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통 터보 엔진을 얹은 포르쉐 박스터

도대체 포르쉐 718 박스터에 4기통 터보 엔진을 선택한 이유가 뭔지, 그게 얼마나 끝내주는 선택이었는지. 아직은 모른다.

비가 오지 않길 바란 아침이었다. 어젯밤, 리스본 하늘은 공항에서부터 흐렸다. 호텔로 가는 차창 밖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인터콘티넨탈 에스토릴 호텔 정문 앞에는 이미 포르쉐 718 박스터 몇 대가 도열해 있었다. 로비는 들떠 있었다. 기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물안개처럼 웅웅거렸다. 거의 모든 게 낯설다고 느낄 때, 밖에서 생전 처음 보는 포르쉐가 “카앙!”, 큰 소리를 냈다.

이런 소리 앞에서, 누구도 포르쉐 박스터를 무시할 순 없다. 포르쉐에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차라고 업수이 여겨서도 안 된다. 트랙에서 승패를 겨룰 게 아니라면 박스터와 카이맨, 911과 파나메라는 그 목적과 취향에 따른 분류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제원 성능의 차이를 백 번 인정하고라도, 어떤 포르쉐가 선사할 수 있는 쾌락의 끝이 다른 포르쉐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각각의 매력이 분명하니까, 그들끼리 하는 비교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포르쉐 박스터가 포루투갈 리스본, 인터콘티넨탈 에스토릴 호텔 정문 앞에서 낸 날카로운 소리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718 박스터를 의심해선 안 된다는 선언 같기도 했다.

의견은 분분할 수 있다. 너무 단호하게 바뀌었으니까. 포르쉐는 이번에 출시한 718 박스터에 2리터 수평대항 4기통 엔진과 2.5리터 수평대항 4기통 엔진을 썼다. 전통이자 고집이었던 6기통을 포기했다. 6기통에서 4기통으로 바뀐 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박스터에는 3리터 혹은 3.5리터 수평대항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썼다. 718 박스터는 거기서 ‘수평대항’만 빼고 다 바꿨다.

엔진은 3리터 혹은 3.5리터에서 2리터 혹은 2.5리터로 작아졌다. 6기통은 4기통으로 줄어들었다. 자연흡기는 터보로 바뀌었다. 엔진의 덩치를 줄이고 터보를 힘과 효율을 높이는, 이른바 ‘다운사이징’ 흐름에 제대로 응답한 박스터의 출연인 셈이다.

이렇게 새로운 박스터에 포르쉐는 718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0~1960년대, 포르쉐에 1천여 회 이상의 승리를 안겨준 바로 그 스파이더의 이름도 718이었다. 역시 소형 4기통 수평대항 엔진을 쓰는 모델이었다. 당시 레이스에서 가장 작은 엔진이었다. 하지만 그 가벼움과 핸들링, 엔진의 내구성과 강력한 섀시로 우승을 거듭했다. 영광과 전설의 시작이기도 했다. 역사는 이런 식으로 고리를 찾고, 전통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의지와 실력만 있다면.

포르쉐의 의지와 실력을 가늠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 시동을 거는 순간 갑자기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대결에 가깝다. 애꿎은 도로에서 누구보다 빨리 달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가진 포르쉐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차의 한계와 내 실력 사이를 끊임없이 가늠하면서 꾸준히 최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의 연구에 가까운 자세로. 그 과정에 포르쉐가 선 사하는 차진 재미가 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도,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운전석에 앉은 그 사람, 결국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이전 박스터도 그런 차였다. 거의 궁극의 쾌락을 추구할 수 있었다. 앞 차와의 간격을 거의 전화번호부 한 권 정도의 두께만 남기고 추격하다가, 아주 가벼운 핸들링으로 날렵하게 차선을 넘나들 수 있었다. 어떤 각도의 코너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았다. 박스터를 믿고 투신하듯 운전 할 수 있었다. 성능 제원의 차이를 근거 삼아 “포르쉐는 역시 911이지”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박스터는 좀 다른 차라고 설득할 수 있었다. 박스터의 움직임은 결벽에 가까웠다. 늘 새벽처럼 깔끔했다.

