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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VS. 알파고, 그 이후

2016.06.22GQ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인간은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와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

해설자들이 서울에서 열린 인간과 AI의 제2국을 재연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이세돌과 알파고의 제2국. 아자황이 검은 돌들이 담긴 통에 손을 넣었다. 금테 안경을 쓴 그는 판에 돌 하나를 놓았다. 거의 텅 빈 곳이다. 바둑 용어로는 ‘어깨 짚기’라고 한다. 달랑 하나 놓여 있는 흰 돌의 왼쪽 아래.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곳들과는 동떨어진 위치다. 맞은편에 앉은 현존하는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이 얼어붙었다. 그는 바둑판 위에 놓인 37개의 돌들을 훑어본 다음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몇십 미터 떨어진 중계실에는 마이클 레드몬드 9단이 온라인으로 대국을 시청하고 있는 2백만 명 가까운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게 좋은 수인지 나쁜 수 인지 모르겠습니다.” 몇 분 후 이세돌이 방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았지만, 흰 돌 통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총 15분이 지났다. 마침내 이세돌은 돌을 집어 판에 놓았다. 아자황이 놓은 검은 돌 바로 위였다. 아자황이 놓은 검은 돌은 37번째 수에 불과했으나, 이세돌은 그 수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4시간 20분 후 이세돌은 돌을 던졌다. 그러나 이 게임의 승자는 아자황이 아니었다. 대국이 열린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그는 모니터에 떠오르는 지시 사항에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전 세계 구글 데이터 센터에 있는 컴퓨터 수백 대가 연결되어 시합을 치렀다. 아자황은 그저 ‘손’에 불과했다. 게임을 지배한 두뇌는 인공지능 알파고였다. 인간이 만든 게임 중 아마도 가장 복잡한 게임인 바둑에서, 알파고는 최고의 기사를 이기고 있었다.

같은 방에서 대국을 지켜보는 다른 바둑 전문가가 있었다. 유럽 바둑 챔피언을 세 차례 차지한 판후이다. 알파고의 스파링 파트너. 알파고를 잘 알고 있는 그도 37수를 보고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안정을 찾았다. 지난 5개월 동안 판후이는 개발자들이 결점을 찾을 수 있도록 알파고와 수백 번이나 겨뤘다. 그는 계속 졌지만, 그 누구보다도 알파고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판후이가 보기에 27수 어깨 짚기는 인간의 수가 아니었다. 그는 10초 정도 고민한 다음 말했다. “정말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다.”

알파고는 이세돌, 즉 인류 대표를 상대로 4승 1패를 거뒀다. 37수는 알파고가 그저 예측 알고리즘을 엄청나게 돌리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알파고가 ‘이해한다’는 사실, 혹은 그것을 비슷하게 모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순간이었다. 알파고는 바둑 기사라면 ‘직관’이라고 부를 만한 행태를 보였다. ‘사람처럼’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렇다고 인류가 패배한 것은 아니다. 이세돌 은 순교자가 아니며, 37수는 기계가 미천한 인간들을 능가하고 거침없이 솟아오른 순간이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다. 37수는 기계와 인간이 마침내 함께 진화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알파고 개발자 데이비드 실버.

알파고의 27수는 인간의 수가 아니었다. 알파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스파링 파트너 판후이는 이 수를 두고 “아름답다”고 했다.

영국 서포크 출신의 데이비드 실버는 열다섯 살 당시 체스 선수였다. 당시 무적의 상대는 데미스 하사비스였다. 런던 출신의 하사비스는 누가 봐도 영재였다. 한때 하사비스는 전 세계 14세 미만 체스 선수들 중 2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하사비스는 날 몰랐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그가 우리 동네에 찾아와 대회에서 승리하고 떠나는 걸 봤다.”

