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6이 끝나고 난 뒤

유로 2016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결승전이 열렸던 생드니 경기장에 다녀왔다. 축구 이야기로 끝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승리 후 기뻐하는 포르투갈 대표팀

생드니 경기장에는 나방이 많았다. 관객들은 연신 손을 휘젓고 입바람을 불면서 나방을 쫓았다. 하지만 코앞에서 호날두와 그리즈만이 몸을 풀고 있고, 오프닝을 위해 거대한 앙리 들로네가 하프라인에 선,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유로 2016 결승전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파리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려서 타고 오는 내내 경쟁적인 자동차 경적이 들렸고, 경기장 바깥부터 양쪽 국가 서포터의 함성이 진군가처럼 달려들었다. 유로 2016 결승전은 심판의 휘슬과 관계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경기 시작 전에 들른 UEFA 클럽 라운지 직원이 “누구를 응원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진심을 듣고자 물은 것은 아닐 테다. 프랑스라고 대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터키항공은 인천에서 파리로 가는 여정 내내 이 경기에 깊이 관여할 것을 권했다. 유로 2016의 상징색으로 칠해진 대형 여객기 보잉 777을 타고,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유로 2016 공식 주제가인 데이비드 게타와 자라 라르손의 노래 ‘This One’s For You’를 듣고, 같은 시스템과 이스탄불 공항 라운지에서 실시간 중계를 관람하면서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 중심가 샹젤리제 거리를 걸을 때는 유로 2016을 기념하는 터키항공의 글로벌 캠페인 ‘Meet Europe’s Best’ 플래카드를 만날 수 있었다. 터키항공을 타겠다는 결정은 유로 2016 결승전으로 시간을 맞추는 일이었다. 사실 너무나 확실히 프랑스가 이길 것 같아서, 포르투갈이 이기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 터였다. 누구나 로마 제국의 대병력과 싸워서 이기는 스파르타쿠스의 승리를 보고 싶어 하기 마련이니까. 축구는 곧잘 전쟁에 비유되고.

 

축구에 관한 인류학적 고찰을 담은 데즈몬드 모리스의 < 축구 종족 >에서 인용한다. “만일 축구 경기가 사냥 의식으로 그쳤다면 선수와 서포터에게는 자신의 팀이 얼마나 많은 득점(들짐승 포획)을 올렸느냐만 중요할 뿐, 상대가 얼마나 많은 골을 터뜨렸는가는 별 상관없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골득실의 차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3대 4의 패배보다는 1대 0의 승리가 훨씬 낫다. 그러니까 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순서와 ‘유사 사냥감을 목표로 삼는 행위’는 사냥과 흡사하지만, 최종 결과가 상징하는 바는 오히려 전쟁과 흡사하다. 사냥도 축구의 얼굴이고, 전쟁도 축구의 얼굴이다. 그리고 관중은 이 두 가지 얼굴 때문에 축구를 보면서 흥분하고 감동한다.”

포르투갈이 프랑스를 1대 0으로 이긴 유로 2016 결승전을 봤기에 더 잘 알겠다. 경기는 예상대로 프랑스가 이길 수밖에 없는 전개를 보였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는, 악재처럼 보였지만 실은 호재인 사건이 발생한다. 파예의 거친 태클로 호날두가 왼쪽 무릎 부상을 입는다. 전반 16분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잠시 퇴장했던 호날두는, 다시 운동장으로 들어섰다가 전반 25분 주저앉아 눈물까지 흘리면서 경기장을 떠난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로 2004 결승전에서 그리스에 패한 후 눈물을 흘렸던 호날두의 모습이 겹쳤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반 16분 호날두가 쓰러졌을 때 생드니 경기장 대부분을 메운 프랑스 응원단은 어마어마한 야유를 퍼부었다. 포르투갈이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리라는 것을 경기 시작 전부터 짐작했고, 경기 시작 후에는 직접 확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 25분 호날두가 부상으로 교체될 때, 돌연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누구든 눈물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도움의 손길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 뉴욕 타임스 >의 칼럼 ‘Baseball or Soccer’에서, 축구의 속성을 아름답게 정리한다. “저는 우리 삶이 야구가 아니라 축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가 어떤 길을 택할지, 누구를 만날지, 어떤 가치관을 따를지 스스로 결정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사실 그런 결정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주위 사람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중략) 축구는 ‘90분짜리 불안한 꿈’입니다. 90분 동안 어디로 가려 하지만, 항상 무언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죠. 우리의 인생처럼요. (‘삶은 야구일까, 축구일까?’ < 뉴스페퍼민트 > 번역 인용)”

 

박문성은 축구 칼럼 ‘표준화된 유럽 축구’에서, 경기가 끝나고 페페가 쓰러져 구토를 했다는 사실로부터 이 경기를 재구성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프랑스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급부상한 파예”의 파울로 호날두가 교체된 후 포르투갈 선수들은 “동료의 고통을 대신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호날두란 존재감에다 그가 마지막까지 경기에 나서고자 했던 강력한 의지가 전이된 듯한 모습이었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호날두 부상 아웃 이후 자기 진영으로 깊숙이 내려서면서 수비 공간을 최소화”했고, “움직일 공간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로선 파예의 탈압박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더욱 절실”했지만 파예는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파예가 미안한 마음에 집중력을 잃은 사이 페페는 구토할 만큼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프랑스의 공격을 막았다. 경기 후 프랑스 대표팀의 레전드 프랭크 르뵈브는 유로 2016의 MVP는 그리즈만이 아닌 페페라고 말했다.

프랑스 응원단에게도 강자에게만 있을 법한 여유가 있었다. 포르투갈의 골키퍼 루이 파르시우가 경기 내내 과도하게 시간을 끌었지만 그저 각자 툴툴댈 뿐이었다. 적어도 연장 후반 3분 에데르의 결승골이 터지기 전까지는. 심판을 향해, 선수를 향해 거침없이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의자를 치고, 앞 사람에게 앉으라고 신경질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교양있게’ 축구를 관람한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에 가까웠다. 고작 축구 얘기지만, 축구에서조차 ‘나의 힘과 의지’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이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화를 냈다. 경기가 끝난 후 에펠탑이 있는 마르스 광장에서 관람하던 프랑스 응원단은 화재를 비롯한 몇 건의 폭동을 일으켰다.

축구는 집단으로 벌이는 투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미안해하고 아파하는 개인이 있다는 점에서도 전쟁과 같았다. 파예가 좀 더 냉철했다면 경기 결과가 달라졌을까? 호날두가 부상으로 아웃된 후, 감독과 함께 파울라인 바깥에서 동료들을 격려하고 독려했기에 경기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었던 걸까? 알 수 없다. 어쨌든 유로 2016 결승전 포르투갈의 승리는, 고작 전반 25분만 소화한 호날두의 승리인 것처럼 보도되었다.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렇게 평생 모르고 지나치는 어떤 영향력이 삶을 좌우하고 있지는 않을까? 호날두가 부상으로 주저앉아 울던 그때, 그의 이마에는 나방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