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부터의 여행

구글맵도 없이, 내비게이션과 와이파이도 없이, 스마트폰과 보조 배터리도 없이, 우리들의 여행은 충만했다. 수학여행과 신혼여행, 꽃놀이와 단풍놀이, 소풍과 나들이, 식구들과의 계곡, 둘이서 본 바다, 혼자만의 오솔길…. 그때 누군가는 분명 이런 말을 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그렇게 한 장 한 장 찍은 지난 세기의 여행 사진이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왜 거기로 가려 하는가.

장소 미상 | 연도 미상

1979년 4월, 논산 취암동에 사는 장씨네 일곱 식구는 은진면 관촉사로 소풍을 갔다. 고려시대 사찰로 동양 최대 크기의 석불이 유명하지만, 논산에서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그저 ‘은진마빡’이라 친근하게 부르던 곳. 큰딸 애자는 쌘뽈여고 1학년, 둘째 딸 숙자는 쌘뽈여중 2학년, 셋째 딸 길자는 부창국민학교 4학년, 넷째 딸 숙희는 부창국민학교 1학년, 막내아들 우철은(에디터) 이제 다섯 살. 별명은 장털보인데 이날은 면도를 말끔하게 하신 아버지 장성린은 마흔둘, 어머니 김경임은 그보다 네 살이 적은 서른여덟이었다. 아마도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도장도 파고 청첩장도 찍고 사진도 현상하던 가게 미도사에서 카메라를 대여한 것은 그보다 하루 전이었을 테고. “나도 분명히 갔는데 사진은 왜 같이 안 찍었나 모르겄네. 내가 사진기를 눌렀나?” 어머니는 여전히 취암동에 살고 있다. 올해 나이 감자꽃처럼 해맑은 일흔다섯.

 

 

1980년 봄에도 일곱 식구는 관촉사에 갔다. 이번엔 벚꽃이 지고 철쭉이 필 때였다. 1979년의 소풍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지만 이날에 대해서는 몇 가지나 기억한다. 철쭉의 색, 아버지의 손길, 고소미의 맛 같은 것들. 실은 사진이 있어서다. 그날 철쭉 앞에서 고무공을 튕기며 찍은 사진, 담장 위에 걸터앉아 찍은 사진(뒤에서 아버지가 손으로 나를 받치고 계셨다), 돌 위에 앉아 오리온 고소미를 먹는 사진. 그걸 볼 때마다 기억은 자꾸 새로워졌으니,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옳은가 싶다.

 

 

2016년 6월, 볕 좋은 일요일에 나는 동묘 벼룩시장에서 누군가의 오래된 앨범을 펼치고 있었다. 앨범 한 권에는 한 남자의 학창 시절부터 군복무 시절까지가 주로 담겼고, 다른 한 권에는 한 여자의 대학 시절 사진이 빼곡했다. 사진 뒷면에 메모가 있으면 어찌나 반가운지, “92. 7. 18 뚝섬”이라든가, “94. 10. 26 도봉산에서” 같은 글씨는 예쁘고 뚜렷했다. 여기서 ‘92’와 ‘94’는 (서기가 아니라) 단기다. 단기 4292년이면 서기 1959년. 그해 여름 7월 18일, 남자는 뚝섬에서 물놀이를 했다. 구름이 없는 날이었고 머리엔 포마드를 바르고 있었다. 한편 여자는 1963년 봄에 친구들과 고궁에 갔다. 부드러운 블라우스와 무릎 길이의 스커트, 굽이 5센티미터쯤 되는 구두, 고상한 핸드백과 전공서적인 듯한 큰 책. 덕수궁 석조전 계단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때는 누군가 이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다 같이 발뒤꿈치를 붙이고, 핸드백은 오른손에 들고, 시선은 살짝 위를 향하자.” 그리고 하나, 둘, 셋.

 

 

가만 보면 옛 사진에는 으레 ‘콘셉트’가 도드라진다. 구도를 잡고, 포즈를 정하고, 되도록이면 의미까지 입히고서야 찰칵, 마무리되는 세계. 그중 여행 사진은 가장 특별하다. 그때의 여행이란 다시 못 올 기회이자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하는 일이었으니 (그에 비해 요즘의 여행은 다분히 일상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떠나기 전의 설렘, 당도한 현장의 생생함, 돌아온 뒤의 아련함, 그때 여행은 더 선명하고, 더 정직하고, 훨씬 놀라웠다. 그리고 사진은 유일한 결정처럼 남겨졌다.

 

 

용산구 한남동에 사는 유보라 씨는 어머니의 1966년 수학여행 사진을 편집부로 보내며 이렇게 썼다. “지금의 저보다 어린, 중학생 엄마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설악산 수학여행. 동굴 사이로 비치는 엄마의 단발머리에 새삼 제 마음도 설레네요.” 종로구 청운동에 사는 박세훈 씨는 엄마와 아빠에게 번갈아 안기며 여행했던 1986년의 알프스를 다시 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기억나는 건 거의 없는데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기운은 어렴풋이 남아있어요.” 대구시 수성동에 사는 김재연 씨는 1990년 해외여행자유화 직후 런던으로 떠났던 외삼촌의 사진을 볼 때마다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사진에는 뒷모습뿐이지만 삼촌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막 두근거리는 게 저한테도 느껴져요.”

 

 

지난 세기에 견주어, 여행은 부쩍 쉬운 말이 됐다. 우리는 자주 여행하고 자주 여행에 포함된다. 스스로 떠나지 않고도 타인의 감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일에 익숙하다. 아예 세상을 대하는 관점도 변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다”는 동요 ‘앞으로’의 가사가 유난히 지난 세기의 표상처럼 들리는 대신, 모든 것은 이미 스마트한 화면 속에 다 들어 있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오죽하면 ‘여행 블로그’에서 가장 잦은 표현이 “여기 와이파이 잘 터진다”일까. 눈앞에 에베레스트를 두고도 화면 속 에베레스트 이미지를 더 신뢰하는 식이라니. 맛집 리스트, 호텔 평점과 리뷰,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 더 저렴한 항공권, 왔다 간다는 인증…. 여행은 실시간 화면 속으로 들어가서야 완전해지려는 걸까. “근데, 여행은 그런 거 아니잖아.” 불쑥 지난 세기의 여행 사진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의 응답은 어떠할 텐가.

SHARE
[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