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은 기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야구는 선수가 하는 거라는 주장과 야구는 감독이 하는 거라는 주장이 팽팽하다. 그런데, 야구는 야구장도 한다.

서울 잠실 야구장

야구는 구장의 비중이 높은 스포츠다.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은 경기장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 물론 야구장도 규정된 크기가 있다. 투수 마운드부터 홈까지 18.39미터,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 27.4 미터. 그런데 내야와 달리 외야의 크기는 야구장마다 천차만별이다.

야구장은 양쪽 파울라인까지 약 97미터, 가운데 담장까지 약 122미터 이상을 이상적인 크기로 본다. 메이저리그 규칙에 따르면, 1958년 이후 새로 지은 구장은 외야 가장 깊은 곳 까지 약 122미터, 양쪽 폴까지 최소 99미터 이상이다. 그 이전에 지은 구장이나 기존 구장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이 규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AT&T 파크는 2000년에 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규칙과 어긋난다. 우측 담장까지 94미터다. 하지만 우측 담장이 높고 우중간이 깊어 우측 담장이 짧은 점을 보완한다. 구장에 관한 메이저리그의 규정은 이처럼 강제성을 띠진 않는다. 권장 크기가 있을 뿐이다.

부산 사직 야구장

규칙도 자유로운데 오랜 역사까지 더해져, 메이저리그 야구장은 각각의 크기와 특색을 지니고 있다.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스타디움이 아닌 볼파크라고 불린다. 담장 높이가 낮은 구장이 있는가 하면, 그린몬스터라 불리는 11미터 높이의 좌측 담장을 지닌 펜웨이파크 같은 구장도 있다. 투수들의 무덤인 쿠어스필드는 해발 1600미터가 넘는 고지 대에 위치하고, 시애틀의 세이프코필드는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라 습도가 높다. 이 외에도 어구장, 사막에 자리 잡은 구장, 바다를 마주보는 구장 등 다양한 구장이 있다.

모든 구장이 다른 조건을 지녔기에 각 구장에서 만들어지는 기록도 차이가 난다. 파크 팩터는 야구장의 특성이 기록에 미치는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수치다. 쉽게 말해 ‘구장 덕’ 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준다. 다양한 파크팩터 계산식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홈과 원정 경기의 득점과 실점으로 구한다. 즉, 원정 성적 대비 홈에서 어떤 성적이 나오는지를 이용해 해당 구장의 성향을 가늠한다. 파크팩터의 기준은 주로 100을 사용하는데 기록처에 따라 1 또는1000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준을 넘는 구장은 타자 친화 구장이고 못 미치는 구장은 투수 친화 구장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구장의 득실점으로 계산한 파크팩터가 110이라면, 그 구장에서의 득점은 중립 구장에 비해 10 퍼센트 유리하다. 득점에 유리하다는 것은 실점에 불리하다는 것이기에 그 구장은 타자 친화 구장이다. 파크팩터는 득실점뿐만 아니라 홈런과 피홈런, 안타와 피안타 등 다른 기록도 대입할 수 있다.

수원 KT 위즈 파크

가장 빈번하게 파크팩터를 사용하는 기록은 홈런이다. 파크팩터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바로 외야 담장까지의 거리와 담장 높이이기 때문이다. 외야 크기는 홈런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KBO의 파크팩터를 제공하는 < 스탯티즈 >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잠실구장의 홈런 파크팩터는 677이고 넥센의 홈구장이었던 목동 구장은 1145다. < 스탯티즈 >는 1000을 기준으로 삼는다. 잠실구장은 중립 구장에 비해 홈런이 67.7퍼센트에 불과한 극악의 투수 구장이다. 목동 구장과 비교해 59.1퍼센트에 머문다. LG 트윈스 소속이었던 박병호와 정의윤이 이적 후 홈런을 많이 날린 데는 구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박병호와 정의윤의 홈런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잠실에 비해 목동과 문학 구장의 홈런 파크팩터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구장 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잠실구장 자체가 플라이볼 타자에게 불리하다. 지난해 홈런 파크팩터가 1000을 넘지 않는 홈 구장은 잠실을 제외하면 수원 케이티위즈파크 한 군데였다.

국내 구장은 잠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장 성향이 엇비슷하다. 메이저리그는 구장이 많아서 원정 성적을 모두 더하면 거의 중립에 가까운 수치가 나온다. 홈 성적을 중립에 가까운 성적과 비교해 파크팩터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는 10개 구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정 성적을 모두 더해도 중립에 가까운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 잠실을 홈으로 쓰지 않는 구단은 원정 경기의 2/9를 잠실에서 치른다.