그들이 제대로 만난 것은 케임브리지에서 컴퓨터 신경과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부터다. 기계들도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가질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는 연구였다. 하지만 그들을 가깝게 만들어준 건 결국 보드 게임과 컴퓨터 게임이었다. 1998년, 하사비스와 실버는 자연스럽게 졸업 후 게임 회사를 차렸다. 하사비스는 바둑을 즐겨 두었는데, 하사비스 때문에 실버도 흥미가 생겼다. “어떤 것에서든 하사비스를 이 길 수 있다면 그건 명예의 훈장과도 같은 일이 되었다. 하사비스가 바둑에 막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지역 바둑 클럽에 가입해 2단, 3단 기사들을 상대로 바둑을 뒀다. 그들은 바둑이 기계가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지적 게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1995년 ‘치눅’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세계 정상급 체스 선수를 이겼다. 2년 뒤에는 IBM의 딥 블루 슈퍼컴퓨터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바로프를 꺾었다. 게임 이론상으로 바둑은 체스와 같은 완전 정보 게임이다. 운이 개입되지 않으며 숨겨진 정보가 없다. 이것은 컴퓨터가 통달하기 쉬운 조건이다. 하지만 바둑은 난공성이었다.

바둑은 얼핏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3천 년 역사를 훌쩍 넘긴 게임이다. 두 명의 기사가 돌아가며 검은 돌과 흰 돌을 하나씩 놓고, 집을 짓고, 상대 돌을 잡는다. 사람들은 체스를 전쟁에 비유하지만, 체스는 전투에 더 가깝다. 바둑은 전 세계 전쟁이나 지정학과 비슷하다. 한 곳에 둔 수가 바둑판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체스에서는 한 번에 둘 수 있는 수가 35개 정도지만 바둑은 200개에 가깝다. 복잡함의 수준이 다르다. 하사비스와 실버는 바둑판에서 가능한 수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다는 말을 즐겨 한다. 체스와 달리, 인간이든 기계든 각 수의 궁극적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정상급 기사들은 계산이 아니라 직관으로 바둑을 둔다. “좋은 자리는 좋아 보인다. 일종의 미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게임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매혹시킨 것이다.”

2005년, 하사비스와 실버는 게임 회사를 폐업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실버는 앨버타 대학에서 강화학습이라는 초기 형태의 AI를 연구했다. 하사비스는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에 들어가 인지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땄다. 2010년, 그들은 다시 만났다. 하사비스가 ‘딥마인드’ 라는 AI 회사를 차렸고 이어 실버가 합류했다. 정말로 생각할 줄 아는 AI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출발점이 필요했다.

그들의 출발점 역시 게임이었다. 게임은 현실 세계와는 다른, 독립된 하나의 작은 우주라서,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딥 마인드는 강화학습과 심화학습을 합치기로 했다. 심화학습은 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비교적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게 잘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새로 태어난 AI에게 ‘스페이스 인베이더스’와 ‘브레이크아웃’ 게임을 시켜봤다. 시험해보니 ‘브레이크아 웃’이 특히 놀라웠다. ‘브레이크아웃’은 ‘퐁’과 비슷하지만, 공을 상대와 주고받는 게 아니라 색깔 벽돌에 튀기는 게임이다. 공에 맞은 벽돌은 사라진다. 돌아오는 공을 받지 못하거나 화면 밖으로 튕기면 진다. 딥마인드의 AI는 고작 500판을 해본 다음 공을 벽돌 위쪽으로 튕겨 올려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계속 벽돌을 깨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인간의 반사 반응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플 레이를 해냈다.

투자자를 물색하던 하사비스는 한 디너 파티에서 페이팔 설립자이자 페이스북 투자자로 유명한 피터 틸을 만났다. 틸은 단 몇 분 만에 하사비스의 설득에 넘어갔다. 하사비스는 틸이 체스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리콘 밸리 억만장자 한 명을 거친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게 마련이다. 하사비스는 틸을 통해 엘론 머스크를 만났고, 머스크는 구글의 CEO 래리 페이지에게 딥마인드 이야기를 해줬다. 구글이 총 6억 5천만 달러에 딥마인드를 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 하사 비스는 구글 공동 설립자 세르게이 브린이 참석한 미팅에서 아타리 데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브린 역시 바둑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탠포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브린이 바둑을 하도 많이 두어서 구글을 설립하지 못 할 뻔 했다는 농담도 떠돌았을 정도다. 브린은 하사비스를 만나 바둑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마음먹고 달려든다면 딥마인드는 몇 년 안에 세계 바둑 챔피언을 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사비스가 브린에게 한 말이다.

