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가죽, ‘모이나’의 라메시 네어

1849년부터 파리에서 트렁크를 만들기 시작한 모이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여행용 가방 브랜드다. 1976년 문을 닫으면서 조용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했으나, 지난 2010년 LVMH 그룹 아르노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다시 화려하게 등장했다. 현재 모이나를 이끄는 디자이너는 요지 야마모토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활약한 라메시 네어다. 그는 방대한 아카이브를 뒤져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완성도 높은 가죽 제품을 선보였다. 고급스러운 가죽과 우아한 디자인, 정교한 만듦새와 세부까지. 그렇게 라메시 네어는 모이나를 현재로 소환해 훌륭히 안착시켰다. 빛나는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해서.

모이나를 되살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물리게 하는 것. 어떻게 하면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흥미롭게 연결할 수 있을지 천 번쯤 고민한 것 같다.

모이나처럼 아카이브가 방대한 브랜드라면 그 작업도 좀 더 수월했을 것 같은데? 아카이브를 탐색한다는 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옛 건축물의 석재 더미를 뒤지는 일과 같다. 그러곤 각각의 조각을 맞춰 회반죽을 바르는 것처럼, 요소 하나하나를 확인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결합해야 한다. 아카이브가 풍족하다고 해서 무조건 편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때 중요한 건 수많은 자료 가운데 어떤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만큼 예리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모이나는 독특한 곡선 디자인을 잘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의 역사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자동차 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때 제작한 가방들은 대부분 독특한 곡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자동차 차체나 트렁크에 딱 맞는 맞춤 가방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특징을 브랜드의 주춧돌로 삼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고 싶었다.

제품은 어디에서 만드나? 모든 제품을 프랑스에서 제작한다. 우리는 총 세 개의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는데, 두 개는 파리에, 다른 하나는 브루고뉴에 있다. 파리 아틀리에에서는 보통 복잡한 모델과 특별한 가죽을 취급한다. 가방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장인이 책임지고 만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죽이 있다면? 송아지 가죽과 박스 레더를 선호한다. 마감과 코팅은 적게 할수록 좋다. 이런 가죽은 질감이 아름답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사용감이 쌓인다. 또 다루기가 꽤 까다로워서, 어떤 종류의 도전 정신이나 정복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도마뱀이나 타조, 상어 같은 특수 가죽은 사용하지 않나? 악어나 도마뱀 가죽은 자주 쓰고, 타조 가죽은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쓴다. 타조는 가죽마다 모낭의 크기와 배열이 달라 큰 가방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가오리나 상어는 가죽의 질감이나 결이 고급스럽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다.

모이나만의 특별한 소재나 제작 기법이 있다면? 트렁크와 빈티지 향수병 커버에서 유래한 앵글 스티치 기법. 사실상 실전된 기술이었는데, 우연히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이후 여러 차례 실험과 연구를 거쳐 어렵사리 부활시켰다. 또 쪽매붙임이라고 하는 마케트리 기법도 우리의 특기 중 하나다. 이건 모이나 이전엔 가죽 공예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방식이다.

 

‘이런 가방을 드는 남자는 정말 별로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가방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가방을 드는 방식이 거슬렸던 적은 있다. 나는 ‘어떤 가방을 드느냐’보다 ‘어떻게 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멋진 가방이 스타일을 빌려줄 수는 있지만, 부족한 스타일 감각까지 채워주진 못하니까.

여행용 트렁크 브랜드는 전통적으로 스페셜 오더 제품을 많이 만든다. 모이나의 스페셜 오더는 얼마나 다양하게 가능한가? 이 질문엔 크루그 샴페인 트렁크나 야닉 알레노를 위해 만든 아침 식사 트렁크, 아비치 이탈리아와 함께 만든 자전거가 좋은 대답이 될 거다. 가장 단순한 스페셜 오더는 이니셜이나 그림을 새겨 넣는 퍼스널 오더다. 이런 작업은 보통 2주에서 한 달 정도 걸린다. 어떨 땐 특별한 색상이나 소재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두세 달 넘게 걸리기도 한다.

아티스트와 협업한 컬렉션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얼마 전에는 뉴욕의 아티스트 대니얼 아르샴 Daniel Arsham과 특별한 컬렉션을 만들었고, 9월에는 프랑스 아티스트인 맘보 Mambo와 협업한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이나는 광고 캠페인도 하지 않고, 마케팅도 소극적인 편이다. 나는 ‘럭셔리’가 마케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마케팅을 하기 보단, 고객들이 스스로 홍보대사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모이나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이렇게 보면 우리도 나름 마케팅 전략이 있는 거다. 다른 브랜드가 사용하는 전략과는 매우 다르지만.

7월에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8월에는 신라호텔에 단독 매장을 연다. 부티크를 오픈할 때마다 기념 에디션을 출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도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나? 물론이다. 1925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붉은 오리엔탈 트렁크를 오마주해 미니 배니티의 스페셜 시리즈를 마련했다. 또 특별히 한국 고객들을 위해 색감 대비가 선명한 마들렌이라는 모델도 새롭게 론칭할 예정이다.

 

쉬는 날은 주로 뭘 하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좋은 전시가 있으면 찾아가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몇 개만 말해달라.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Jiddu Krishnamurti라는 작가의 책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화는 빔 벤더스의 < 파리, 텍사스 >, 좋아하는 화가는 마크 로스코.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무례하고 배려심이 없는 사람. 동물이나 어린이를 학대하는 것.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한 문장이나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최근 친구가 한 말을 빌리자면, 전통주의자이자 인습타파주의자 Traditionalist and Iconoc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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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패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