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신 여성론 – 설현

2016.08.31GQ

청순하고, 섹시하다. 설현을 수식하는 이 문장은 얼핏 극과 극의 상태를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인다. 종종 대중들은 섹시의 대립항에는 청순 가련, 여성적인 온기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청순한 동시에 섹시한 이미지를 모두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둘 다를 가졌다는 것은 여자 연예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으로 여겨진다. 청순과 섹시 사이, 어떤 이미지로든 어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현의 경우는 좀 다르다. 설현은 청순한 동시에 섹시하거나, 청순과 섹시를 오가지 않는다. 설현은 청순하기 때문에 섹시하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인과관계를 이해해야만 설현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설현이 속한 AOA는 데뷔 때부터 최근의 ‘Good Luck’ 활동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청순함이나 소녀다움을 강조한 적이 없다. AOA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 곡이 ‘짧은 치마’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AOA는 아주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멤버들의 각선미를 강조하는 안무 그리고 ‘심쿵해’에서 보여주는 건강한 섹시미로 인기를 얻은 그룹이고, 설현은 이 그룹의 센터다. 그러니 설현은 적어도 그룹 활동에서의 이미지로는 청순한 느낌을 줄 여지가 별로 없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현이 청순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설현이 속한 그룹이 AOA였기 때문이다. 섹시함을 전면적인 무기로 내세운 걸그룹이기에 설현이 가진 선한 표정, 무해해보이는 미소가 도리어 부각될 수 있었다. ‘짧은 치마’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은 그런 설현의 이미지를 1차원적으로 영상에 옮긴 경우다. 짧은 바지 위에 박스 핏의 흰 셔츠를 걸치고 침대에 들어가 눕는 설현을 뽀샤시한 화면에 담아내고, 골반의 라인과 드러난 허벅지를 가장 부각시킨 방향의 앵글로 잡는다. 청순하고 무해하며 자신이 섹시한 것을 알지도 못하고 노골적으로 소비하려고도 하지 않는 여성의 대명사로, 설현이 거기에 있다.

놀랍게도 그렇기 때문에 설현을 비추는 카메라는 어떤 죄책감도 없이 설현의 섹시함을 소비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나 음악방송, CF, 예능 프로그램 할 것 없이 설현을 비추는 대부분의 카메라는 그의 몸을 훑고, 몸의 곡선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 설현을 유명한 것으로 유명하게 해준 SKT 광고의 입간판과 포스터를 떠올려보자. 문제의 ‘뒤태’는 오직 설현의 허리와 엉덩이의 곡선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자세였다. 허리를 드러낸 딱 붙는 상의와 이미 유행이 지난 스키니 진도 마찬가지다. 그런 자세로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자연히 상체를 부자연스럽게 돌려 몸을 꼬아야만 한다. 정확하게 같은 각도로, 서는 대신 앉은 것도 엎드린 것도 아닌 자세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던 G마켓 광고까지 이르게 되면 단지 택배를 받았을 뿐인데 왜 저토록 불편한 자세로 뒤를 돌아봐야만 하는 것인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자연히 설현이 불편한 자세로 몸을 꼬아 눈을 마주친 대상이자, 지금 설현을 뒤 혹은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를 묻게 된다. 누가 설현으로 하여금 다른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가장 섹시해 보이는 상태로 남아 있되, 그 시선이 가진 어떤 의도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무해한 여성으로 존재하기를 요구하는가. 당연히 소비자, 그중에서도 설현의 자세가 물리적으로도 불편한 자세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소비자이며, 그들은 높은 확률로 남자다. 설현이 청순하기 때문에 섹시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설현을 미디어, 특히 CF가 소비하는 방식이 문제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와 네티즌들이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지적 뒤에는 반드시 논란이 뒤따른다. “여자들이 열폭 한다”는 남자들의 토로가 이어지는 것이다. 설현을 남성 중심적인 시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 설현이 예뻐서 여자들이 문제 삼는다는 반박이 따라오고, 네이버 지식인 같은 곳에는 “여자들은 왜 설현을 싫어하나요?” 같은 질문이 진지하게 올라온다. 이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자면, 설현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거나 있더라도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는 이유인 ‘예뻐서’는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남성의 시선 안에서 무해하게 섹시해야만 하는 설현의 이미지를 싫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설현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하는 여성은 없다고 봐도 좋다. 사람들은 종종 인물을 둘러싼 현상에 대한 비판이나 콘텐츠 자체에 대한 비판을 인물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한다. 그리고 여성이 여성을, 여성에 관련된 어떤 현상을 비판하는 경우에도 ‘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로 만들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세부의 결은 생략되며 비판은 질투가 된다. 설현은 이와 동일한 구도에 서 질투를 받는 여성, 어떤 잘못도 없지만 아름답다는 이유로 여성의 적이 된 위치에 놓인다. 이런 설현의 이미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스프라이트’ TV CF다. 가상의 여성은 설현을 “후배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조별 과제에서 빼달라고 요청하고, 설현은 “그럼 선배님 이름은 뺄게요”라는 ‘사이다’ 답변을 날리는 것이다. 설현의 맞은편에는 아마도 설현만큼 예쁠 리 없고, 소위 개념도 없으며 나이까지 많은 여성이 등장하고, 설현은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한마디로 그녀에게 한 방을 날린다. 하지만 여기서 과연 속이 뻥 뚫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설현의 역할과 비슷하게 오늘도 성실하게 조별 과제를 해내는 대학생 여성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상황에 “캬 사이다”를 외칠 사람은, 당연히 그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여자 선배’가 너무나 싫은 누군가일 것이며, 역시 남자일 확률이 높다.

