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나이키와 후지와라 히로시

2016.07.23유지성

불쑥 후지와라 히로시가 서울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이 박힌 물건은 어느 도시에나 있지만, 여전히 수상하고 궁금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미국 < GQ >에서는 후지와라 히로시를 이렇게 소개했다. “스트리트웨어의 대부.” 어떤가? 글쎄. 크게 의미 있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나? 이를테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처럼 이미 널리 불리고 있는 직함일 수도 있고. 그런가? 나는 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생각하지 않는다.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냥 후지와라 히로시.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했다. 왜 다들 그렇게 함께 일하고 싶어 할까? 내 이름을 걸면 그 브랜드에서 하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 추진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이건 후지와라 히로시의 아이디어다”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제 직업을 디자이너라고 말하긴 좀 그래요. 콘셉트를 잡아주는 정도니까요. 물론 디자인을 하긴 하지만 다른 디자이너들처럼 하진 않아요. 내 디자이너에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주고 작업을 하게끔 하죠. 스스로 디자이너로 불리고 싶진 않아요”라고 말했다. 후지와라 히로시의 역할은 어디까지인 건가? 난 디자이너는 아니다. 재봉질 같은 것에 소질도 없고. 그래서 나는 아이디어를 던지거나, 이미 존재하는 뭔가에 추가로 뭔가 더하는 것을 좋아한다. 완전히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것보다 그 방식이 나한테 더 잘 맞는다.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는 주로 어떤 방식을 취하나? 대화를 한다거나, 그림을 그려준다거나. 제품마다 다르다. 나이키의 HTM 프로젝트의 경우 나를 제외한 HTM(후지와라 히로시, 팅커 햇필드, 마크 파커) 멤버 중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전달하면, 그들은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첫 출발은 도쿄의 우라하라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스트리트 컬처’였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거기에 소속감이 있을 것이고. 거대해진 그 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자평하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아마 나를 잘 아는 다른 사람이 정확한 대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난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고.

지금의 우라하라는 불과 10년 전과도 분위기가 꽤 다르다. 요즘 도쿄에서는 어느 곳이 가장 흥미롭나? 여전히 하라주쿠 아닐까? 그리고 오모테산도. 그런데 난 밖에 자주 나가는 편이 아니다. 사실 그래서 변화에 좀 둔감하다.

일할 때 외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특별한 점은 없다. 매일 오전 11시쯤 일어나고, 5시에서 6시쯤 잔다. 거의 집에 있고. 사무실에 가거나 미팅 일정이 있으면 밖에 나간다. 아, 영화 볼 때도.

매일 새벽 5시에 잔다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래서 익숙하다.

하루에 겨우 5~6시간 잔다는 얘긴데, 집에 종일 있기엔 꽤 긴 시간이 남는다. TV도 보고, 기타도 좀 치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할 일은 많다.

영감을 얻는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나? 가끔은? TV를 볼 때든,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든 언제나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끌어내보려 한다. 그리고 여행도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요즘은 이메일이나 다른 여러 수단을 이용해 언제든 나와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으니, 내가 집에 있든 여행을 떠나 다른 도시에 있든 업무에는 크게 지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방송을 즐겨 보고, 어떤 곡을 연주하고, 어떤 웹사이트를 자주 찾나? 진짜 아무거나. 딱히 뭘 내세울 만큼 특별히 정해놓고 하는 건 없다.

열여덟 살 때 무작정 도쿄로 상경했다. 거기서 디제이로 경력을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원하는 걸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든 여행이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최근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뭔가? 음… 사실 뭔가에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그건 설명하기가 어렵다. 영감이 영감인지도 모르고 지내기 마련이니까. 영감은 ‘와, 오늘 클래식 카를 봤는데 너무 멋지다. 나도 저렇게 만들고 싶다’는 식으로 얻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정확히 아는 게 아니다. 직접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영감이란 내 안에 들어와 있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뜻인가? 그것조차 자각할 수 없다. 언제 영감을 얻었는지, 얻지 못했는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제대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다면, 당장 어떤 도시에 살고 싶나? 일본 외의 지역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디제이, 뮤지션, 프라그먼트 디자인, 나이키와의 협업, 도쿄의 더 풀 아오야마, 더 파킹 긴자…. 실패라고는 없는 행보처럼 보이지만, 혹시 스스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실패도 있었을 거다. 내가 기억을 못할 뿐. 그리고 내가 한 모든 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잘 모르겠다. 관점에 따라 누군가는 굉장히 성공적이라 말한 제품이 누군가에겐 영 맘에 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몇몇은 내가 나이키와 협업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이키 같은 대기업이랑 일을 한다고. 내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어렵다.

후지와라 히로시의 이름이 들어간 제품은 운동화든 뭐든 순식간에 품절되고 만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는 어떤 기분인가? 모든 제품이 그런 것 같진 않다. 대부분이 완판되긴 하지만. 엄청 기쁘거나 그렇진 않다. 결과나 숫자에 연연한다기보다는 그저 뭔가를 만드는 걸 즐길 뿐이다.

한 번 만들고 나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맞다. 정확한 표현이다.

모두가 그 제품을 살 수는 없다. 애초에 경쟁도 심한 데다 ‘리셀러’들에 의해 가격도 많이 올라가니까. 어떤 고객이 그 제품을 손에 넣었으면 하나? 리셀러 말고 내가 만든 물건을 정말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개인으로서의 후지와라 히로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지금 당장 가장 ‘쿨’한 소비자 층이라든가. 내가 속한 혹은 협업한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해당 제품의 색깔을 포함한 디자인 그 자체를 맘에 들어 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프래그먼트 디자인에서 뭘 만들었어도, 누군가에게 특정 디자인은 100퍼센트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애초에 수량을 좀 더 많이 만드는 건 어떨까? 다들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만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제작하는 제품의 수량을 내가 정하진 않는다.

가방, 청바지, 신발, 텀블러…. 수많은 제품의 제작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했다. 특정 회사가 아니라 어떤 물품이라면, 어떤 물건에 도전해보고 싶나? 지금 당장 특별히 해보고 싶은 건 없다. 단, 뭔가를 열의 있기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맘은 언제나 한결같다.

평생 하나의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면, 어떤 걸 고르고 싶나? 하나만? 그렇다면 일단 편한 것.

2002년 시작한 HTM 프로젝트가 내년이면 15주년이다. 그만큼 셋 모두 나이가 들기도 했다. 전과 비교했을 때 감각이 여전하다고 믿나? 하하. 재미있는 질문이다. 감각을 맹목적으로 확신하진 않는다. 우리는 15년이라는 역사가 생겼지만, 이제 신선한 아이디어는 많이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겐 그 시간만큼의 지식이 생겼다. HTM은 특별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품은 아니다. 새로운 발명품이자 당대 기술의 집약체다. 그래서 어떤 소비자들은 특정 디자인을 탐탁지 않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그 정수를 모아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믿음이 있다. 많은 부분이 나이키의 흥미로운 신기술 덕분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우리의 앞으로가 더 궁금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디제이이자 뮤지션 후지와라 히로시에게. 지금 이곳, 서울의 나이키 SNKRS를 음악에 비유한다면 어떤 노래를 고르고 싶나? 마빈 게이의 ‘Where are we going?’이 잘 어울린다. 워낙 좋아하는 노래라 집에 CD도 있다.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이현석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