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여성론 – 설리

이것이 매체에서 설리의 논란에 대해 말하는 몇 번째 글일까. 설리는 에프엑스로 데뷔한 이래 꾸준히 태도 논란, 키 논란, 연애 논란, 탈퇴 논란을 겪어왔다. 가장 최근의 논란은 인스타그램이었다. 개인 SNS에 올리는 사진 한 장 한 장은 “또 설리, SNS 선정성?… 속옷 입고 안 입는 건 자유라지만(세계일보)”, “걸그룹 출신 설리… 생크림 에로틱(?) 먹방, 논란(헤럴드경제)”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포털사이트에서 퍼져나갔다. 설리는 꽃을 들고 앉아 사진을 찍었으며, 생크림을 먹는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논란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도대체 설리는 왜?’, ‘설리를 우려한다’, ‘설리에게 자유를’ 같은 글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여동생처럼 느낀 아이돌 출신 배우의 앞날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타락했다며 질책하고, 또 누군가는 한 젊은 여성의 자유를 찬양했다. 이야기는 나올 만큼 나왔다. 그래서 더 보태지 않기로 했다.

설리는 예쁘다. 콕 집어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안에서 예쁘다. 에프엑스의 멤버로 춤추고 노래할 때, 영화 < 패션왕 >에 출연해 연기를 곧잘 할 때, 의류 광고를 찍고 패션 화보에 모델로 설 때 예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웃으면 웃는 거고 뚱하면 뚱해 보였다. 예쁘고 보기 좋은 것 이상의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그 예쁨 외에 설리에게 받을 수 있는 인상이 뭐가 더 있을까 혼자 생각해봐도 달리 없었다.

방송이나 작품을 거의 쉬다시피 하는 지금의 설리는 오히려 더 활발하다. ‘인스타그램 하는 설리’는 불쑥불쑥 움직인다. 동물 키우는 걸 상상만 하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중 한 마리가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가 로타와 작업했다. 메이크업도 직접 하고 의상도 골라서 완전한 사진을 만들어냈다. 스스로도 지금까지 시도한 적 없는 형태의 사진을 남겼고, 여가수들이 뒤이어 사진가 로타와 작업하게 된 선례였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나 행복해하는 모습이 사진에서 보인다. 특히 이럴 때 아름답다. 예쁜 걸 넘어서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은 빛난다는 설명보다 설리의 이 모습이 더욱 설득력 있다. 매혹이 자질이다. 설리에게 섹시한 옷을 입히고, 그런 뉘앙스를 주문하고, 살을 많이 드러내게 한들 설리는 자신이 예쁘고 싶을 때 가장 아름답다.

설리의 매혹은 단순하지 않다. 설리는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과 한 공간에 있는 사진으로, 보는 이의 도덕성을 시험하고 성적인 상상력을 점화한다. 많은 사람이 연인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설리를 보며 성적인 긴장감을 떠올리고 분방한 여성으로 판단한다. 설리의 사진 속에서 남성을 제외한다면? 얼마 전엔 ‘노브라’ 사진이 새로 올라왔고 과연 떠들썩하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설리가 초록으로 뒤덮인 언덕을 걷고 있다. 살색은 거의 보이지도 않고 연인도 남사친도 없다. 표정은 무척 자연스러워 오히려 조금 바보처럼 보이는 얼굴이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듯하다. 불투명한 회색 저지 소재의 트레이닝복에 브래지어를 안 한 것이 과감한가? 이 사진 역시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에서 브래지어를 안 하거나 브래지어 끈이 살짝 보이거나 가슴골이 보이거나 다리를 훤히 내놓은 사진을 제외해 본다. 앉아 있는 상태에서 내려다본 옷으로 덮인 다리,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때꾼한 눈으로 렌즈를 응시하는 셀프 사진 등이 남는다. 사람들이 찍는 셀프 사진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무료하다. 우뚝 멈춰 서서 새로 산 양말과 꽤 괜찮은 신발을 함께 찍거나 앉아 있는 다리를 고쳐 앉아 허벅지와 무릎을 찍는다. 괜찮은 제화는 그렇다 쳐도 지저분한 바지 주름과 울퉁불퉁한 살, 깨끗하지 못한 피부를 보고 사진을 삭제하거나 SNS에 올릴 생각을 접는다. 설리가 올린 사진은 알맞게 너풀거리는 치맛단과 복숭아색 피부의 다리가 살짝 드러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특정한 대상을 유혹하는 기색이나 단서가 없는 사진에서 설리는 더욱 매혹적이다. 촬영장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며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는다거나 노메이크업임을 강조하며 자기 전에 대충 찍어 올린다는 말을 덧붙인 재미없는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빛을 흠뻑 맞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살짝 돌려서 찍은 사진에 햇살이 좋아서라고 덧붙이지도 않는다. 아주 약한 불빛에 의지해 대충 찍어낸, 픽셀이 깨진 흐리멍덩한 사진이 설리의 감각이다. 사진을 올리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다리며 관심 받는 기분을 즐기기보단 내가 지금 예쁜 모습, 올리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예쁜 모습을 올린다.

