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르반테를 타고 달린 이탈리아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마세라티 르반테를 타고 그날 저녁에 먹을 식재료를 공수했다. 미슐랭 셰프가 공들여 준비한 요리에서 르반테의 풍미가 한껏 느껴졌다.

라노의 밤은 포근했다. 말펜사 공항으로 마중 나온 한국인 가이드는 “어제까지만 해도 폭우가 쏟아졌다”며 반겼다. 우린 이탈리아 고속도로, 아우토스트라다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브레시아.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알프스 산악 지대다. 다음 날 아침 커튼을 열고 깜짝 놀랐다. 호숫가를 따라 고풍스러운 호텔과 저택이 즐비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껴 마지않는 휴양지다웠다. 모든 체험의 중심은 이 브랜드 최초의 SUV인 르반테. 마세라티는 “특별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르반테는 마세라티 최초의 SUV다. 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서 갓 데뷔한 신차다. 기다림은 길었다. 마세라티는 2003년 쿠뱅 콘셉트로 SUV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하지만 결실을 만나기까지 무려 14년이 필요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마비시켰다. 모기업 피아트는 크라이슬러와 합쳤다. 하지만 마세라티는 온갖 악재 속에서도 경이로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만 해도 마세라티의 연간 판매량은 6천 대였다. 페라리보다 판매가 적었다. 하지만 2018년에는 7만 대까지 끌어올릴 참이다. 르반테는 이 원대한 꿈을 이루는데 핵심 역할을 할 주역이다. 마세라티는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다가가는 중이다.

공식 프로그램은 이날 저녁부터였다. 한나절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빈둥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우린 모데나로 향했다. 한 시간 이상 달려 도착한 곳은 움베르토 파니니라는 개인이 운영 중인 자동차 박물관이었다. 치즈를 비롯한 각종 유기농 식품을 만드는 농장 한쪽 허름한 창고 안에 40대의 자동차와 60대의 모터사이클, 20대의 트랙터가 전시돼 있었다. 박물관의 주인장은 움베르토 파니니. 올해 85세인 그는 마세라티 엔지니어 출신이다. 마세라티가 어렵던 시절 창고에서 쏟아져 나온 양산차와 경주차, 콘셉트카를 사들였다. 그의 컬렉션은 놀랍도록 화려했다. 1934년형 6C 34, 1957년형 250F 등 값을 매기기 어려울 만큼 희소성 높은 마세라티가 즐비했다. 메르세데스 300 SL 걸윙도 세워놨다.

마세라티는 1914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경주차 제작 업체로 출발했다. 회사 이름은 창업자 형제의 성에서 따왔다. 마세라티는 1955년까지 경주차 한 우물만 팠다. 23개의 챔피언십과 32회의 F1 그랑프리 등 500여 개의 우승컵을 휩쓴 싸움닭이었다. 그런데 1957년 250F로 월드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마세라티는 돌연 마음을 바꿔 양산차 제작에 투신했다. 마세라티가 일반 판매용 차를 개발하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호화 리무진이나 소형차에 욕심내지 않았다. 주특기인 경주차를 진화시켜 위험부담을 줄였다. 레이스카의 성능을 밑바탕 삼되 서스펜션의 근육을 풀어 승차감을 살렸다. 실내 공간도 넓혔다.

SCENE #1 우리는 이런 풍광을 곁에 두고 르반테를 몰았다. 시승은 짧았지만, 운전 경험이라는 건 자동차와 배경이 같이 만든다는 걸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절감했다. 한국에서 르반테를 운전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될 걸 알고, 그 시간 역시 끝내줄 거라는 것 또한 확신할 수 있는 순간들.

귀족 스포츠였던 자동차 경주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마세라티의 타깃은 상위 1퍼센트의 부자였다. 첫 결실은 경주차의 성능과 고급차의 편안함을 겸비한 스포츠 쿠페 3500GT였다. 백전노장의 노하우가 담긴 진정한 스포츠카였다. 마세라티가 ‘스포츠’를 강조하는 덴 다 이유가 있다.

