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베니 증류소를 찾아서

위스키 증류소를 방문할 땐,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차에서 내려 오래된 증류소 건물을 바라볼 때의 향, 수확한 보리를 말리는 곳에서 나는 향,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당화조 앞에서 나는 향, 오크통이 쌓인 창고에서 나는 향, 그 옆 나무 기둥에서 나는 향….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위스키 발베니 증류소에선 그 향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발베니를 사랑한 국내 바텐더 8인과 함께 발베니 증류소를 둘러봤다.

스코틀랜드의 발베니 증류소를 찾아가기 전, 나름대로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두 눈을 의심한 대목이 보였다. 눈길이 멈춘 곳은 발베니 증류소의 주요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장인들의 근속년수를 써둔, 그 숫자 앞이었다. 오크통을 관장하는 이안 맥도날드는 47년째 근무 중이고, 증류기를 책임지는 데니스 맥바인은 54년 근무 후 은퇴했으며, 발베니의 얼굴과도 같은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사진) 역시 5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50년간 같은 일을 하며 그 분야의 녹슬지 않는 전문가로 남는 일은 어떤 감각으로 이해해야 할까?

저녁 만찬을 즐기기 위해 킬트로 갈아입은 ‘발베니 마스터 클래스’ 바텐더와 직원들.

몇 해 전 또 다른 위스키 증류소를 방문해, 50년간 숙성 창고에서 가만히 위스키를 품어온 오크통 앞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감탄한 일이 생각났다. 그때 그 위스키를 한 모금 입에 물고 이게 얼마나 희귀하고 소중한 위스키인지에 대해 곱씹어봤던 것 같다. 그 세월에 몹시 감탄했는데, 위스키가 익는 그 세월 동안 오크통처럼 자리를 지킨 장인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손수 오크통에 채워 넣은 위스키를 50년 뒤에 직접 확인하는 일. 돈 내면 살 수 있는 세월이 아니라 내가 기다리고 가꿔야 하는 세월. 위스키뿐만 아니라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놀랍고도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스튜어트(좌)와 이안 맥도날드(우).

발베니 증류소는 이 놀라움을 눈앞에서 실현시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증류소다. 대량 생산을 하지 않고, 아직도 전통 방식으로 몰팅 작업을 진행한다. 그 과정은 단순한 개념을 넘어서서 맛에도 확연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래서인지 전 세계 싱글 몰트위스키 애호가 중에는 유난히 발베니 마니아가 많다. 발베니는 다른 싱글 몰트위스키에 비해 버번캐스크의 영향을 많이 받아 달콤하고 고소하며 바닐라 향이 많이 감도는 편이다. 숙성도 럼 오크통이나 포트 와인 오크통을 사용해 진득한 달콤함을 더 배가시키는 쪽이다. 향이 그윽하고 섬세하다. 누구라도 한번 맛을 보면 다른 싱글 몰트위스키와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그 맛. 더프타운에 위치한 발베니 증류소를 방문해 투어를 신청하는 대부분이 이미 발베니의 이 맛에 빠져버린 팬들이다. 투어는 오전에 8명, 오후에 8명만 증류소를 둘러볼 수 있는 소규모인 데다 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된다. 발베니의 팬으로 시작해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가 된 샘 시몬스는 한국에서 온 투어단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증류소 곳곳을 돌아다닐 거예요. 향에 집중하세요. 각 단계에 따라 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끼다 보면 위스키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발베니 마스터 클래스’ 깃발 아래 모인 바텐더 8인은 그 소리에 어깨를 펴고 콧구멍을 열었다. 특별히 선발된 그들의 임무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발베니를 속속들이 체득하는 것이었다.