대구 삼성 라이온스 파크

또한 파크팩터는 실제 이루어진 경기를 토대로 계산한다. 하지만 ‘스몰 샘플’로는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 올해 새롭게 개장한 고척돔과 라이온즈파크가 좋은 예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보면 고척돔은 타자 친화 구장이며, 라이온즈파크는 투수 친화 구장이다. 고척돔은 좌우측 담장까지의 거리와 가운데 담장까지의 거리가 잠실과 동일하다. 구장 크기로는 투수 친화 구장이다. 그런데 ‘스몰 샘플’에서는 몇 경기 성적만으로도 파크팩터가 크게 변한다. 지금의 높은 파크팩터는 샘플 수가 늘어날수록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돔구장의 특성상, 공기 저항이 적어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날 수 는 있다. 라이온즈파크는 시즌 시작 전만 해도 새로운 홈런 공장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파크팩터는 투수 친화 구장이라고 말한다. 홈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성적이 신통치 못하고 샘플이 적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파크팩터는 해당 구장을 쓰는 홈팀만의 기록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해당 팀의 공격과 수비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면 파크 팩터도 함께 변할 수 있다. 파크팩터는 단일 시즌이 아닌 여러 시즌을 놓고 구해야 한다. 보통은 최근 5년간의 기록을 이용한다. 어떤 기록도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파크팩터를 100퍼센트 신뢰하긴 어렵다. 하지만 파크팩터를 적용 하는 것이 적용하지 않는 것보다 합리적일 가능성이 높다.

인천 SK 행복드림 구장

파크팩터에서 홈런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담장까지의 거리와 담장 높이만이 아니다. 바람의 방향, 공기의 압력도 중요하다. 목동 구장은 외야에 관중석이 없어 외야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영향으로 홈런이 많았다.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문학 구장 또한 그린존을 만들며 왼쪽 외야에 있는 외벽을 철거했다. 문학 구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해 바람이 센 곳이다. 왼쪽 외벽을 없애자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이 증가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AT&T 파크가 개장할 당시만 해도 짧은 우측 담장으로 인해 좌타자의 홈런이 급증할 것 이란 예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최악의 좌타자 홈런 파크팩터를 기록했다. 우측 외야 밖이 바다인데, 바다에서 경기장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좌타자의 홈런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파크팩터는 득점, 홈런 외에도 1루타, 2루타, 3루타 등 각각의 값도 구할 수 있다. 잠실구장은 홈런을 치기는 어려운 반면 3루타 파크 팩터는 가장 높다. 외야가 드넓다는 간단한 이유다. 3루타는 다른 안타들에 비해 보기 힘들다. 심지어 홈런보다도 적은 게 3루타다. 3루타가 나오기 위해선 외야수가 송구하기 가장 먼 곳으로 타구를 보내야 한다. 만약 외야가 좁은 구장이라면, 홈런은 잘 나오겠지만 3루타는 자주 나오기 어렵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

외야의 크기와 담장 높이만큼이나 구장의 성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파울 존의 크기다. 파울 존이 클수록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이다. 만약 파울 타구가 관중석에 떨어져 파울이 되면 타자의 타석은 계속 이어지지만, 파울 타구가 뜬공 처리되면 아웃 카운트 하나가 늘어난다. 과거 박찬호가 활약할 당시의 다저스타디움은 파울 존이 넓은 투수 친화 구장이었다. 하지만 훗날 관중석을 늘리기 위해 파울 존 크기를 줄인 탓에 파울 존이 좁아져 최근에는 중립 구장에 가까워졌다.

