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브랜드’의 허와 실

애초에 K-팝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어 문장의 주어처럼, 모든 것의 앞에 ‘K’가 붙기 시작했다.

‘K브랜드’라는 말이 있다. 낯설었던 이 말을 검색해보니 마케팅, 광고, 기업, 정부 등에서 이미 유행어가 된 지 오래였다. 특허청에서는 ‘K 브랜드 보호 종합 대책’을 내놓았고, 한국지식재산 보호원에서는 ‘해외 K 브랜드 모조품 피해 상담 지원’을 실시하는 중이며, 해양수산부는 ‘K- 피쉬’라는 수산물 수출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홍보 중이다. K 브랜드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와 상품을 선정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영역을 가리켰다. K-팝, K-아트, K-문학, K-푸드, K-뷰티, K-비어, K-클래식, K-오페라, K-투어, K- 의료, K-호텔, K-피쉬. ‘하이픈(-)’의 용법이 그렇듯, K뒤에 붙을 문화, 상품, 현상은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다.

K 브랜드는 모든 것이 ‘브랜드화’되는 이 시대의 한 경향 속에 있다. 브랜드는 한 기업을 다른 경쟁 기업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다. K 브랜드는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용어인 ‘브랜드’가 팝, 아트, 문학, 푸드, 클래식, 호텔, 투어 등의 문화 영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오늘날 문화가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상품이 되지 않는 문화는 생존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브랜드의 전면화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이미 2000년대를 전후해 한국 대학들은 로고를 새로 바꾸는 데서부터 학과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오고 있다. 아파트는 이제 ‘푸르지오’, ‘롯데 캐슬’, ‘삼성 래미안’으로 브랜드화되었고, 병원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전면화된다는 것은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경쟁 체제 속에 들어가 부침을 겪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공재의 영역이라고 알고 있는 주택, 교육, 의료, 국가조차 시장의 영역이 된다는 것이다. 공공재가 공적인 통제를 받는 정치적 영역이라면, 시장은 사적인 경쟁과 교환의 영역, 곧 경제적 영역이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시스템이라는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과거의 자본주의가 인간이 생산하는 물건만 상품으로만 들었다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물건이 아닌 것까지도 모조리 상품이 된다. 정치와 문화가 이 상품화 과정에 포획되었고, 이제 인간이 상품화되는 과정까지 목격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문학의 인기다.

인간이 무엇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인간적인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인문학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소비자인 대중의 시간과 돈은 유머와 비즈니스 정신으로 무장한 인문학 강사들이 제공하는 명쾌하게 요약된 지혜, 지식 쪼가리들과 교환된다. 한국에서 인문학이 잘 팔리는 한 이유는, 한국이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노동시간이 길고 경쟁이 심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인생을 돌아보고 싶어 인문학에 눈을 돌리지만, 역설적으로 인문학에 빠져들 시간은 많지 않기에 대중은 깔끔하게 포장된 인문학을 통해 감동받고 눈물을 흘린다. 물론 이 감동과 눈물은 다음 날 다시 지옥 같은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재충전 같은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전면적인 상품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 K 브랜드의 유행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K 브랜드는 한국의 여러 문화 영역을 하나의 통합된 상품으로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브랜드가 ‘한 기업’의 상표 이미지를 뜻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K 브랜드의 핵심은 바로 ‘K’로 표상되는 ‘대한민국’을 일관된 브랜드로 만들어 팔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자본주의적 욕망뿐 아니라 국가주의적 욕망도 함께 품고 있다. 기업가가 자기 상품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듯, 국가를 브랜드화해 외국에 팔기 위해서는 국가에 대한 애정이 필수다. 한국을 사랑하지 않으면 K 운운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힘들다. 한류라는 문화 현상을 지켜본 한국인의 자부심이 K 브랜드를 잉태시켰다. “문화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한 멀티플렉스에서 반복적으로 트는 공익광고에서 잘 드러난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이 반복되는 이 광고에서 대한민국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멋진 국가다. 우리의 사물놀이, 우리의 비빔밥, 우리의 첨성대와 금속활자, 우리의 싸이가 어떻게 세계의 문화를 바꿨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K 브랜드를 만들어낸 한국인들의 자본주의적 욕망의 그늘을 잘 보여주는 예 중 하나가 대학의 상품화(K-대학?)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불러들인 수많은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민망하기 그지없는 수준의 교육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어도 영어도 잘못하는 중국인 학생들을 무조건 입학시킨 탓이다. 강의실에서 이들은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좀비같다. 강의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한국인 학생과의 교류도 없는 이 중국인 학생들은 대학의 ‘국제화 지수’와 등록금 수입을 높여주는 일 외에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K-투어, K-뷰티, K-의료, K-호텔 모두 아무런 내용 없이 돈만 벌겠다는, 무조건적인 상품화의 다른 이름이다.

국가주의적 욕망의 허망함은 ‘일베’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극우 청년들의 국가주의적 성향에는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결여돼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정부를 옹호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합리적 성찰 능력 을 잃어버렸다. 정부가 ‘잊으려고 하는 것’(용산, 세월호, 사드)과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사물놀이, 비빔밥, 싸이)이라는 그들의 구분은, 이것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이며 무성찰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K 브랜드의 저편에 있는 ‘헬조선’과 ‘국뽕’이라는 신조어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 이면의 또 다른 감정이 정확히 지칭된다.

자본주의나 국가주의는 제쳐두고 문화산업 관점에서만 봐도 K 브랜드에는 문제가 많다. 문화는 ‘K 브랜드’로 포괄할 수 없는 다양성과 차이를 갖고 있다. 가령 K-팝은 한국 대중가요의 놀라운 역사와 다양성 중 ‘아이돌 가요’라는 극히 일부만을 담고 있고, K-아트나 K-문학은 해외에서 상을 받거나 알려진 아티스트가 아닌 국내의 수많은 작가는 배제하며, K-푸드는 한국인의 먹거리 중 극히 일부를 고급화하는 데 그친다. 다시 말해 K 브랜드를 아는 것, 사는 것은 사실 한국 문화의 가장 대중적인 일부에만 접근하는 것이다. 명확한 소구대상의 설정과 정확한 자리매김이 핵심인 마케팅 기법상 K 브랜드는 언제나 문화를 특정 영역으로 축소하며, 필연적으로 왜곡을 가져온다. K 브랜드라는 명칭은, 상품이 사용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품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한다.

무엇보다, 브랜드로 묶이기엔 문화는 너무나 크고 넓으며 언제나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것, 일본이나 스위스,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이 바로 K 브랜드가 원하는 국가 이미지일 텐데, 결코 대통령과 특허청과 문화관광부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이미지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철학과 문학과 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홍보하고 상품을 팔아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 이런 식의 발상이야말로 한국의 문화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국가와 지자체의 주도로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K 브랜드를 비집고 인터넷과 SNS에 등장한 다른 K 브랜드에 더 주목한다. 가령 ‘K-저씨’ 같은 것. 정부가 만들어낸 K 브랜드의 기호를 그대로 가져다,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한국 문화의 핵심적 기표 ‘아저씨’ 를 덧입혀 만든 새로운 기호. 롤랑 바르트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우파의 신화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좌파의 신화 같은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명명을 통해 기존의 신화는 안으로부터 파괴되는 법이다. 사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전쟁이기도 하다. 위로부터의 K 브랜드를 무화시키는 아래로부터의 K 브랜드가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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