저 건물 안에 몰팅 플로어가 자리 잡고 있다.
보리부터 시작하는 발베니 발베니 증류소 앞엔 보리밭이 있다. 보리를 직접 재배해 이를 몰팅(보리에 싹을 틔워 맥아로 만드는 일) 작업에 쓴다. 보리를 얼마나 잘 재배하는냐에 따라 위스키의 맛이 좌우되진 않는다. 그보단 몰팅이 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아직 보리를 재배하는 건 전통 방식을 지키며 안전한 수급을 하기 위해서다. 증류소 투어의 첫 번째 코스는 역시나 이 보리에서 시작한다. 텅빈 교실처럼 생긴 공간으로 안내했다. 몰팅 플로어다. 이곳은 1920년부터 사용하던 몰팅 작업 공간이다. 아직도 증류소 안에 몰팅 플로어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 발베니도 사용하는 전체 맥아의 약 20퍼센트만 직접 몰팅 작업을 거친다. “여기 이 기계는 1920년 이전부터 쓰던 거예요.”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작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직접 투어단을 이끄는 일은 극히 드물다. 스코틀랜드 내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투어할 때만 그가 나선다. 1년에 약 네 번 정도다. 그는 이 지역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동네 바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이름을 물으면 수줍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여전히 소년 같은 할아버지다. “하루 종일 위스키를 코에 대고 킁킁거리는 게 일인데, 몸이 크게 힘들진 않아요. 아직 괜찮아요.”
발베니 증류소 투어를 끝내고 에딘버러로 이동한 바텐더들이 ‘위스키 익스피리언스’의 컬렉션을 둘러보고 있다. 엄청난 종류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36시간 물에 불린 보리가 데이비드 스튜어트의 설명으로 둘러본 몰팅 작업실에서 싹을 틔운다. 가만히 두면 엉키고 썩기 때문에 직원이 4시간마다 한 번씩 섞어준다. 이 과정이 상당히 고돼 전문가들의 어깨가 원숭이처럼 서서히 굽는다고 한다. 이 모습을 두고 ‘몽키숄더’라고 부르는데, 발베니가 소속된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에서 ‘몽키숄더’라는 이름으로 위스키를 제조하고 있기도 하다. 몰팅 과정을 지나 보리를 건조시키는 과정에서 피트(이탄)를 사용한다. 흔히 ‘병원 냄새’라고 부르는 위스키 특유의 냄새가 여기서 온다. 직접 볼 기회가 적었던 바텐더들은 향부터 질감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이렇게 피트를 많이 쓰는데, 어떤 사람들은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해요. 그런데 충분합니다. 스코틀랜드에 아주 많아요.” 샘이 단호하게 말했다.
‘위스키 익스피리언스’에서 푸드 페어링 강의를 맡았던 렌카 나드보미코바. “서점에 가서 어느 책이 최고냐 묻지 않는 것처럼, 위스키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좋으냐고 묻지 마세요.”
밀링(제분 과정)을 거친 맥아는 매싱 과정을 통해 맥아 당즙으로 변한다. 뜨거운 물을 넣고 당화시키는 것이다. 그 후 발효조로 옮기면 알코올 도수 약 8퍼센트의 워시Wash가 된다. 맥주와 비슷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여기 향이 정말 좋아요.” 임재진 바텐더가 발효조가 있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뱉은 말이다. “맞아요. 그리고 다른 증류소와는 또 다른 향이 날 겁니다. 발베니는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많은 위스키잖아요? 이곳에서도 그런 향이 지배적이죠.” 설명하는 샘 뒤로 낡은 칠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발효조마다 기록할 수치를 분필로 써뒀다. “아? 이거요? 여기선 이게 최신식입니다. 발효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예요.” 발효조 뒤 작은 사무실엔 여지없이 머리가 희끗한 사람이 지키고 서 있었다. 발효 시간에 따라 위스키의 달콤함이 좌우된다.
저녁 만찬을 즐기기 위해 킬트로 갈아입은 ‘발베니 마스터 클래스’ 바텐더와 직원들.
발효 뒤엔 증류가 이어진다. 증류기의 모양, 증류 시 ‘미들컷’을 자르는 온도, 증류기를 가열하는 방식에 따라 원액의 맛이 좌우된다. 이곳에선 또 색다른 향이 났다. 발베니는 발베니만의 축적된 방식이 있다. “만약 장인 중 한 명이 내일 당장 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우리 위스키 맛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 사람이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죠. 크래프트맨십을 지키기 위해서.”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말했다.
숙성 창고의 오크통에서 바로 꺼낸 원액을 시음하는 바텐더들.

쿠퍼리지의 장인들 증류가 끝나면 거기서부터 데이비드 스튜어트의 진짜 일이 시작된다. 얼마나 많은 양을, 어떤 오크통에,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숙성 과정을 위해서는 쿠퍼리지의 장인들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다. 발베니는 증류소 내에 오크통을 생산하는 쿠퍼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 브랜드인 글렌피딕과 발베니가 이 쿠퍼리지를 함께 사용한다. 미국에서 버번 오크통이 도착하면 물이 새는지 등을 검사하고 때에 따라 해체 후 재조립하기도 한다. 8명의 쿠퍼가 하루에 약 24개의 오크통을 작업할 수 있으니, 하루 총 192개 정도의 오크통이 새로 태어난다. 아귀를 잘 맞춘 오크통은 위스키를 담기 전 토스트 작업을 거쳐 향을 끌어 올려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을 해내느라 쿠퍼리지 안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음이 컸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쿠퍼리지의 장인 이안 맥도날드는 가볍게 속닥거려도 서로의 말을 알아들었다.