해가 기울 무렵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우린 호텔 앞 선착장에서 커다란 보트에 올랐다. 기자단을 태운 보트는 잔잔한 호수를 가로질러 망루 앞에 멈춰 섰다. 마세라티가 르반테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야외 특설 무대였다. 오붓한 오두막에 르반테가 한 대 서 있었다. 마세라티 홍보 담당이 말했다. “르반테는 지중해에 부는 따뜻한 바람을 뜻해요. 이 바람은 온화하다가도 종종 사나워지는데, 르반테의 성격이 딱 그렇지요.”

마세라티는 세단 플랫폼을 기반으로 르반테를 개발했다. 포장도로와 험로, 일상적인 주행과 실용성 등 다양한 재능을 한데 섞기 위해서였다. 이날 마세라티는 르반테의 디자인을 설명하며 비율을 거듭 강조했다. 경주차처럼 보닛을 최대한 길게 뽑고, 캐빈은 뒤쪽으로 잔뜩 밀어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매서운 눈매와 쩍 벌린 흡기구가 포악스러웠다. 반면 뒷모습은 싱거웠다. 이유가 있었다. 맷집 좋은 SUV로 효율을 높일 때 걸림돌은 공기저항이다. 속도에 비례해 제곱으로 늘어나는 까닭이다. 르반테는 공기저항계수를 Cd 0.31까지 낮췄다. SUV 가운데 가장 낮다. 꽁무니 디자인의 힘을 빼고 동글동글하게 다듬은 결과다. 마세라티는 르반테를 개발하면서 기초부터 튼실하게 다졌다. 차체는 주요 부위를 알루미늄으로 짜 무게를 줄였다. 앞뒤 무게배분은 50:50으로 맞췄다. 무게중심은 세상의 어떤 SUV보다 낮췄다. 경주차 제작으로 잔뼈가 굵은 브랜드다운 접근 방식이다. 차체 강성은 뼈대를 나눈 기블리보다 20퍼센트 높였다. 험로주행을 감안한 배려다.

르반테의 엔진은 네 가지, 전부 V6 3.0리터다. 가솔린과 디젤 각각 두 가지씩 준비했다. V6 3.0리터 가솔린 트윈터보 직분사 엔진은 430마력과 350마력 두 가지 출력으로 세팅했다. 430마력 버전의 경우 동급 최고 수준이다. 이 엔진을 품은 르반테는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5.2초에 마친다. 최고속도는 시속 264킬로미터에 달한다. 가솔린 엔진은 페라리가 설계하고 만들었다. 마세라티가 ‘페라리의 심장’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엔진은 최대토크를 2,000rpm 이하에서 뿜는다. 기블리 역시 이 엔진을 얹는데, 르반테에 올리면서 출력을 20마력 더 높였다. 최대토크는 스포츠 모드에선 59.1kg.m, 일반 모드에선 50.9kg.m이다. 350마력 버전은 연비에 좀 더 신경 쓰는 오너를 위해 준비했다. 최대토크는 430마력 엔진의 일반 모드와 같은 50kg.m, 뿜어내는 구간은 1,750~4,750rpm으로 살짝 빠듯하다. 하지만 빠르다. 시속 100km 가속을 6초에 해치운다. 최고속도는 시속 251킬로미터.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의 최고속도 자율상한선을 보란 듯이 넘겼다.

SCENE #2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이 저녁 식재료를 구하는 장면이다. 마세라티가 미리 지정해놓은 가게에서 식재료를 받아드는 수준이었지만, 이렇게까지 훌륭한 성능의 SUV가 이렇게까지 의뭉스럽게도 순식간에 일상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이벤트였다.