이제는 많은 팀이 구장을 관중 수익을 위한 공간만이 아닌 경기의 한 요소로 본다. 구장에 맞는 팀을 구성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예전부터 팀 컬러에 맞춰 구장을 짓거나 개조했다. 뉴욕 양키스는 과거 베이브 루스를 위해 좌측 담장을 당겨 그의 홈런에 일조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파크팩터를 잘 활용한 구단 중 하나다. 캔자스시티의 홈구장인 카우프먼 스타디움은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투수 친화 구장 으로 크기가 잠실구장과 비슷하다. 이 광활한 외야를 지키기 위해, 캔자스시티는 발 빠르고 수비가 좋은 야수들로 외야를 채웠고, 파워보다는 콘택트 능력이 뛰어난 타자들로 팀을 꾸 렸다. 투수진도 땅볼 유도보다는 뜬공을 만들어내는 선수들로 구성했다. 이렇듯 넓은 외야와 발빠른 수비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홈런만 되지 않으면, 뜬공은 땅볼보다 안타를 만들기 어렵다.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국내에서 파크팩터 이야기를 하려면 잠실과 목동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두산 베어스 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는 큼지막한 타구가 워닝 트랙 앞에서 잡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다른 구장이었으면 넘어갔을 법한 타구들이다. 쉽게 홈런을 허용하지 않는 구장에 팬들은 ‘김잠실’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다른 구장에서는 넘어갔을 타구를 외야에서 잡는 게 ‘김잠실’ 이다. 최근 몇 년간 두산과 LG의 선수 구성을 보면 파크팩터에 맞는 선수 구성을 한 두산이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캔자스시티와 비슷한 구장을 가지고, 비슷한 팀 색깔을 지닌 팀이 바로 두산 베어스다. 두산은 같은 구장을 쓰는 LG에 비해 발도 더 빠르고 수비도 더 좋은 외야수를 보유했다. 양 팀의 투수진 구성 또한 차이가 있다. 두산은 뜬 공을 유도하는 투수가 많았고 LG는 땅볼을 유도하는 투수가 많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외야가 넓은 잠실 구장에선 뜬공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 두산에 콘택트가 좋고 발 빠른 타자가 많다는 점 또한 LG와 다르다. LG는 박병호, 정의윤 등 팀 내 거포 유망주가 계속해서 실패한 바 있다.

국내 구단 중 파크팩터를 가장 잘 이해한 팀은 넥센 히어로즈다. 넥센은 목동 구장을 쓸 당시, 파워가 좋은 타자들을 하나둘 영입했고 더 많은 홈런을 생산해냈다. 박병호가 대표적이다. 물론 박병호의 성공이 목동 구장 때문이 라는 것은 아니다. 원래 힘이 좋은 타자라 구장 에 상관없이 공을 담장 밖으로 넘길 힘을 지녔으나, 잠실 구장에서는 손해볼 수밖에 없는 플라이볼 히터인지라 타율이 낮아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

넥센은 올해 옮겨간 고척돔에 어울릴 만한 타자로 채태인을 영입했다. 채태인은 선수 경력 내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많이 만들어냈다. 높은 BABIP(인플레이된 타구의 타율)를 유지해왔다. 홈런보다는 많은 안타를 만들어낼 줄 알았다. BABIP는 외야가 넓을수록 높을 수 있다. 외야수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외야가 넓을수록 홈런을 제외한 타구의 안타 확률이 높아진다.

파크팩터를 들여다보면 국내 프로야구의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띈다. 파크팩터가 특징적인 구장이 별로 없다. 모든 구장을 좌우 대칭으로 지었다. 좌타자, 우타자 공히 파크팩터가 거의 같다. 바람의 영향으로 약간의 차이는 발생 할 수 있겠지만.

메이저리그는 대부분의 구장을 비대칭으로 지었다. 강정호가 뛰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홈구장인 PNC파크는 좌중간의 거리가 122미터나 돼 우타자 홈런 파크팩터가 최악인 구장으로 꼽힌다. 우타 풀히터에게 불리한 것이다. 펜웨이파크는 좌측 담장 높이가 11미터나 되기 때문에 우타자의 2루타 파크팩터가 낮은, 우측 외야가 깊기 때문에 좌타자에게 다소 불리한 구장으로 뽑힌다. 우타자가 유리한 구장과 좌타자가 유리한 구장, 풀히터가 유리한 구장과 스프레이 히터가 유리한 구장 등 다양한 구장에서 나오는 각각의 팀 색깔이 또 하나의 재미를 제공하는 메이저리그다.

서울 고척 스카이돔

야구에는 다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스탯이 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발달로, 최근에는 조정 스탯까지 주목받고 있다. 일반 스탯을 보정해서 구한 스탯을 조정 스탯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조정 스탯이 OPS+와 ERA+다. 파크팩터까지 반영해 계산한 스탯이다. 구장을 보정 하지 않은 OPS나 ERA로는 타자 친화적인 구장에서 뛴 선수와 투수 친화적인 구장에서 뛴 선수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배경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파크팩터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매년 조금씩 변하는 값이다.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니다. 파크팩터를 해당 구장의 고유값으로 보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해당 팀의 전력과 약간의 상관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특정 선수의 활약을 ‘구장 덕’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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