쿠퍼리지 근처의 나무는 이렇게 기둥이 까맣게 변해 있다. 오랜 기간 술곰팡이가 붙어서 그렇다.

발베니만 품은 맛 쿠퍼리지를 나온 오크통은 위스키를 가득 품고 숙성 창고로 간다. 이 증류소 내에는 총 46개의 크고 작은 숙성 창고가 있다. 가장 큰 창고엔 오크통이 약 5~6만 개 정도 들어간다. 중간 크기 정도 되는 숙성 창고에 들어가 수박 서리하듯 오크통 열댓 개를 까서 시음을 진행했다. 공간의 향도 음미했다. 30년 숙성된 것부터 17년 숙성된 것까지 다양하게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발베니의 특성은 달콤한 버번 오크통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 버번 오크통이라도 크기에 따라서 또 맛의 캐릭터가 달라진다. 바텐더들은 이날 숙성 창고에서 작은 차이들을 포착하기 위해 꽤 많은 술을 마셨고, 기분 좋게 취하고 말았다.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하루 약 300통의 샘플을 (절대 마시지 않고) 시향한다. 글래스고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위스키 원액 샘플 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불콰해진 바텐더들은 새삼 또 놀라고 말았다.

발베니 시음을 도와주고 있는 강윤수 브랜드 매니저와 데이비드 스튜어트.

증류소를 다 돌아본 바텐더들은 발베니 제품을 시음했다. 싱글배럴 12년, 더블우드 12년, 더블우드 17년, 싱글배럴 15년, 캐러비안 캐스크 14년, 포트우드 21년, 툰 1509를 차례대로 시음했다. 특히 1970~1980년대에 숙성을 시작한 약 32개 오크통을 커다란 메링툰에 섞어서 출시하는 ‘툰 1509’를 마실 때는 모두의 동공이 두 배로 커졌다. 달콤하면서 새콤한 향도 감도는 매력적인 위스키였다. 행여나 한 방울이라도 남길까 봐 잔을 들어 확인하는 바텐더도 있었고, 숙성 창고에서 맛본 오크통의 개성을 핀셋처럼 뽑아내려고 노력하는 바텐더도 보였다. 모든 투어 일정이 끝난 뒤 바텐더들은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퀼트로 갈아입고 발베니 장인들과 만찬을 즐겼다. 이 자리엔 증류기를 53년간 관장하다 은퇴한 데니스 맥바인도 함께했는데, 그는 은퇴 후에도 증류소 곁을 떠날 줄 몰랐다. 데니스는 물론이고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이안 맥도날드 모두, 발베니라는 이름은 더 이상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발베니 향이 났다.

 

2016 발베니 마스터 클래스 스코틀랜드에 가기 전, 바텐더들은 총 네 번의 사전 교육을 받았다.

김일주 대표에게 듣는 국내 위스키 시장 스코틀랜드를 방문하기 전, 네 차례의 사전 교육을 통해 그 시간을 더 밀도있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첫번째 수업은 김일주 대표와 이종기 대표에게서 듣는 증류주와 위스키에 대한 강의였다.

 

한남동 테일러블에서 열린 스타일링 클래스 바텐더들에게 스타일이란 그저 ‘멋’이 아니다. 자신을 명확히 이해하고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짜는 것. 테일러블 곽호진 대표와 함께 그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청담 루브리카에서 토론해 본 비즈니스와 서비스 바텐더라면 누구에게나 경영 감각과 서비스 마인드는 필수적이다. 이성은 아나운서 함께 서비스 소양에 대해 다시 한번 가다듬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청담 믹솔로지에서 배우는 가죽 공예 청담동에 있는 믹솔로지 바의 김현 대표는 바 한켠에 가죽 공방을 만들어두었는데, 이곳으로 바텐더를 초청해 가죽 공예의 기본을 알려줬다. ‘크래프트맨십’을 공유하는 시간.