설리는 어릴 적부터 예쁨에 관한 자각이 있었고 줄곧 자신의 예쁨을 인정해왔다. 어릴 적 일기에는 “나도 내가 예쁘지만 사람들이 왜 나를 예뻐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보다 예쁜 사람이 아주 많은데 왜 나만 귀여워하고 예뻐할까?”라고 고민하고, 자신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이게 뭐야 너무 예쁘잖아”, “내가 쌍둥이였다면 둘이 사랑에 빠졌겠지?”라고 스스로 코멘트를 단다. 인터뷰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좋아해요. 예쁘다고 얘기해주면 내가 좋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아요. 예쁘다는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매번 다르고 매번 기분이 좋아요. 매번 듣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스스로 예쁠 때는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고, 혼잣말을 하거나 춤을 출 때,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상태가 예뻐요”(< 나일론 >)라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설리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예쁨에 손사래를 쳤더라면 인스타그램 사진은 공격하기 좋은 떡밥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설리는 자신의 예쁨에 대한 변호만큼이나 자신의 자유로움이나 인스타그램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차분하고 명료하게 대응한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대한 갑론을박을 두고,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납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낯설어서 밀어낸다고 이해한다. 자신을 지킬 만한 판단력에 대한 믿음이 있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낸다. 열렬히 사랑받고 싶지만 남의 눈치를 보며 정체성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일탈이나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하고 싶느냐는 질문에는 아주 간단하게 “재미있고 예쁜 사진을 혼자 보는 건 별로 재미없잖아요(< 쎄씨 >)”라고 받아친다.

그룹을 나오는 순간까지, 설리는 모든 논란과 그에 따른 공격에 부산스럽게 해명하거나 유난을 떨며 사죄하지 않았다. 공연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나름의 이유를 적당한 목소리로 냈고, 키가 170센티미터인지 180센티미터인지 굳이 줄자를 대 확인시켜준 적도 없다. 최자와의 연애를 이어가면서, 배우 설리가 된 건 현재의 사실이다.

이전까지 설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었던가. 최근 인스타그램 속의 설리는 분주하다. 일을 하고 삶을 산다. 자신의 감성이나 어떤 생각을 일방적이나마 표현한다. 논란을 만들고 논란에 대해서 자신의 입으로 발언하고 책임을 지려 노력한다. 예전에도 예뻤지만 왜 예쁜지 알 수 있어서 더 예쁘다.

연인과 침대 위에서 키스를 하고, 휘핑크림을 먹고, 속옷만 입은 걸로 의심받던 사진이 담긴 이전의 인스타그램은 기사나 블로그 포스팅 안에 박제로만 남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제 알 수 있다. 조금이나마 설리가 어떤 사람인 지. 설리는 진리도 아니고 단지 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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