여기서 밝혀지는 것은 설현의 이미지는 대립항, 곧 반대의 이미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설현의 청순한 섹시함 맞은편에는 소위 나쁜 여자, 강한 여자로 소비되는 섹시함이 있다. 설현을 정의하는 몇몇 수식어들을 보자. 작년 문제의 입간판에는 불필요한 보정 논란이 따라왔고, 설현은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그 사진이 보정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얻게 된 ‘무보정 여신’이라는 수식어의 반대편에는 포토샵으로 얼굴과 몸매를 실제와 다르게 보정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수지를 잇는 자연 미인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당연히 반대편에는 ‘성괴’나 ‘강남 미인’이 있다. 설현의 이미지는 설현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유지되어왔다. 그래서 설현의 이미지가 대부분 CF로 만들어지고 또 다른 CF로 반복해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설현이 가진 것이나 보여준 것, 배우 김설현으로서의 연기력이나 걸그룹 멤버로서 보여주는 춤이나 노래의 재능이 아닌 CF 스타 설현으로 쌓은 이미지는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시킬 기회를 주지 못하고 계속 강력해진다. 설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카메라는 계속 관음적인 시선으로 설현의 몸을 훑고 또 설현은 그 시선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미지 소비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 텅 빈 이미지는 생각보다 더 쉽게 잔인한 방식으로 무너졌다. 온스타일 < 채널 AOA > 에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설현과 같은 그룹의 멤버 지민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미디어들은 이 이상한 논란에 합세해 아이돌들의 역사의식 부재를 두고 토론까지 진행했고, 설현과 지민은 한순간에 역사의식 없는 무지한 아이돌이 되어 컴백 쇼케이스 직전 눈물의 사과를 해야만 했다. 청순하고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섹시하며, 무보정 자연 미인이라 가치 있던 설현의 이미지는 유난히 여성 연예인에게 가혹한 수많은 잣대 중 하나에만 걸려도 이토록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이 난리통 속 가장 최악은, 자신들의 무지가 크나 큰 죄임을 눈물로 호소한 설현과 지민이 눈물을 닦고 뒤태를 강조한 섹시 댄스를 추며 신곡 쇼케이스를 이어가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이 순간은 성인 여성처럼 말하는 댓글을 달았다 는 이유로 자필 사과문까지 써야 했던 하연수의 경우와 함께, 2016년 여성 연예인 수난사의 첫머리에 놓여야만 한다.

설현의 이미지가 구축되고, 무너지고, 남아 있는 이미지로 다시 소비되는 이 과정에 설현은 없다. 자신의 몸에 대한 열광이 쏟아지고, 그 이미지가 뻥튀기 되며 광고가 다른 광고를 낳을 때, 맥락 없이 걸리버가 되어 밧줄에 묶이고도 무해하게 웃고 있어야만 할 때 설현은 자의든 타의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인식 논란 당시에도 그 사태에 대한 설현의 의견이나 생각은 누구도 묻지 않았으며, 설현도 말하지 못했다. < 라디오스타 >에 출연했을 때 설현이 자신에 대해 한 말이라곤 자신이 패션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과 악플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 정도 뿐이었으며, 미디어는 ‘애교-개인기-섹시 댄스’ 삼종 세트에 야광봉을 흔들었다. 역사인식 논란 후 SNS 이용도 중단한 지금, 어떤 논란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되는 설현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아예 없다. AOA의 그룹 광고를 포함해 설현이 출연한 광고는 2016년에만 20개가 넘고, AOA는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신곡으로 활동을 했다. 하지만 몸으로 맥주를 마시고 화장품 고르듯 투표를 하고 자신의 몸을 평가하는 남성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달리고만 있는 그 여자는 그냥 남자들이 훔쳐갔다는 문제의 입간판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AOA 신곡은 설현의 뒤태 자세를 안무에까지 적용시키는 것으로 설현의 텅 빈 이미지 소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렇게 설현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처음과 똑같이 그저 오늘도 쏟아지는 광고 속의 설현을 보는 시선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선을 보는 시선이, 설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의 전부다. 모두 설현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설현을 비추는 카메라의 앵글로 설현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설현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디에 가면 설현을 볼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설현이 너무 많은 광고에 출연하며, 설현을 그만 보고 싶다는 말들에 동의할 수가 없다. 물론 그 말들 역시 등신대를 그만 보고 싶다는 의미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정말이지, 설현을 보고 싶다.

    에디터
    장우철,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윤이나(대중문화평론가)
    일러스트레이터
    이자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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