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리우에 가지 않는다 – 펜싱 김선희

훈련이 한창인데, 창밖의 새소리만 선명하다. 고요를 찢는 건 조종형 감독의 목소리. “네가 하려던 대로 해야지. 왜 눈치를 봐.” 그 뒤의 김선희 선수는 긴 머리를 좌우로 퉁기며 연습복을 챙겨 입는 중이다. “펜싱이라는 게, 운동이라는 게, 다 자기표현이에요. 선수는 경기에서 자기 색깔을 연출할 줄 알아야 해요.” 조 감독의 말처럼 펜싱은 운동이자 일종의 공연 같은 것일까? 펜싱은 복싱과 체스를 합친 운동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대통령배 펜싱 대회’를 일주일 남짓 앞둔 김선희 선수의 말 속에서 그 힌트를 찾으려고 귀를 모았다. “전 낯을 많이 가리는 스타일이에요. 펜싱을 늦게 시작한 탓에 선후배도 많이 없고요. 성적도 꾸준히 상위권이 아니라 중간쯤에 있다가 한 번씩 튀어 오르고, 또 가만히 있다가 한 번씩. 게임도 그렇게 해요. 스피드와 파워보단 좀 얌전하게.” 늘 중간쯤에 있던 김선희 선수가 확 튀어 오른 건 작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였다. “처음으로 세계 대회에서 입상한 거예요. 한 번에 딱 금메달을 따버렸어야 하는데, 은메달이라…. 그래도 저 그동안 잘 버텼어요.”

이제는 어느덧 경기장에 “선희 언니 파이팅!”이라는 소리가 가득 차는 선배지만, 뒤늦게 딴 메달로 새롭게 깨달은 것도 많다. “제가 태릉에 오래 있었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대표팀에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는 일이 많았어요. 알게 모르게 듣려오는 안 좋은 얘기도 많았죠. 작년에 은메달 안 땄으면 죄책감이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처럼 느리게 뭘 거머쥐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렸다고 생각해요.”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던 중학교 육상부 시절, 펜싱부로 소위 ‘스카우트’ 될 때까지만 해도 지금을 상상하지 못했다. 끊길 듯한 펜싱과의 연을 이어준 건 의외로 ‘분노’다. “맨날 지니까, 다른 애들은 느는데, 나는 계속 지니까,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 스트레스가 또 원동력이 됐고요.” 특히 사브르 종목은 서로를 빠르게 탐색하다 불현듯 게임이 끝나는 번개 같은 게임이다. 정신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연습 때 오히려 제가 절 막 흥분시켜요. 이렇게 연습해봐야 경기 중에 멘탈이 정리돼요.”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었던 리우 올림픽의 대표 선발전도 그저 한 번의 패배처럼 지나갔다. 분노했고, 힘들었고, 털어냈다. 작지만 선명하게 우는 새처럼, 김선희는 다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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