2차 대국이 끝나자 실버는 알파고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다. 알파고의 두뇌는 전 세계 수 백개의 컴퓨터에 나뉘어 있다. 실버는 키보드 자판을 몇 개 눌러 37수 직전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살폈다. 딥마인드와 알파고 전의 AI 연구자들은 각 수의 결과를 시합 중에 체계적으로 예측하는 기계를 만들어 바둑에 도전했다. 문제를 컴퓨터의 완력으로만 다루려 했던 것이다. IBM의 딥 블루는 이런 식으로 1997년에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나는 < PC 매거진 >의 초보 기자로서 그 경기를 관전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처럼, 사람들은 그 경기를 AI의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묘하게도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2차 대국에서 그랬듯, 딥 블루는 카스파로프와의 2차전에서 인간이라면 두지 않을 수를 두었다. 카스파로프 역시 이세돌처럼 당황했지만, 그만큼의 투지가 없었다. 그는 부담 때문에 쉽게 무너졌다.

그러나 완력으로는 바둑을 정복할 수 없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아 컴퓨터조차 모든 결과를 고려할 수 없다. 실버의 팀은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해, 제법 좋은 경기를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런던 킹스 크로스 역 근처의 딥마인드 사무실에서, 신경망 깊은 곳에 인간이 둔 바둑의 수 3천만 가지를 주입했다. 이 신경망은 인간 뇌의 뉴런 그물과 어느 정도 비슷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다. 신경망은 알고 보면 상당히 흔하다. 페이스북은 신경망을 사용해 사진에 얼굴을 태그한다. 구글은 신경망을 사용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말로 한 명령을 인식하게 한다. 신경망에 어머니의 사진을 충분히 집어넣으면, 신경망은 어머니를 알아보는 법을 배운다. 말을 충분히 많이 집어넣으면 당신의 말을 알 아듣는다. 바둑 수를 3천만 개 집어넣으면 바둑 두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알파고와의 대국 후 이세돌은 지구인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규칙을 아는 것과 최고가 되는 것은 다르다. 37수는 3천만 개의 수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러면 알파고는 어떻게 그 수를 배운 걸까? 알파고는 그 수의 승산이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파고는 그 수가 프로페셔널이라면 두지 않을 수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더 깊이 검색하면서 가이드를 무시하는 능력을 익혔다.” 실버가 말했다. 알파고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알파고는 개발자들이 디지털 DNA에 심어둔 규칙뿐 아니라 스스로 학습한 알고리즘에 기반해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알파고는 스스로 성찰과 분석을 거쳐 직접 그 수를 결정했다.”

인간의 경기에서 바둑 두는 법을 배운 다음, 실버는 알파고 혼자 대국하게 했다. 알파고는 스스로의 신경망과 (조금) 다른 버전을 상대로 바둑을 두고 두고 또 두었다. 바둑을 두면서 알파고는 어떤 수가 가장 큰 보상, 즉 바둑판 위에 가장 많은 집을 가져오는지 추적했다. 이것이 실버가 대학원에서 연구한 강화학습이다. 알파고는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실버의 팀은 (인간의 방식이 아닌) 수백만 가지 수를 두 번째 신경망에 입력해 바둑의 미래를 내다보는 법을 가르쳤다. 체스처럼 모든 결과를 계산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직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혼자서 굉장히 여러 번 대국을 하면서 얻은 지식으 로, 알파고는 바둑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 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처음 보는 조건에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직관이다. 그리고 알파고가 2차 대국에서 직관으로 둔 것이 37수다. 최고의 인간 기사들마저도 넘어선 통찰이었다. 개발자들조차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 “대국이 어찌나 긴장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모르겠다.” 실버가 컨트롤 룸에 다녀와서 말했다.

