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는 어떻게 해결사로 우뚝 섰나?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대호는 시즌 초반에는 주로 경기 후반에 대타로 등장하거나 좌완 투수가 등판하는 날만 출장했다. 그런데 벌써 경기 수훈 선수로 아홉 번이나 뽑혔다(7월 7일 기준). 팀 내 1위. 이대호는 나왔다 하면 영양가 넘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올해 대타 홈런만 2개를 날렸으며, 대타 OPS(출루율+장타율)는 무려 1.095다. 팀의 역전을 만들어낸 안타도 7개나 된다. 아메리칸리그 신인 중 홈런과 타점 모두 1위다. 홈런은 15.5타석당 하나, 타점은 5.0타석당 하나로 1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타석당 홈런은 8위, 타석당 타점은 3위다. 게다가 이대호는 지금 득점권 상황에서 상당히 강하다. 주자가 없을 때의 OPS는 .820이지만 주자가 있을 때는.894, 주자가 득점권에 나가면 .957까지 치솟는다. 특히 승부처를 비롯한 중요한 때(하이 레버리지 상황)의 OPS는 무려 1.148이나 된다. 이렇게 이대호는 ‘클러치 히터’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상대 투수들이 아직 이대호에 대해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올해 이대호는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한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포심 패스트볼을 잘 공략하고 있다. 포심 패스트볼 장타율이 .574로 꽤 좋은 편. 더군다나 주자가 득점권에 나갔을 때는 무려 .875까지 상승한다. 이쯤 되면 투수들은 위기에서 이대호에게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데 이대호의 상대 투수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이대호를 상대한 투수들이 던진 공 중 28.2퍼센트가 포심 패스트볼이었는데, 득점권에선 그 비율이 33.7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즉, 이대호가 잘 치는 공을 위험한 상황에서 더 많이 던지고 있는 셈이다. 야구 통계 전문가들은 ‘클러치 히터’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득점권 상황 자체가 적으니, 결국 표본이 쌓이면서 득점권 성적 또한 평균으로 수렴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투수들은 득점권 상황에서 타자를 상대할 때, 평소와 구종의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타점 본능’은 존재한다 보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과연 이대호는 시즌을 마쳤을 때, 어떤 타자가 되어 있을까?

이대호는 적극적이다. 즉, 어떤 공에도 배트를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다. 지도자들은 타자들에게 “타석에서 좋은 공이 들어오면 놓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 이대호야말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수다. 그런데 2009년 발표한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 롭 그레이의 연구 논문 < A Model of Motor Inhibition for a Complex Skill : Baseball Batting >에 따르면, 타자는 상대 투수의 투구 궤적을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타격 동작 중 투구가 예상 궤적에서 벗어나면, 와인드업 구간에서 프리스윙 구간 사이에 스윙 동작을 중단하라고 설명한다. 미리 준비한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타격 타이밍이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타자는 타석에서 공격적으로 대처하되, 판단도 빨라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이대호는 준비 동작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재빠르다. 체중 이동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러니 일단 어떤 경우에도 타이밍이 늦는 경우가 드문 데다, 공을 배트의 중심, ‘스위트 스폿’에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다. 쉽게 말하면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공을 맞힐 능력이 있는 데다, 강하게 날려 보낼 요령도 있는 타자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대호는 빠른 공 외에 떨어지는 변화구인 체인지업이나 포크볼에도 강하다. 스윙이 유연하고 관절(발목, 무릎, 허리)의 가동 범위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넓다는 장점 때문이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무모한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투수는 없다. 그러니 이대호는 팀이 꼭 점수를 필요로 하는 경우, 투수가 어려운 승부를 걸어올 때도 믿고 맡길 수 있는 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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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레코드와 농구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