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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가죽 장인, 료 카시와자키

2016.08.04윤웅희

일본의 신성 가죽 장인이라 불리는 료 카시와자키는 2010년 헨더 스킴을 론칭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갑피와 밑창, 안감과 신발 끈까지 모두 가죽으로 만든 그의 스니커즈는 충격적일 정도로 새로웠기 때문에. 요즘은 신발뿐 아니라 가방, 스몰 레더 굿, 홈 액세서리 같은 다양한 가죽 제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브랜드를 대표하는 건 오마주 컬렉션이다. 그는 나이키 에어 조단과 에어 포스,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 뉴발란스같이 익숙한 모델을 ‘헨더 스킴식’으로 해석했고, 발 빠른 패셔니스타들은 이 신발을 경쟁하듯 모으기 시작했다. 스니커즈에 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퍼프 대디와 저스틴 비버도 뽐내듯 헨더 스킴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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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헨더 스킴이 디자이너의 이름인 줄 알았다. 브랜드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뭔가? 특별한 의미나 이야기가 있나? 대학 심리학 수업에서 성별 도식 Gender Scheme이라는 용어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성별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사회적 양상을 정보 처리 관점에서 설명하는 건데, 브랜드 이름을 고민할 때 마침 이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남성과 여성에 구애받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젠더의 G 대신 다음 알파벳인 H를 넣어 헨더 스킴이라는 새로운 말을 생각해냈다. 성별을 초월한다는 의미로.

어렸을 때부터 가죽 공예에 관심이 있었나? 원래는 가죽 공예보다 패션과 제품 디자인에 더 관심이 있었다. 가죽에 매력을 느낀 건 학생 때 신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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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장인 정신과 현대적인 디자인의 결합을 중요시한다고 말한 적 있다. 이런 모토는 헨더 스킴에서 어떤 식으로 반영되고 있나? 신발 업계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집단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고 싶으면 스스로 제한을 두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 다만 제품을 만들 때만큼은 전통적인 기술과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의 방식을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과물을 보면 그 완성도가 확실히 다르니까.

오마주 컬렉션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 스니커즈는 굉장히 산업적인 제품이다.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오마주 컬렉션의 핵심은 제품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디자인한다는 점이다. 결과적인 생김새는 비슷해도 어떤 소재와 방식으로 제작하는지에 따라 구조나 제작 방법이 아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오마주 컬렉션은 일종의 예술 작업이다. 게다가 상업적인 제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도 풍긴다.

오마주 모델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딱히 정해진 계획이나 전략은 없다. 만들어보고 싶은 모델이 떠오르면 그대로 제작하는 편이다. 오리지널 모델과 비교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널리 알려진 제품을 선택하긴 하지만, 유명 모델이라고 해서 다 오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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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터블 태닝 가죽을 즐겨 사용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베지터블 레더의 질감과 색감을 좋아한다. 가죽의 경년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이 자연스럽게 변하고 착용자의 경험과 습관을 기록하듯 남긴다는 점이 흥미롭다.

타조나 악어 같은 특수 가죽을 쓰기도 하나? 아직 특수 가죽은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다. 언젠가 그 가죽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헨더 스킴의 신발은 작은 세부까지 가죽으로 제작한다. 가죽이 아닌 부분도 있나? 발바닥의 아치 부분에 무게가 쏠리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섕크 Shank라 부르는 금속 구조물이 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곤 모두 가죽이다.

이제 헨더 스킴은 미스터 포터나 SSENSE 같은 온라인 편집매장은 물론 바니스 뉴욕, 버그도프 굿맨, 브라운즈 같은 백화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처음 받은 해외 주문은 뭐였나? 캐나다의 편집매장 해이븐 Haven이 첫 해외 판매처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서 나도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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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에이스 호텔과 함께 만든 가죽 슬리퍼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또 굉장히 귀여웠다. 이 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에이스 호텔은 리바이스에서 일하는 친구를 통해 소개받았다. 그들이 먼저 재미있는 협업을 해보자고 제안해왔다.

아틀리에는 어디에 있나? 도쿄 아사쿠사에 있다. 좀 오래된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서도 신발을 살 수 있나? 거기엔 공방과 사무실만 있다. 그렇지만 곧 에비수 지역에 우리의 첫 번째 매장을 열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매장 오픈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해 미루고 있었다.

브랜드의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은 없나? 아직은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우리처럼 모든 제품을 손으로 만드는 브랜드는 규모를 키우면서 품질까지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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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 스킴을 제외하고, 특별히 좋아하는 신발 브랜드나 모델이 있나? 특별히 편애하거나 수집하는 모델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신발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넋을 놓는다. 3D로 만든 니트 신발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도쿄 다음으로 좋아하는 도시는 어디인가? 뉴욕. 도쿄와 여러모로 좀 닮았다. 이상하게도 뉴욕에 가면 도쿄와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쉬는 날은 뭘 하나? 보통 집에서 쉰다.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거나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독특한 취미는 없나? 공업용 장갑을 모으는 정도?

몇 년 전부터 한국에도 가죽 공예 전문 디자이너와 공방이 많아졌다. 성공한 가죽 디자이너로서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 때도 있을 테고 남들의 우려 섞인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듣겠지만, 주변에서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고 이겨내면 된다.

    에디터
    윤웅희
    포토그래퍼
    COURTESY OF HENDER SC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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