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을 입은 아톰

“어, 아톰이다!” 지나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 미소를 짓고 간다. 아톰은 왜 보자마자 반가울까? 청담동 언덕길 조은숙갤러리의 유리창 너머로 1미터 남짓한 수십 개의 아톰이 보인다. 팔짱을 낀 아톰, 두 주먹 불끈 쥔 아톰, 하하하 웃는 아톰, 반바지를 입은 아톰,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아톰…. 사진과 공예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허명욱 작가가 이번에는 옻칠을 한 아톰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렇다. 지금 보이는 아톰의 색감은 한번 쓱쓱 칠하는 걸로는 어림없는, 무려 마흔두 번의 공정을 거쳐서야 완성한 옻칠로부터 온 것이다. 유일하게 옻칠로 낼 수 없는 색깔인 흰색은(아톰의 눈동자) 섬세하게 반짝이는 자개로 채웠다. 허명욱은 무엇보다 시간을 사색하려는 작가다. 오래된 것들, 낡아진 것들, 칠이 벗겨지거나 녹이 슬거나 모서리가 닳아진 것들, 그런 채로 오직 지금을 드러내는 것들의 떨림 혹은 굳셈. 벽에 거미줄이 생기듯이 자연스러운 한편 깨진 유리가 반사하는 빛이 더 아름다울 때 느끼는 역설 같은 것. 특히 이번 전시에는 거울을 이용해 좀 더 직접적인 효과를 부추긴다. 아톰을 보면서 너는 어디서 왔니, 중얼거리던 질문은 어느새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향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톰의 라이선스를 내준 데츠카프러덕션 측에서도 이런 방식과 결과에 전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하니, 새삼 맨 처음 아톰을 알게 된 때는 언제였는지 그런 게 다 궁금해진다. 아, 6월 18일부터 이 아톰들은 좀 더 높은 곳(갤러리 4층, 2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1층에서는 독특한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는 김춘환 작가의 전시가 이어진다.) 7월 31일까지. 조은숙갤러리. www.choeunsook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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