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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사진가, 그레이 말린

2016.07.10GQ

사진가 그레이 말린은 저 하늘 끝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다와 모래사장 그리고 사람과 파라솔, 비치 타월이 뒤엉킨 순간을 찍는다. 사진을 찍을 땐 언제나 위험천만한 순간이 있지만, 그 풍광이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워 아찔한 바람 따윈 순식간에 잊는다. 매일을 휴가처럼, 관광하듯 일하고 먹고 마신다. 그레이 말린은 지금도 어딘가의 하늘에서 새의 눈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바다를 찍는다니. 모두 헬기에서 찍는 건가? 그렇다. 시작은 어느 호텔에 갔다가 맨 꼭대기 층 방에서 수영장을 봤는데, 그곳이 꽤 높아서 마치 새처럼 수영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걸 찍어서 컴퓨터 화면 보호기로 설정했는데, 매일 그 사진을 보다가 헬기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곤 바로 헬기를 탔나? 먼저 마이애미 아트 바젤 페어를 보러 가는 김에 몇몇 호텔에 연락을 해봤다. 그런데 루프탑에서 사진 찍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헬리콥터를 빌렸다. 처음 헬리콥터를 탔을 때, 파일럿이 문을 열어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무조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요. 몸을 너무 멀리까지 기울이지 마세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늘 위에서 본 수영장은 하나같이 정말 예뻤다. 그렇게 한참 수영장을 찍던 중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 쪽 파라솔이 눈에 들어왔다. 또 다른 세상이 열린 거다. 렌즈를 즉시 그쪽으로 돌렸고, 그 후로 지금까지 바다와 해변, 모래사장만 찍는다. 팔각형 파라솔, 직사각형 라운지 의자, 흰 모래에 색색으로 태닝한 사람들이 기하학적으로 뒤섞인 풍경은 내 캔버스나 다름없다.

누가 먼저 그 사진들을 알아봤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로 뭔가를 알아봤다는 걸 굉장히 적극적으로 즐겼다.

실제로 촬영할 때 하늘의 상황은? 사진처럼 평화롭지는 않을 것 같다. 늘 위험하다. 날씨가 어떻든 헬리콥터 문이 열리는 순간 엄청난 바람과 맞서야 하니까. 그래서 촬영이 더 재미있기도 하다. 스위스에서 ‘Snow Polo’ 시리즈를 작업할 때는 20~30분 간격으로 촬영해야 했는데, 바람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고 강해서 촬영을 할 수 있는 날씨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엄청난 주의가 필요하다.

수많은 해변 중 가장 위험했던 곳은? 매 촬영 때마다 위험이 따른다. 그렇지만 리오부터 아프리카 나미비아, 칠레의 안타르티카까지 세계 곳곳의 이국적인 장소를 여행할 수 있는 건 분명 행운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은 두바이다. 보통 촬영 6개월 전부터 이런저런 허가를 요청하는데, 그곳은 촬영 2주 전까지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역시 문제가 터졌다. 예약해놓은 헬리콥터가 보수 때문에 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그 대신 정부에서 쓰는 헬리콥터를 보내줬다. 정부용 헬리콥터는 두바이 어떤 곳도 날 수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찍은 사진 중 몇 장은 정말이지 전례가 없는 사진이다.

당신의 사진집 < Beaches >를 보다 보니 문득 사진가 슬림 애런즈가 생각났다. 혹시 그의 사진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나? 난 아주 오래전부터 슬림 애런즈의 팬이었다. 슬림 애런즈 외에도 아티스트 가스톤 우갈데 Gaston Ugalde는 호리즌을 주제로 한 <Far Far Away> 작업의 멘토가 되어주었고, 미래적이고 구조적인 오브젝트를 만드는 아티스트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Christo & Jeanne-Claude, 이미 너무나 유명한 사진가 데이비드 라샤펠도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카메라는 어떤 걸 쓰나? 캐논 5D. 매뉴얼 모드로 놓고 매 프레임마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로 조절한다. 헬리콥터에서 바깥으로 몸을 기울이고 바람이 얼굴에 휘몰아치는 상황에서는 찍을 시간이 단 몇 초밖에 안 된다.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또 다른 세계다. 내가 앵글을 통해 경험한 걸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수많은 해변을 가봤겠지만 한 번쯤 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있다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호텔도 많이 가봤겠지? 추천하고 싶은 호텔이 있다면? 이탈리아 카프리의 푼타 트라가라 Punta Tragara, 보라보라의 르 메르디안 Le Meridien, 이탈리아 보르고 이자니아 Borgo Eganzia, 남아프리카의 레지던스 프란쵸 La Residence in Franschhoek, 팜 스프링스의 더 파커 팜 스프링스 The Parker Palm Springs라면 믿을 만하다.

짐을 쌀 때 빼놓지 않는 건?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셔츠는 몇 장씩 꼭 챙긴다.

몇 년 전 올레바 브라운의 수영복에서 당신의 사진을 처음 봤다. 다른 협업 컬렉션은 뭐가 있나? 뵈브 클리코와 라벨도 함께했고, 스프링클 칵테일 키트도 만들었다. 내 사진을 프린트한 휴대전화 케이스나 비치 타월도 있고, 얼마 전엔 스페리와 슬립온도 만들었다.

촬영하기가 싫을 때는? 기껏 멀리까지 갔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때. 해결할 방법이 없다.

당신이 살고 있는 LA에서 최고의 해변은 어딘가? 캘리포니아라면 라구나 비치에서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파란 물을 찾아 남쪽으로 가거나, 산타 바바라에서 서핑을 하면 좋다. 포인트 덤 스테이트 Point Dume State, 파크 인 말리부 Park in Malibu도 좋고. 특히 라구나의 빅토리아 비치에서는 귀여운 불가사리도 볼 수 있다. 석양을 보고 싶다면 산타 모니카의 셔터스 온더비치 호텔에서 Shutters on the Beach. 술 한잔하기 최고다.

쇼핑은 어디에서 하나? 제일 좋아하는 곳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제이미 베리스테인 Jaime Beristain 인테리어 매장이다. 콘셉트가 분명한 곳으로 레스토랑도 있다.

올 여름휴가지로 정한 곳은? 매년 대부분의 휴가를 이탈리아 남부 해안 어딘가에서 보낸다. 내게 여름은 언제나 바쁜 계절인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침실에 두는 향초나 향수가 있다면? 에릭 부터보그 Eric Buterbaugh의 라벤더 향 향초.

당신 홈페이지에서 ‘Make Every Day a Joyful Getaway’라는 문구를 봤다. 실제로 이렇게 살고 있나? 물론이다.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매일매일의 삶을 꽉 채워 살고 있다. 매 시간 가능한 한 훌륭하게 보내고 싶다.

    에디터
    김경민
    포토그래퍼
    COURTESY OF GRAY MALIN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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