보드 게임을 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기업에 6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하진 않는다. 심화학습과 신경망은 구글의 위대한 검색 엔진을 포함한 구글 서비스 여남은 개를 뒷받침한다. 알파고의 무기 중 하나인 강화학습은 이미 구글 연구소의 로봇들에게 온갖 것을 들어 올리고 움직이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 대국이 구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구글 회장이자 전 CEO 에릭 슈미트는 1차 대국이 시작되기 전에 서울에 도착했다. 구글에서 가장 유명한 엔지니어인 제프 딘은 1차 대국을 관전했다. 세르게이 브린은 3, 4차 대국을 관전하며 자신의 바둑판에 복기를 했다.

그러나 비즈니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하사비스와 함께 서울의 문화적, 정치적 심장 종로구를 산책했다. 젊은 여성 한 명이 한국 TV와 신문에 실린 하사비스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녀는 기절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하사비스가 마치 테일러 스위프트나 저스틴 비버라도 된 것 같았다. “방금 봤어요?” 내가 물었다. “네. 늘 일어나는 일이죠.” 하사비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을 했다. 그러나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의 바둑 인구는 8백만에 달하고 이세돌은 국가적 영웅이었다. 중국에서 대국 생중계를 본 사람은 2억 8천만 명이 넘었다. 1차와 2차 대국에서 이세돌이 패배하자 바둑 팬들이 깊은 절망감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2차 대국이 끝났을 때 프레드 주라는 중국 기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알파고를 바둑 파괴자가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성취로 여기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세돌의 패배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되묻자 프레드 주는 자기 심장 부분을 가리키며 “슬펐다”고 말했다.

이 대국을 보며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의 선을 넘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기계는 아직 대화를 제대로 하지는 못한다. 좋은 농담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상식도 없다. 하지만 알파고의 엄청난 우월함은 이제 기계들이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가 갖는 인간의 직관을 모방하고,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세돌은 3차전도 졌다. 알파고는 5전제에서 3승을 먼저 따내 승리를 확정지었다. 3차 대국 후 기자 회견에서 하사비스 옆에 앉은 이세돌은 인류를 실망시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세돌이 말하는 동안 하사비스는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알파고의 개발자인 그는 처음엔 무척 들떴다. 기계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조차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고개를 드는 걸 느끼고 말았다. 그는 이세돌이 한 번은 이기기를 바랐다.

4차 대국이 시작된 지 두 시간. 이세돌은 위기에 처했다. 그는 공격적으로 수를 놓으며 넓은 바둑판의 특정 지역을 공략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더 넓게 보고, 판 전체를 중시하는 전체론적 접근을 취했다. 37수에서 알파고는 한창 바쁜 곳이 아닌 돌이 단 한 개만 있는 곳에 검은 돌을 놓았다. 4차 대국에서도 알파고는 불가사의한 수를 뒀다. 알파고는 이미 3승을 거 둬 승리한 상태였다. 이세돌은 이제 승리가 아 닌 인류를 위해 바둑을 두는 중이었다. 77수에서 그는 휘청하는 듯했다.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고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돌리고 목 뒤를 문질렀다. 2분, 4분, 6 분이 지났다. 그는 왼손으로 목덜미를 잡은 채 공격했다. 오른손 손가락 두 개에 잡은 흰 돌을 바둑판 거의 가운데, 검은 돌 두 개 사이에 놓았다. 78수다. 방대한 두 영역 사이의 ‘끼워넣기’다. 알파고의 수비를 효과적으로 반으로 갈라놓았다. 알파고는 눈을 깜박였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알파고의 다음 수는 형편없었다. 이세돌은 상대가 아자황이라는 듯 아자황을 노려봤다.

알파고의 컨트롤 룸에서 기계를 조작하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세돌의 78수 이전, 그들은 알파고의 승리 확률이 70퍼센트라고 계산하고 있었다. 8수 뒤에는 가능성이 곤두박질쳤다. 알파고는 인간이 그런 수를 둘 수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럴 확률은 1만 분의 1이었다. 알파고 역시 인간처럼 놀랄 줄 알았다. 대국 시작 4시간 45분 후 알파고는 불계패를 선언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알파고도 패배할 수 있다. “그때까지 알파고가 해온 모든 생각은 무용한 것이 되었다. 재시작해야만 했다.” 하사비스가 말했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2010년, 데이비드 실버와 함께 딥마인드를 설립했다.