포루투갈 리스본에서, 포르쉐 718 박스터도 그랬다. 우리는 하늘이 잔뜩 흐릴 때 출발했다. 고민 없이 지붕을 열었다. 이 천 지붕을 열 수 있다는 점이 박스터를 유일하게 만드니까. 게다가 박스터의 본질에 접근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스터는 영어로 ‘Boxster’라고 쓴다. 포르쉐 엔진의 상징인 박서 엔진에서 ‘BOX’ 를 따고, 지붕을 열고 두 명이 탈 수 있는 장르의 자동차를 의마하는 로드스터Roadster에서 ‘STER’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본질대로 지붕을 열고 리스본 시내와 마을 외곽을 관통했다. 고속도로가 나왔을 땐 아무것도 참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길이었으니까, 여기서 말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렸다. 그러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는데, 그래도 속도를 줄이거나 지붕을 닫지 않았다. 우리는 빗방울을 들추면서 달리는 것 같았다. 아무도 젖지 않았고, 오히려 차창에 떨어진 빗방울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기세였다. 앞 유리가 누운 각도에 속도를 더하면, 빗방울이 실내로 들이칠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그러다 맞는 몇 방울은 다만 청량했다.

포르쉐 718 박스터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9초. 론치 컨트롤을 쓰면 0.2초 빨라진다. 박스터 S의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은 4.4초, 론치 컨트롤을 쓰면 역시 0.2초를 단축할 수 있다. 사람 몸의 대부분은 물이고, 자동차가 사람 몸에 가할 수 있는 중력 가속도가 혈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체험할 수 있는 속도다. 가속페달을 밟고 힘을 주는 순간 발바닥에서 시 작된 피돌기가 하체를 타고 올라오다 배를 간질이고 나서 결국 머리를 땅,하고 때리는 느낌. 순간의 어지러움과 동시에 좁아지는 시야, 세상에 길과 나와 포르쉐밖에 없는 것 같은 몽롱 함. 누군가는 이 순간에 포르쉐 718 박스터를 꿈의 영역에 넣어둘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강렬하고 중독적이라서. 이 속도로 지붕을 열고 달릴 수 있는 차는 절대로 흔하지 않다.

빗방울이 주체할 수 없이 굵어진 마을 어귀, 고속도로에서처럼 달릴 수 없는 길에 접어 들어서야 지붕을 닫았다. 목적지인 공군기지엔 슬라럼, 가속, 브레이킹, 급차선 변경 등의 코스가 마련돼 있었지만 페이스를 줄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장마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슬라럼에서는 시속 70킬로미터 정도, 급차선 변경에서는 80킬로미터 정도로 시험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각각 시속 85킬로미터, 시속 120킬로미터까지 페이스를 올릴 수 있는 구간 이었다. 궂은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포르쉐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대신, 718 박스터를 통해 포르쉐가 달성한 것들은 제원 수치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엔진 크기를 줄이고 터보를 선택하면서 이전 박스터보다 최고출력은 35마력, 연비는 13퍼센트 상승했다. 자연흡기 엔진의 자연스러운 가속, 물이 끓는 듯한 흥분을 추억하는 포르쉐 팬들의 아쉬움은 정확하게 개선된 성능으로 달랠 수 있을 것이다.

“포르쉐 내부에서는 6기통, 자연흡기 같은 전통을 버리는 데 고민이 없었어?”

“우리 목표는 딱 하나, 아니 둘이야. 포르쉐임을 포기하지 않을 것, 이전 모델보다 더 나은 차를 만들 것. 718 타봤지? 너무 좋지? 더 빠르고 더 민첩하지?”

저녁 식사가 한창이었던 테이블에서, 718 박스터 개발에 참여한 포르쉐 스태프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실제로 718 박스터의 터보 엔진은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어떤 구간에서나 조금 더 큰 힘으로 달려 나갈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았다. 718 박스터는 스포츠 혹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터보 차저를 미리 조절해 힘을 비축해둔다. 거의 모든 순간에 최상의 응답성을 유지하도록 했고, 그들의 이론과 운전석에서의 실제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혹시 그런 얘기 들어봤어? 기자들끼리 하는 얘긴데, 포르쉐는 외계인이 만드는 거라고. 슈투트가르트(포르쉐 본사와 공장이 있는 도시)에는 외계인 합숙소도 있다며?.”