이날 마세라티 홍보 담당은 “르반테는 여느 프리미엄 SUV와 뚜렷이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근거로 기본 장비를 들었다. 르반테는 전 모델이 ‘스카이 훅’ 기술로 완성한 에어 서스펜션과 마세라티 고유의 사륜구동 시스템 Q4가 기본이다. 또한 굉장히 높은 수준의 개인화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하나뿐인 르반테로 꾸밀 수 있다. 이어 마세라티의 오랜 파트너,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홍보 담당이 나섰다. 르반테는 옵션으로 제냐의 실크 원단을 씌운 시트를 고를 수 있다. 그는 누에고치까지 보여주며 실크의 장점을 설명했다. “실크는 최고의 천연 소재예요. 100킬로미터 길이의 실크 무게가 고작 1킬로그램밖에 안 된답니다. 아울러 불에 견디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호텔 주위에서 심상치 않은 배기음이 웅웅거렸다. 우린 호기심을 가득 안고 로비에 모였다.

마세라티는 이번 행사에 모데나에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를 운영 중인 셰프 마시모 보투라를 초청해 이날 저녁 요리를 맡겼다. 하지만 거저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브레시아의 시장과 농장을 돌며 식재료를 구해야 했다. 이때 타고 다닐 이동수단이 바로 르반테였다. 호텔 주차장에서 르반테 운전석에 올랐다. 르반테의 트렁크에 방문할 장소마다 쓸 장바구니와 쇼핑 리스트가 준비돼 있었다.

먼저 V6 3.0리터 디젤 터보 엔진을 얹고 275마력을 내는 르반테를 탔다. 이 엔진은 최대토크의 90퍼센트를 2,000rpm 이하에서 토해낸다. 가속페달에 발끝만 스쳐도 힘이 용솟음친다. 성능도 흠잡을 데 없다. 시속 100㎞ 가속을 6.9초에 마치고 시속 230킬로미터까지 달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첫 번째로 방문한 시장은 딱 15분 거리에 있었다. 이후 동선도 길어야 30분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승에서도 르반테는 환상적인 밸런스를 뽐냈다. 무게중심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응하기 좋았다. 시야도 시원시원했다. 전반적인 운전 감각도 부드러웠다. 마세라티는 르반테로 여성 고객의 비율을 늘릴 참이다.

현재 유럽에서 마세라티의 여성 고객 비율은 8퍼센트다. 북미는 이보다 훨씬 많은 13퍼센트다. 전 세계 고급차 업계가 눈독 들이는 중국 시장은 무려 35퍼센트나 된다. 빵빵하고 매끈한 디자인, 에르메네질도 제냐 원단을 씌운 시트, 편안한 승차감 모두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다. 물론 강렬한 가속감과 자극적인 사운드 등 마세라티만의 특징도 빠짐없이 챙겼다.

이날 저녁, 마시모 보투라 셰프는 우리가 공수해 온 오이와 오렌지, 피망, 렌틸콩 등의 재료로 만든 요리를 내왔다. 달인의 요리엔 공통점이 있다. 일단 창의적이고, 맛은 복합적이다. 여러 풍미가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완성한다. 씹는 내내 집중하고 음미하게 된다. 마시모 보투라는 유년 시절의 추억을 소개했다. “저처럼 모데나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요, 어려서부터 엔진음만 듣고 무슨 차종인지 맞추죠. 마세라티의 사운드는 한 번 경험하면 잊을 수 없었어요. 어머니의 특제 라자냐에서 제일 맛있는 겉껍질처럼요.”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라자냐의 껍질만 접시에 담아냈다. 그 아삭한 식감이, 르반테의 운전석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했다.

마세라티 × 에르메네질도 제냐

과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호사스러움, 마세라티와 제냐가 만나면 이런 인테리어가 가능하다. 제냐의 실크를 운전석에서 내 살로 느끼는 감정이란 어떤 걸까? 선바이저를 내렸을 때, 마치 수트 안쪽에 붙어 있는 것처럼 제냐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이란? 마세라티와 제냐가 같이 만든 르반테 안에 그 모든 순간이 실재한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옵션이자 도전이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