알파고는 이세돌이 둔 78수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알파고의 수비를 반으로 갈라 놓는, 1만 분의 1의 수였다. 알파고도 인간처럼 놀랄 줄 알았다.

최종 대국이 시작되었다. 나는 원래 하사비스의 팀과 대국을 함께 보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만나러 가기 직전, 구글 측 관계자가 나를 찾아왔다. “최종 대국 때 기자가 방에 있는 걸 원하지 않는대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가고 나서 나는 사진가 조디 우드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알파고는 자기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알파고는 초반부터 초보 같은 실수를 했다. 바둑판 아래쪽 접전지에서 알파고는 이세돌이 늘어세운 검은 돌들과 너무 가까운 곳에 흰 돌을 놓고 그 지역 전체를 다 잃었다. 알파고의 직관이 실패했다. 하지만 3시간째로 접어 들자 알파고가 다시 기어올랐다. 3시간 30분이 지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세돌은 마지막 초까지 가서야 돌을 놓곤 했다. 이번 5연전 중 처음으로 어느 한쪽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대국이 끝까지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시간째가 되자 이세돌은 불계패를 선언했다. 알파고는 틀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세했다.

세상에서 이세돌의 기분을 아는 사람은 알파고의 트레이너인 판후이 한 사람 일지 모른다. 그는 작년 10월 치뤄진 비공개 매치에서 알파고에게 0승 5패를 기록했다. 그후 판후이는 딥마인드에 들어가 용병이 됐다. 알파고를 상대로 바둑을 두고 두고 또 뒀다. 판후이의 패배수가 쌓여갈수록 우스운 일이 생겼다. 판후이는 바둑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 다른 인간들을 상대할 때 판후이의 성적이 좋아졌다. 정상급 선수들과 네 번을 붙어서 내리 이긴 적도 있다. 랭킹도 확 올라갔다. 알파고가 그를 훈련시킨 것이다.

현재 세계 정상급 IT 기업들은 AI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어떤 앱이 사진 인식을 더 잘하지? 음성 인식을 잘하는 건 뭐지? 곧 이런 시스템들이 로봇이 사람들처럼 현실 환경과 상호작용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용적인 사용은 ‘알파고의 인간다움’에 비하면 좀 시시해 보인다. 구글 포토 앱이 생겼을 때는 없었던 문화가 알파고 이후 생겨났다. 독일 뒤셀도 르프의 게임 디자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교 수인 J. 마틴은 이제 37수에 바치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한다. 서울 대국에 대한 내 온라인 기사를 읽은 플로리다의 45세 컴퓨터 프로그래머 조디 엔사인은 자신의 오른팔 안쪽에 알파고의 37수를 문신으로 새겼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왼팔 안쪽에는 이세돌의 78수를 새겼다. 바둑계에서 신의 한 수로 불리는 수다. 4차 대국이 끝나고 몇 시간 뒤, 이세돌이 하사비스와 마주 앉았다. 한때 게임 신동이었던 하사비스는 이세돌의 부담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나도 시합에 나가곤 했다. 만약 내 삶이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면…. 나는 그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 필요한 헌신, 희생의 정도를 안다.”

이세돌은 기계를 상대로 바둑을 두면서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대답했다. “나는 벌써 나아졌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9연승을 이어갔다. 이번 대결 전에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AI 기술이 새로운 과학 연구를 주도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기계가 인간에게 해결책을 가르쳐주는게 가능해질 거라고 했다. 발언 당시에는 조금 공허하게 들렸다. 전형적인 테크놀로지계의 과장 어법 같았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이 기계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일을 더 잘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일을 더 잘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37수는 기계가 기계를 만든 인간 들보다 우월함을 보여주는 초기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쩌면 이것은 씨앗이다. 37수가 없었다면 78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에디터
    글 / Cade Metz
    포토그래퍼
    Geordie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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