“그래? 처음 들어.”

“포르쉐 직원들이 외계인을 고문해서 기술 개발에 활용한다는 얘기야.”

“아, 그거? 응, 맞는 얘기야. 우리가 고문은 하거든. 하하하.”

다 같이 웃은 저녁 식사 테이블과 718 박스터의 운전석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을까? 이렇게 온화하게 웃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면도날 같은 차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고집스럽게 지켜가고 있는 전통과 시간이 그렇게 흐르는데도 흔들림 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실력은? 또 하나, 718 박스터를 운전할 땐 핸들에 있는 작은 다이얼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어쩌면 가장 짜릿하게, 718 박스터를 둘러 싼 모든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마법 같은 버튼이 거기 있다.

핸들 오른쪽 아래,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다이얼이 있다. 다이얼 가운데에 핸들을 쥔 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누를 수 있는 동그라미가 있다. 어쩌면 718 박스터의 가장 짜릿한 순간을 만끽하기 위한 작은 벨처럼 느껴지는 버튼을 눌렀을 때 활성화되는 비밀스러운 기능에 포르쉐는 ‘스포츠 리스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버튼을 누르면 약 20초 동안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응답성을 최고치까지 끌어올린다. 터보 차저의 압력을 최대치로 유지하면서, 운전자가 원하는 모든 순간에 다시 한 번 최대치의 힘을 낼 수 있도록 718 박스터를 흥분시키는 버튼이다. 누군가를 절박하게 추월해야 하는 고속도로에서나 모처럼 주말에 찾은 트랙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능이다. 어렸을 때 하던 레이싱 게임 같기도 하고, < 분노의 질주 > 같은 영화에서 보던 드래그 레이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배기구에서 불을 뿜는 건 아니라도.

버튼을 누르는 순간 분노하는 것 같은 엔진, 가속페달에 실리는 오른발의 무게에 따라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시야의 각도, 앞서 달리던 차가 오른쪽 혹은 왼쪽 사이드미러에 점으로 사라지는 걸 관조하듯 보는 경험 같은 것. 이렇게 달리는데 6기통과 4기통이 무슨 상관이지? 3.0리터가 2.5리터로, 2.5리터는 2.0리터로 바뀌었는데 그래서 뭐가 걱정이라는 거지? 자연흡기 대신 터보를 썼는데 그래서 뭐? 지붕을 열고, 이 바람을 느끼면서, 다만 무책임하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냥 이대로 고속도로를 지나면 산길을 달리고 싶었던 것이다. 산길에서 내려오면 다시 고속도로를,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해안도로를, 몸이 지칠 때쯤 집으로 향하는 한적한 길을.

다시 리스본에 있는 호텔로 돌아왔을 때,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몸이 알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피로라면 얼마든지 좋을 것 같았다. 포르쉐는 이렇게 의연하고 또렷하게 다시 한 번 진보했다. 718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하나의 장르가 될 것이다. 6월에는 한국에서도 포르쉐 718 박스터를 살 수 있다.

 

 

HISTORY

FRONT
SIDE
BACK

포르쉐가 4기통 박서 엔진을 쓴 건 낯선 일이 아니다. 1953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포르쉐에 무수한 우승을 안겨준 바로 이 모델의 이름이 718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기술은 진보했다. 변하는 것을 진보로, 변하지 않는 것을 철학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포르쉐라면 더욱 그렇다. 보다시피, 지금 가장 새로운 718 박스터의 핵심 디자인 요소는 모두 역사로부터 비롯되었다.

 

 

ROOFTOP OPENING

포르쉐 718 박스터의 천 지붕 구조는 유난히 간결하고 구조적이다. 열고 닫는 속도도 상상보다 훨씬 민첩하다. 이 천 지붕의 존재감만으로도 포르쉐 718 박스터가 유일해진다. 성능과 쾌락, 포르쉐의 모든 상징에 사뿐하게 낭만을 얹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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