자 환한 세상으로 나온 것 같았다. 아폴로 신전에서 감각은 절정에 다다랐다. 신전의 파노라마가 펼쳐진 바다를 거닐지 않고는 시데에 가봤다고 할 수 없다. 내부에서 솟아난 듯한 기둥 다섯 개는 지붕 없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 기이한 아름다움은 로마의 강력한 동맹국 페르가뭄의 위상을 톡톡히 높여주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다섯 개의 기둥은 다섯 개의 현이 되었다. 이른 봄의 햇빛과 나뭇가지로 반짝거리는 석류의 땅은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시데는 시적인 동시에 사적인 곳이라서.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히에라폴리스, 라오디키아…. 모든 문명이 헬레니즘으로 축약된 터키의 고대 도시엔 원형극장과 목욕탕과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라는 일관된 패턴이 있었다. 각각의 도시는 시각적 이미지를 조화시킬 줄 아는 행복한 재능을 가졌으나 항구가 모래에 쓸리듯 서서히 저물었다. 터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역사의 층이 서로 붙어 있는 방식이었다. 로마 시대 돌 조각이 7세기의 성당에 붙어 있거나, 신전 처마의 한 부분이 모스크의 뾰족탑에서 발견되는 식의. 터키의 고대 도시엔 이상한 특징이 있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달리 그 장엄함은 문을 열기 전까진 다 드러내지 않았다. 지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같았다. 사람들은 터키 전역에 그리스 로마, 비잔틴 제국의 기절할 것 같은 유적이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2세기에 지은 구조물이 지금도 오페라와 발레의 무대로 쓰인다. 절정의 로마 공학 기술을 원 없이 보여준다.

파묵 칼레로 가는 휴게소에서 터키 커피를 마셨다. 다른 나라의 커피는 국가의 취향에 맞춰 나오지만 터키는 커피의 향 자체를 마신다. 17세기 콘스탄티노플에 이미 커피 하우스가 생긴 나라만큼 커피 마시기에 좋은 곳은 없다. 터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나 이상하게 영혼을 되찾은 기분이 들게 하니까. 공기를 타고 예배 드리는 아잔 소리가 들릴 때 사람들은 옅은 미소와 짧은 언어로 이야기했다. 터키에선 낯선 이의 다정함 때문에 자주 웃었다. 바람이 대추나무 사이로 불고, 도시는 세피아 물감처럼 물들었다. 안탈리아로 돌아와 하드리안 문으로 들어서니 셀주크 투르크 때부터 이어진 이슬람의 냄새가 온통 가득했다. 부겐빌레아 꽃이 아치를 만드는 오후에 뒷골목을 걸을 땐 마호메트 시대에 온 듯 혼란스러웠다. 월계수 뜰과 타일 바닥, 오토만 가구와 발코니가 불쑥 튀어나온 주택은 하나의 전시 같았다. 거리에선 얇게 썰린 멜론 향이 났고, 먼지는 금과 같았다. 모든 것이 겹겹의 지층 위에 쌓여 있었다. 래그넘 카리야 리조트 로비에서, 터키시 딜라이트를 권하던 자둣빛 피부의 미녀는 오토만 제국이 한때 헝가리까지 장악했다는 사실을, 천국 같은 다른 처녀의 타투 부적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을, 즉 터키는 중앙아시아 유목 부족과 무관하지 않음을 환기시켰다. 이민족의 이슬람 개종에 유연했던 오토만 제국의 민족 시스템이 새삼 장엄하고 경이로웠다.

 

한때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렸고 그 이전에는 비잔티움이었던 이곳은 지금의 이스탄불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페리호가 마르마라 해에 춤추듯 떠 있는 화물선 옆으로 지나갔다. 화물선 소리는 페리의 유서 깊은 고동 소리에 비해 거칠지만, 터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물길을 따라 화물을 실어 날랐다. 나와 같은 곳에 서서 새로 들어설 궁전을 구상하던 마호메트의 눈엔 삼림 지대가 끝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비잔틴과 오토만 시대가 누린 전성기를 상상해봐도 보이는 건 부상하는 도시의 왁자함이었다. 하렘의 판타지를 사고파는 스파이스 바자르에서 비단 베일과 우주의 모든 향신료와 색깔별로 진열된 푸른 그릇을 보며 중동의 석유 위기 당시, 전기가 끊긴 바자르를 상상했다. 휴대용 기름 전등을 들고 추위에 떨며 이 안을 거닐었을 사람들을. 그 자욱한 멜랑콜리를. 다이오드 불빛이 화려한 보스포러스 다리와 조명이 비추는 모스크를 보니 이미 펼쳐진 미래에서 역사를 품은 현재로 돌아온 듯했다. 미래는 더 흥미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이며, 큰 부분 아시아에 속해 있고, 남겨진 개발 이슈라는 논란을 딛고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서양이란 단어에 함유된 유대적 체계는 흔들리지 않을까. 소아시아의 고대 유적들은 중동을 넘어 단숨에 유럽 전체를 상징하게 되지 않을까. 상냥한 다변가인 터키인 가이드가 말했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뉴욕이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 노래했어요. 아뇨. 이스탄불이야말로 잠들지 않는 도시죠.” 회전하는 데르비시의 리듬이 온몸에 퍼졌다. 금각만에 옅은 안개가 걸쳐 있었다. 평생을 이스탄불 시민으로 산 오르한 파묵의 ‘비애’에 형태가 있었다면 저런 모습일까. 지난 몇 년간 터키가 현대화 시기를 거쳤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층 유리 빌딩과 포시즌 호텔과 기중기를 보니 도저히 파묵의 슬픈 감정에 공감할 수 없었다. 과거 이스탄불은 너무나 화려했지만 지금 이스탄불 역시 그만한 매력을 지녔다. 끝없이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도시. 심장의 욕망을 담은 도시. 세상 모든 이를 받아주는 어머니 같은 도시. 이스탄불은 두 대륙 사이에서 주저하는 대신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밤의 블루 모스크. 보석보다 별보다 찬란한 터키 문명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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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